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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기(氣)
중국철학에서의 기(氣)


조현권(스테파노)|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1. 들어가며
기(氣)는 중국철학에서 유래하는 개념으로 쉽게 정의되지 않는 매우 복잡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기란 개념은 몇몇 철학자들로부터 유래하는 것도 아니고,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철학자가 어떤 특정한 시기에 세운 어떤 확실한 이론에 속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개념에는 너무나 많은 상반된 견해와 해석들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를 물질로 정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영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물질과 영도 아닌 제3의 존재로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기는 하나의 철학적 개념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는 소위 ‘인기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판도라의 상자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이 ‘기’라는 개념인 것이다.

기개념은 대략 3,000년 전 중국철학과 때를 같이하여 생성된 너무나 오래된 개념으로서, 철학적인 개념으로 논의되기 이전에 벌써 민중의 일상 속에 살아 있었던 개념이다. 사람들은 위대한 자연의 현상을 기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으니, 먼저 하늘에 떠있는 신비한 ‘구름’을 ‘기’라고 보았다. 그 밖에도 사람들은 전 우주와 만물을 뒤섞으며 최종적인 일치에로 중재하는 역동적이고 근원적인 힘 등을 기로 이해하였으니, ‘공기, 입김, 숨, 생명의 숨결, 에너지, 내면적이고 심리학적인 힘, […] 생명의 힘’ 등이 기의 원초적인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기에 대한 관념들은 앞에서 살펴본 ‘성령’의 구약성서적인 개념인 ‘ruah’와 신약성서적 개념인 ‘pneuma’와 비슷하다.)

이러한 개념으로서의 기는 오늘날에도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에서의 의학(특히 침술), 예술, 철학, 학문, 마술, 무술(태극권 등), 건축, 도시계획, 영업계획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데, 근래에는 무엇보다도 건강상의 회복과 일반적인 안녕을 목표로 하는 기운동 혹은 기공이 유행이다.

중국철학에서의 기에 관하여 고찰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중국 철학자들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보다 현실적인 질문을 더 많이 다룬다는 것이고, 개별적인 질문을 즐겨 추구하지만 그에 관한 구조적인 표현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에 관한 상세하고 조직적인 연구에는 당연히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며, 그러기에 기를 논할 때에는 개별적인 저자들에 관계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이해해야 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개념에 관계한 모든 철학자들을 다 논한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중국적인 기 이론은 한국 혹은 일본의 기 이미지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중국 외의 수많은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다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우선 중국 철학자들의 기 이론을 소개하며, 아울러 기에 관한 한국 철학자들의 중요한 사상들도 설명할까 한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기사상의 연구”가 아니라, “기개념의 도움으로하는 성령이해의 토착화”를 검토함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싶다. 기 이론들과 그리스도교적인 (성령)신학 사이에는 외관상으로는 서로 분명하게 밀접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간에 공통점과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중국 고대에서의 기관념의 발전
중국철학의 주된 내용은 고대에 발전되었는데, 기개념도 고대의 초기 고전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고대의 사상가들은 만물을 기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였으며, 이런 이유로 기는 관념상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하여 기개념은 진(秦)왕조 이전, 즉 기원전 2100-221년에 그 발전의 첫 단계를 지나게 된다.

가. 기라는 단어에 대하여
기(氣)는 고대 중국 문자 ‘三’ 혹은 ‘   ’에서 유래하는데, ‘三’과 ‘   ’는 구름의 흐름을 뜻한다. 三은 물론 ‘셋’을 나타내고 ‘다수’의 뜻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三’과 ‘   ’는 기가 구름처럼 여러 단계로 피어오른다는 것을 나타낸다.(구름기운 기< >참조) 이렇게 하여 기는 처음에 ‘운기(雲氣)’를 의미하였다. 고대의 사람들은 하늘에 신비하게 떠있는 구름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우주적인 질문을 기로써 설명하였으니, 기는 무엇보다도 신적인 에너지로 파악된 것이다.

나. 좌전과 국어에서의 기
연대기인 좌전(左傳)과 국어(國語)에서는 기가 철학적인 의미를 갖추어 나타나는데, 여기서 기는 하늘과 땅과 인간의 ‘생성’과 ‘변화’와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기에 관한 이론이 아직도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사회의 현상에 대한 좌전과 국어의 해석은 기개념을 윤택하게 하고 있다.

* 좌전에서의 기
상(商)나라(기원전 16-11세기)의 연대기 좌전에서 기는 만물과 자연의 ‘미세한 물질’로 나타나는데, 이 물질은 ‘운동’하고 ‘변화’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물의 운동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기는 음(陰), 양(陽), 풍(風), 우(雨), 회(晦), 명(明)으로 분류되는데, 이를 육기(六氣)라고 하며, 좌전은 육기의 교감과 변화로 ‘봄(春)·여름(夏)·가을(秋)·겨울(冬)’ 네 계절의 형성과 ‘금(金)·목(木)·화(火)·수(水)·토(土)’ 오행(五行)의 발생 및 ‘매운맛·신맛·짠맛·쓴맛·단맛’ 다섯 가지의 맛(五味), ‘흰색·푸른색·검은색·붉은색·노란색’ 다섯 가지의 빛깔(五色),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 다섯 가지의 소리(五聲)의 생성을 설명하였으며, 사람 몸의 질병은 물론이고, 사람의 사상과 ‘좋아하고 미워하며 기뻐하고 성내며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여섯 가지의 감정(六志)과 의지도 육기에서 근원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기는 인간의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이해되는데, 하나의 기가 너무 지나치면 균형을 잃게 되고 뒤섞여서 사람들이 본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기는 예로써 받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좌전의 가르침이다. 

* 국어에서의 기
주(周)나라(기원전 11세기-221년)의 연대기 국어(國語)에서 기는 ‘천지음양(天地陰陽)의 기’로 나타난다. 즉 기는 “하늘과 땅의 기’ 혹은 ‘음과 양의 기’로 이해되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기가 자연의 객관적인 본질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국어에 의하면, 음과 양의 두 가지의 기는 서로 대립되어 있고 모순되면서도 서로 의존하며 작용하는 것으로, 기 내부의 이 같은 대립과 교감운동이 만물의 운동과 변화를 야기시킨다. 음양의 기에 대한 이러한 사상은 중국철학에서의 기관념에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천지음양의 기로서의 기사상(氣思想)은 오늘날의 자연보호운동과도 어울리는 사상이다. 산과 늪, 시내와 못은 음양의 기가 만든 것으로 합당한 이유로 높거나 낮고 구체적 형상과 종류를 이루고 있으니, 음양의 기는 파괴되지 않으면 그 질서를 잃지 않고, 동식물이 풍부하게 번식하며, 백성들은 재물을 쓸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음양이 어울려 두 기가 통하는 것이 온 세상에 복이 되는 것이다.

국어는 기를 정치의 원리로 고찰하면서, “정치는 음악과 같으니 음악은 조화를 따르고, 조화는 고름을 따른다.”고 한다. 따라서 음양의 기가 조화되는 것은 곧 정치를 위한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다. 국어에 따르면 인체도 기로 이루어져 있으니, 기는 사람의 모습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정(性情)도 결정한다. 사람은 자기 몸 안의 기를 지켜 음양의 조화를 이룰 때, 그 마음에 조화를 유지하고 말함에 실질을 갖게 되며, 행위에 마땅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기는 평안해야 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받아들여야 하며, 입은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기는 인간의 심성수양(心性修養)과 관련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3. 초기 고전 유교와 도교에서의 기
유교와 도교는 서로 심하게 결합되어 나뉘어질 수 없는 사상체계이며, 여기서 기는 우주의 구성재료로 고찰된다. 중국 사상의 이 두 기본 방향의 공통점은 이러한 사상이 음양과 오행(木·火·土·金·水)이라는 고대 두 학설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이다.

가. 초기 유교에서의 기
유교는 중국철학의 근본 실체이며,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하나의 중요한 학파이다. 이 가르침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충성과 관용, 절제와 중용을 옹호하는 특징이 있다.”

* 공자의 기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는 유가학의 창설자로서 중국의 철학적 사상을 여는 사람이며, 후대의 계속되는 모든 중국 사상체계의 준거가 되는 사람이다. 그의 말을 기록한 논어(論語)는 기의 문헌적 고찰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으로서 기를 네 가지 종류로 나누고 있는데, 병기(屛氣 : 숨·호흡으로서의 기), 혈기(血氣 : 목숨을 유지하는 피로서의 기), 사기(辭氣 : 말투로서의 기), 식기(食氣 : 태도로서의 기)가 그것이다. 이중 혈기에 대한 논어의 표현을 보자.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 젊어서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색욕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이 되면 혈기가 바야흐로 굳세므로 다툼을 경계해야 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이렇게 공자가 갖고 있는 기에 관한 관념은 인간의 삶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그가 말하는 기는 사람이 내뿜고 들이마시는 숨, 사람의 유기체적인 생리기능, 말투와 태도와 같은 인간 생활기능과 관련된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보다 현실적인 질문을 더 많이 하는 중국인에게 있어서 항상 고찰의 주축이 되는 것은 ‘실제로 주어진 존재’인 ‘세상 안에서의 사람’으로서, 기도 먼저 인간과 관련되어 고려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에게 있어서 기는 일반개념으로서 아직 철학적인 범주로 쓰이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윤리적 본성과 연결되어 나타나며, 후세의 유가(儒家)들은 기와 심성(心性)이 서로 관련된다고 하는 혈기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유가 심성학설의 중요한 내용으로 발전시킨다.

* 맹자의 기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는 공자의 사상을 인(仁)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 철학체계로 발전시킨다. 맹자는 공자보다 기를 더욱 심원하게 표현하지만, 그의 설명은 그 사용례(使用例)와 어의(語義)에 있어서 논어에 비하여 훨씬 넓고 또 복잡하게 되어 있기에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성선설(性善說)에서 기를 논의하기 시작하는 맹자는 공자의 ‘혈기’사상을 발전시켜 기를 사람 몸 안에 담겨있으나 끝없이 넓고 크며 굳센 ‘호연지기(浩然之氣)’로 규정한다. 그가 강조하는 이러한 호연지기는 크고 굳세고 정의롭고, 우주와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활기(活氣)이며, 도의(道義)에 병행하는 활기이고, 외부에서부터 엄습해 와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행동함으로써 인간의 내심(內心)에서부터 길러지는 활기이다. 맹자는 만일 사람이 호연지기를 정확하게 길러서 채우고 해치지 않으면, 전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찰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의 이러한 기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정기(正氣)로서 일종의 도덕정신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는 인간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 안에 퍼져있다는 것이 맹자의 생각으로서, 그가 설명하는 기는 지속적인 규정된 연습을 통해서 강화되는 우주적인 에너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이를 잘 길러 알차게 하고 넓고 크게 하면, 이는 지극히 크고 굳세어지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맹자의 기는 이렇게 인간의 몸을 가득 채우는 극미한 구성요소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 즉 사람의 마음과 의지와 기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니, 뜻과 기와 마음의 일치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결 같으면 기를 움직이고, 기가 한결 같으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맹자는 기를 심리학적인 영역에 부속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선하고 또 좋은 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말하길, 사람들은 금수(禽獸)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기를 배양하고 간직해야 한다고 하였다.

* 순자의 기
순자(荀子, 기원전 300-238)는 기를 고대의 사고(思考)로 더 깊이 연결시키는데, 기가 인간 삶에만이 아니라 순 물질적 존재에도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 의하면 하늘·땅·사람·우주·사물에는 모두 기가 있으며, 이 기는 자연의 기로서 하늘과 땅과 만물과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물질원소이다. 수화(水化)는 기(氣)가 있되 생이 없고, 초목(草木)은 생(生)이 있되 지(知)가 없고, 금수(禽獸)는 지(知)가 있되 의(義)가 없으나, 사람은 기가 있고 생이 있으며 지가 있고 또한 의가 있으니 그러므로 천하(天下)의 귀(貴)가 되는 것이다.

순자는 맹자와는 달리 인간의 본성이 태생적으로 악하다 생각하여, 기를 보존하는 것보다 다스리는 것을 더 중요히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