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한티 영성관 1학년 신학생들의 일과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로 시작된다. 성경을 읽으며 저마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낱말들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서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 지어 한걸음 더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 있는 그들.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한 신학생들은 규정상 1년을 ‘영성의 해’로 정하여 두고, 한티 순교성지 내에 있는 한티 영성관(관장:한영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에서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외따로 떨어진 자연 속에서 1학년을 보내고 있는 신학생들은 깊은 영성의 시간을 통해 지금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맞고 있다.
2006년 사순시기의 절정이며 교회 전례의 정점인 성삼일. 올해는 한티 순교성지에서 교구장 이문희(바울로) 대주교와 남산동 유스티노교정 교수 신부들 그리고 한티 영성관 교수 신부들과 신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성삼일 전례와 예수 부활 대축일을 지냈는데, 일반 신자들의 참여도 함께 이루어져 더욱 이채로웠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 사랑, 그 한없는 사랑
한티의 산그늘이 짙게 드리워질수록 성당 안의 불빛은 그 밝기를 더해간다. 이 저녁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줌으로써 사랑의 성체성사를 이루시고 떠나신다. 주님 만찬 미사 강론에서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는 “예수님께서는 떠날 것을 아셨으므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제자들에게 주셨는데, 이것이 곧 또 다른 파스카를 이루는 길이었다.”며, “이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양의 피를 흘리는 제사가 아닌, 당신 몸으로 모든 이에게 사랑의 성체성사를 남겨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서 “요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들에 대응하는 순수함과 열정이 부족한 것 같다. 마치 예수님의 일들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무관하게 여기고 남의 이야기로만 듣고 마는데, 이제 예수님의 하신 일들을 잘 알아들어야 할 때.”라고 말하며 “오늘 사랑의 잔치, 사랑의 만찬, 사랑의 발 씻음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사랑의 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을 당부하였다.
강론이 끝나고 발 씻김 예절. 교구장 친히 1학년 신학생들 가운데 12명의 발을 하나하나 씻어 주시고 또 그들의 발에 사랑의 입맞춤을 하자, 순간 신학생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들 중 김시몬(시몬, 영천성당) 신학생은 “오늘 교구장님께서 저의 발을 씻어주신 것도 있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일인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람들을 위해 사셨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고 했다.
한티에 처음 왔을 때는 세상과 격리된 듯 답답함을 느꼈는데, 속세의 미련을 버리고 나니 오히려 더 큰 자유를 얻게 되었고 더 가뿐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한티 영성관의 1학년 신학생들. 그들은 매일의 학업과 기도 그리고 공동작업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법을 나날이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 - 깊은 슬픔 뒤에 오는 빛나는 희망
오후 3시 한낮의 햇볕이 내리쬐는 한티 순교성지. 순교자 묘역이 있는 산길을 따라 1처, 2처, 3처…옮겨가며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는 한티의 바람소리, 새소리도 멈추게 하는 듯 마음 깊이 전해 들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박흥수(베난시오, 성서성당) 씨를 만났다. 올해 신학교에 입학했다는 아들(박승용 마르티노)을 위해 한티 십자가의 길 기도에 참석했다는 박흥수 씨. 그는 “늘 맞이하는 성금요일이지만 이제 아들이 사제의 길을 가기 위해 신학생이 되었으니, 아버지 된 도리로 아들이 훌륭한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걸 희생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쳤다고 했다.
이어지는 순례자의 집 경당에서의 수난예식.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는 십자가 앞에 엎디어 큰 경배를 하였고, 교수 사제들과 신학생들 그리고 일반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 수난의 한없는 사랑에 공경과 감사를 드렸다. 하느님의 사람들을 너무도 사랑하신 까닭에 스스로 십자가의 고통을 스스로 받아 안으신 예수님.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었으니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죽으심으로 지극한 사랑의 본보기를 보여주신다.
말씀의 전례 강론에서 이문희 대주교는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면 우리도 그 사랑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요즘 우리는 하느님의 바람보다는 세상이 바라는 대로 쉽게 세상을 따라가며 살아가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부활 성야 - 빛으로 새로 태어난 나, 진정한 그리스도인
미사를 봉헌하면서 부활 성야 미사 때만큼 성경말씀을 오래 듣는 때가 또 있을까.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처음 교리를 배우던 때의 설렘, 기다림, 떨림의 감정이 교차된다. 세례를 받던 그날의 첫 마음으로 돌아가 세례 때의 서약을 새롭게 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 부활 성야 미사 강론에서 이문희 대주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세상의 이치를 따라 사는 사람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다.”며,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 모든 사람을 자기같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큰 감사를 드림과 동시에 우리 각자에게도 부활을 축하해야 한다.”고 전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첫 부활을 맞은 김성래(율리아노) 씨. 파스카 교화복지회 가족들과 함께 미사에 참석한 그는 “대주교님의 강론을 들으면서 세상과 하느님 나라 사이에서 그동안 나는 어느 길을 선택하여 살아왔던가, 하고 깊이 반성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같은 목표를 지닌 친구들과의 한티 생활이 마냥 기쁘다고 표현하는 황일성(대건 안드레아, 태전성당) 신학생. 그는 “성삼일 전례를 준비하면서 전례를 깊이 알 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다.”며, “특히 예수님과 함께 한 수난감실에서의 묵상은 참으로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했다.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 모두 빛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날,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시간 속으로 한티의 밤별들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예수 부활 대축일 - 새로운 삶의 시작, 사랑에로 나아가다
도심보다는 비교적 늦은 한티 순교성지의 벚꽃들이 드디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부활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살기 시작한 부활의 아침.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맑고 부드러운 햇살을 선사해 준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는 한티 신학생 가족들의 참여도 함께 이루어져 그 의미가 더욱 컸다.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의 심경 또한 한티 순교자들의 마음과 매한가지일 터. 다친 팔에 깁스를 하고 미사에 참석한 오용진(스테파노) 신학생의 어머니 구영숙(마리아 미카엘라, 국우성당) 씨. “오늘 대축일미사를 아들과 함께 봉헌하면서 아들을 신학교에 보낸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렸고, 먼발치에서 향잡이하는 아들의 의젓한 모습을 보니 더욱 감개무량했다.”는 말로 감추인 모성애를 드러내었다.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자기의 것을 다 내어주어도 또 주고 싶어한다는 내용으로 강론을 시작한 이문희 대주교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삶을 몸소 가르쳐 주셨듯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요구한다.”며 “우리도 하느님의 초대에 응할 때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서 피어나오고, 그럴 때 비로소 영원한 삶을 살게 된다.”는 강론을 끝으로 한티 영성관 신학생들의 특별한 부활맞이 전례는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현재 한티 영성관에는 한영수(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류지현(마태오) 신부, 조윤제(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이렇게 세 명의 사제가 상주하면서 1학년 신학생들의 영성면담과 생활지도를 맡고 있다. 1학년 신학생들의 담임교수인 한영수 신부는 “1학년 신학생들은 세상을 가지고 들어와서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가는 과정에 있는 젊은이들.”이라며 “한티에서의 생활은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 말씀의 힘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참으로 중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그동안 교구 신학생들이 거쳐야 했던 이냐시오 영성수련을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영성수련’으로 바꾸어 한티 신학생들에게 적용한 이는 2001년 당시 1학년 담임교수였던 박영봉(안드레아) 신부이다. 박영봉 신부는 “렉시오 디비나를 잘 하기 위해서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학생들에게 묵상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들려 준 다음, 성경말씀을 여러 번 읽고 묵상하면서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도록 하고 또 그 말씀이 어떤 의미로 와 닿는지 알도록 설명해주었다.”며 “그렇게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깊은 묵상의 단계로 나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더 깊이 느낌으로써 하느님과의 친밀함 속으로 빠져든다.”고 말한다.
한티 영성관의 신학생들은 학기 중에는 외출이 금지되어 있으며, 여름방학에는 사회복지시설에서의 봉사활동을, 겨울방학에는 한 달간의 필리핀 연수를 통하여 영어연수와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 등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상의 눈으로는 갇혀있는 듯 보이지만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이미 알고 있는 그들. 나날의 묵상과 영적체험을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서는 한티 영성관 신학생들의 일상은 오늘도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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