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순교한 스물 세 분의 순교자 중에서 세 분은 한 가족이었어요. 서석봉 안드레아·구성열 발바라 부부와 사위 최봉한 프란치스코가 그 분들이지요.
서석봉 안드레아는 충청도 홍주 땅의 작은 마을에서 살면서 일찍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어요. 그는 첫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는 아픔을 겪으면서 영원한 삶에 대한 바람을 가졌어요. 그러던 중에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첫 남편을 잃은 구성열 발바라를 만나게 되었어요.
구성열 발바라는 충청도 홍주 땅 한내장벌의 열심한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구성열이라는 본명보다는 서과부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더 알려져 있었지요.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다 천주님의 뜻인 듯하오.
자매님이나 나나 모두 한쪽을 잃어버린 아픔을 가졌으니 서로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 아니겠소. 우리 남은 생을 주님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기로 합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어요.

1801년 서 안드레아, 구 발바라, 최 프란치스코는 충청도 일대의 모진 박해를 피해 청송 노래산 신자촌으로 옮겨왔어요. 비록 모든 것이 부족하고 힘들었지만 이들은 항상 함께 기도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하느님 사랑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지요. 그러나 이러한 행복도 잠시뿐, 1815년 예수 부활 대축일 아침에 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말았어요. 세 사람은 함께 붙잡힌 다른 신자들과 경주 진영으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받고는 다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어요. 대구 감영에서의 고문과 옥중생활은 더욱 지독해서 옥사하는 신자들이 많이 생겨났어요.
구 발바라는 체포 당시 혹독한 고문을 당했지만 용감히 잘 참아냈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삼모장이라는 고문을 당하게 되었는데, 삼모장이란 나무도끼로 살점을 찍어내는 아주 끔찍한 고문이에요. 이 삼모장의 고통은 구 발바라를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게 했고, 그녀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어요.
‘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게는 더 이상 이 고문을 이겨낼 힘이 없어. 너무 무섭고 두려워.’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린 사위 최 프란치스코는 장모를 위로하며 말했어요.
“하느님을 위하여 함께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결코 안 되겠습니다.”
구 발바라는 사위의 간절한 설득에 용기를 되찾아 배교의 유혹을 물리치게 되었어요. 그 후부터는 어떤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며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였어요.
서석봉 안드레아 또한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잘 이겨냈어요. 몸이 당하는 고통은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차라리 견딜 만했어요. 아내 구 발바라가 삼모장을 당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어요. 또 사위 최 프란치스코가 모진 고문으로 인해 세상을 떠날 때는 그 깊은 슬픔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아픔들에도 하느님을 향한 서 안드레아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어요. 오히려 하느님을 향한 순교의 마음을 더욱 굳게 만들었지요.
경상 감사는 이들의 믿음을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었어요.
“이 죄인들은 배운 바가 비록 십계라고는 하나 외우는 것은 불과 몇 구절이지만 오히려 더 깊이 미혹되어 뉘우칠 줄 모릅니다. 엄정한 형벌을 주기도 하고 알아듣도록 타이르기도 했으나, 뉘우치지 않고, 한번 죽기로 작심함에 완고하기가 목석과 같으므로그 죄상을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상 감사는 이들을 문초한 결과를 조정에 이렇게 보고하고 이들의 사형을 청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지요. 그러나 서석봉 안드레아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모진 고문으로 결국 감옥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1816년 음력 11월 1일, 관덕정 뜰에서는 대구 감영에 살아남은 일곱 명의 신자들의 사형집행이 거행되었어요. 다섯 명의 남자 신자들의 사형이 먼저 행해졌는데, 망나니의 칼을 맞으면서도 평화롭게 순교하는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뒤이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구 발바라에게 관덕정 관장이 말했어요.
“너희들 여자야 무엇 때문에 죽으려 하느냐. 아직 때는 늦지 않았으니 한 마디만 하면 놓아 주마.”
이 말에 구성열 발바라는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단호하게 말했어요.
“예수와 마리아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그들과 같이 천국으로 곧 올라가자 하시는데 어떻게 우리가 배교할 수 있으며, 이 잠시 지나가는 이 목숨을 보존하려고 참된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잃을 수 있겠습니까?”
이름 없는 한 산골의 여인이었던 구성열 발바라는 비록 나약한 여자였지만, 눈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도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며 죽음을 선택했어요. 그녀가 원치 않는다면 충분히 피해갈 수도 있는 죽음의 길이었는데도 말이에요.
서석봉 안드레아, 구성열 발바라, 최봉한 프란치스코 이들 가족들은 하느님을 향한 순수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거룩한 죽음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그들이 꿈꾸던 하느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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