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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인이 없는 편지


박경현(프란치스코)무학고등학교 교사, 진량성당

지난 겨울, 나는 우리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외 어학연수를 기획하고 지도한 적이 있다. 3주간의 일정으로 필리핀을 향해 출발하던 날, 평생 품안에만 머물렀던 자식들과 아득히 길게만 느껴지는 이별의 장면은 애틋했다. 사랑은 사소한 불안감조차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만들어 온 마음을 까맣게 태우는 것일까. 평범하고 짧은 이별임에도 부모님들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표정과 몸짓으로 발돋움하며 자식들이 사라져 가는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40여 명의 아이들 한 명 한 명 역시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처럼 부모님들의 마지막 시선을 일일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 갈무리해 두는 것이다. 학교를 출발한 버스에서나 처음 타 보는 비행기에서도 아이들은 소중한 끈을 놓쳐버린 공허함으로 시선과 음성이 어색하다. 얼떨결에 신청을 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이라도 포기 할 수만 있다면 부모님의 품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은 심정들이 역력해 보였다.

 

이 아이들에게 부모와 가족이 없는 이국땅은 결코 정들 수 없는 객지일 뿐이다. 부모님의 메일을 받아 읽을 땐,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두 눈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하고, 국제 전화를 시도하다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땐 전화기를 두드리며, ‘엄마, 엄마!’ 소리치던 녀석들, 절대로 울지 않겠다는 몇 번의 다짐 끝에 수화기를 들지만 신호음이 들리기도 전에 눈물부터 주루룩 흘리는 저 아이들.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라는 고백을 통하여 부모님의 사랑이 자기 곁에 머무르고 있음을 확인하고픈 저들에게 부모님은 그 자리에 머물러 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이 뭔지 아니? 네가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 너무나도 잘 자라주는 거란다. 며칠 전 엄마의 흰 머리카락 한 가닥에도 마음 아파했다는 너의 글을 읽으면서 엄마는 많은 눈물을 흘렸어. 지난번 가족 여행을 계기로 너도 나도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었지? 그리고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일정, 건강하게 잘 마무리하고 멋진 모습으로 짠~~ 하고 나타나길 바랄게.  -만날 날을 기다리며 엄마가>

 

<네가 없는 생일 아침을 맞을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찡하게 아려왔단다. 며칠 전 그곳에서 생일 파티 했다는 소식에 기쁨 반 아쉬움 반.  엄마는 잠시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수야! 생일 축하해. 몸이 자란 만큼 마음도 더욱 성숙해지길 엄마는 바란다. 그곳에서 보내준 메일을 읽어보신 아빠도 그 큰 눈에 눈물이 고이고, 너를 너무 보고 싶어 하신다. 엄마 마음속에도 밀려오는 사랑과 그리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니. 이렇게 긴 시간의 이별을 통하여 가족의 사랑과 소중함을 서로가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남은 기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아빠, 엄마랑 웃으며 만나자. 수야! 정말 사랑한다. -엄마가>

 

메일을 통하여 밀물처럼 전해 오는 사랑들. 매일 저녁 자식이 떠난 빈방에도 잠자리를 챙기고, 아들의 자리에 수저를 가지런히 놓아두고서야 밥이 넘어 간다며, 한순간도 자식을 향한 염려를 내려놓지 못하는 각별한 마음은 자녀들의 사랑의 주머니를 채워 그들의 삶을 소중하게 지켜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누구에게나 같은 삶의 방식이 허용되지는 않는다.

 

<다시 볼 수도 없지만, 다시 돌아오지도 않지만, 또 내일 만날 것처럼. -아들올림>

 

몇 년 사이에 아버지, 어머니와 차례로 사별한 후 할머니와 생활하고 있는 훈이의 편지. 친구들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황량하게 느껴지는 이국땅에서 아무도 읽어 줄 수 없는 독백으로 써 둔 한 줄의 글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는 감전된 듯 온 몸이 뻣뻣해졌다. 읽을 때마다 눈앞이 흐려지는 이 짧은 편지는 두 자녀의 부모로 살아가는 나조차도 끔찍한 공범자로 만들고 만다.

 

친구들이 부모님께 투정하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러면서 매일 사랑이 가득한 편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그리움을 혼자서 감당해온 시간들로 인하여 체온이 식어버린 듯 표정이 없다. 하지만 한 획 한 획 뼈에 새기듯 가슴에 남아 있는 피멍이 배어있는, 수신인도 없는 이 편지는 흐느낌도 멎어버린 절규였다.

 

이렇게 잘 자란 자식에게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못 다한 사랑을 가슴에 묻은 채 서둘러 눈을 감아버린 그 부모님들이 야속하다. 나는 그 녀석의 떨리는 손을 잡았지만 어떤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소리 없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훈아! 용기를 잃지 말거라, 하느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방법으로 너의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란 없다고 했단다.’

 

허물 많은 내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딸 보나와 아들 라파엘의 곁에 머무를 수 있도록 허락된 시간들이 참으로 과분한 은총으로 다가오는 이 순간, 나는 나의 자식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장래를 나의 의도대로 기획하여 지나치게 재촉하고 있지는 않는지, 최선보다는 최고에 대한 과욕으로 마음의 짐을 지우고 있지는 않는지, 그들의 적성과 능력에 따른 세심한 배려와 격려보다 나의 명분에 집착하여 상처와 고단함을 주고 있지는 않는지.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느냐 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몸부림으로 이불을 차 던진 채 싸늘한 새벽공기에 움츠린 그들에게 이불깃을 당겨 주고, 악몽의 두려움에 눌리는 밤이면 달려와서 안길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주는 것, 삶의 매듭마다 예측할 수 없는 방황과 외로움이 엄습할 때 체온으로 감싸주는 것, 냉엄한 현실의 경쟁 속에서 쓰라린 패배로 좌절하여도 기대의 눈길로 거두지 않고 기도해 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사랑은 없어 보인다.

 

사랑이란 작지만 소중한 감동을 통하여 가슴으로 잔잔히 번져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토록 소중한 사랑에 목마른 채 매순간 다가오는 외로움을 어금니로 깨물며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많은 훈이들을 기억하며, 내 자식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조금씩 나누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 세상을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빛이 될 것이다.

 

성모님의 달, 가정의 달 5월, 수많은 결심들이 쏟아진다 하여도 진정 손길을 건네는 이가 적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오늘도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쓰고 있을 세상의 많은 아이들을  떠올리니 너무 눈물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