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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신부의 신앙상담
신앙상담


김지현(세례자 요한)|신부, 대구대교구 전산실장

질문 : 갑자기 신부님께서 제게 큰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맡고 싶은 자리도 아니고, 그런 일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말씀하셔서 엉겁결에 맡게 된 것 같아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맡기셨겠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못 고르셨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변 : 성경에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을 맡기시는 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니 부르심을 받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신심 깊은 노아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방주를 만들라는 터무니없는 주문을 내리시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난데없이 자기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성경은 고대의 신앙선조들이 거쳐야 했던 갈등의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점차 후대로 넘어오면서 그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겪어나가는 신앙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묘사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라는 명을 받고는 온갖 변명을 대며 피하려고 했고(탈출 3-4장), 판관 기드온(판관 6장), 예언자 예레미야(예레 1장), 예언자 요나(요나서) 역시 자신의 부족함을 들어 거부하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예”하고 응답하고 나서도 엄청나게 후회하며, 원망하거나 도피하려는 경향들도 보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도 이런 현상들은 계속 이어집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서는 예수님을 떠나게 만드는 결과까지 가져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던 부자청년은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라는 요구에 슬퍼하며 떠나기도 했습니다.(루카 17,18-23)

그러나 성경은 이런 변명과 갈등의 응답이 아니라 걱정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힘들지만 성실히 부르심의 신비를 살아가려는 이들의 모습에 더 큰 비중을 두며 서술해 나갑니다. 성모님의 경우가 그러하고,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그러합니다. 성경과 교회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나 자신과 세상과 하느님께 도움이 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르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는 직접적인 부르심과 다른 사람 특히 이미 부르심을 받아들여 살아가고 있는 교회의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간접적인 부르심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르심은 간접적인 부르심입니다. 그것은 직접적인 부르심보다 약한 부르심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즐겨 사용하시는 방법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간접적인 부르심을 통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가 서로가 받은 부르심을 확인해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라십니다.

부르심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언제나 하느님께서 먼저 부르십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자청해서 얻는 일이 아닙니다. 둘째, 부르심에 따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은 개인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힘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힘에서 나옵니다. 인간적인 부족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셋째, 부르심을 받으면 자기 생각으로 말하고 행해서는 안 되며 하느님의 파견을 받아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해야 할 책임이 주어집니다. 넷째, 내게 주어진 부르심은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 부르심과 협력관계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함께 협력하여 더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바라십니다.

부르심은 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뿐만 아니라 교회와 세상에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며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내가 미처 생각하기 전에 이미 긍정적인 응답이 있는 것처럼 부르십니다. 아브라함, 모세,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을 부르시는 한결같은 말씀은 “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마음도 생각도 없이 엉겁결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당황하지 마십시오. 필요한 힘과 능력까지 주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응답하십시오. 그리고 필요한 은사들을 청하며 기도하고, 직무에 필요한 지혜들을 갖추어 나가면서 성실히 부르심의 신비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협력자들이 늘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필요한 경우 도움을 청하며 좋은 결실을 맺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