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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에서의 기(氣)
성령과 기(氣)


조현권(스테파노)|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3. 초기 고전 유교와 도교에서의 기

나. 초기 도교에서의 기
도교의 중심은 노자와 장자의 도론(道論)이다. 도론에서는 사람은 생각과 행위에 있어서 “모든 것을 산출하나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며, 행동하나 뽐내지 않으며, 모든 것을 돌보나 다스리지 않는” 도(道)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 노자의 기
도가의 창립자인 노자(老子, 기원전 604-531?)는 도덕경(道德經)에서 기는 어린 아기처럼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잘 조화된 활기인 ‘충기(沖氣)’로 표현되며, 이는 ‘만물생성론(萬物生成論)’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음양충화(陰陽沖和)’ 혹은 ‘음양조화(陰陽調和)’된 힘으로서의 기는 창조를 위한 기본적 원리가 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도가 변화·생성해서 혼돈의 기가 나오고, 기가 변화하여 음양의 기가 나오고, 음양의 기가 변화하여 하늘·땅·사람이 나오고, 나아가 만물이 변화·생성된다.” 기는 ‘하나’이며 우주의 ‘나뉘지 않은 혼돈의 기’로서, ‘물질성’과 ‘운동성’이라는 두 가지의 뚜렷한 특징을 갖는다. 즉 기는 음양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러한 음양이 서로 부딪히며 작용하는 과정에서 ‘충기’가 화합하고 변화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만물인데, 이러한 기는 형체가 없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물질적 존재라 할 수 있다.

노자는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우주 만물의 본체이며 만물의 운동 변화를 위한 총체적인 법칙인” 도를 자기 철학의 최고 범주로 삼았는데, 여기서 기는 도가 변화하여 만물을 생성해 내는 중간 고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장자의 기
장자(莊子, 기원전 369년경-286년경)는 기에서 하늘, 땅, 사람, 사물의 기원을 보며, 기로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을 설명하고자 한다. : 여러 종류의 기가 모이면 사람과 만물이 생겨나며, 기가 흩어지면 사람과 만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과 죽음은 기의 변화, 기의 모임과 흩어짐(離合聚散)이다.

장자의 기는 이렇게 생명을 산출하는 힘인데, 이는 도의 창조적인 삶의 역학 안에서 존재하는 힘으로, 현상계의 보다 근본에 가로놓여 있는 원질(原質)처럼 보인다. 이렇게 장자의 기는 우주론과 자연주의적인 생의 철학의 근본개념이라 할 수 있다.

장자는 무엇보다 기의 일치의 특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기를 ‘일기(一氣)’라고 칭하였다. 하지만 이 일기는 단순한 하나가 아니고 음양 두 기로 나누어지며, 음양 속에서 자신의 충만한 힘을 펼칠 수 있다. 장자의 이러한 ‘기일원론(氣一元論)’적인 사상은 중국의 전통적인 기 사상의 기초가 된다.

장자에게 있어서 인간적인 기는 하나의 특별한 힘인데, 여기서 언급할 만한 것은 이러한 기가 ‘신기(神氣)’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 “기가 모여 사람이 되면, 사람 몸 안에는 기를 담고 있게 되고, 이것이 사람의 신기, 곧 사람의 정신세계가 된다.” 기는 비어 있으면서 만물을 받아들이므로, 사람은 기로써 세상 만물을 욕심에서 벗어나 수용하고 그를 통하여 정신적 자유를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강조되는 것은, 사람은 사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순수 육체적인 조직인 귀나 마음을 쓰지 말고 ‘직관으로서의 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에 관련한 장자의 생각은 노자의 그것과 같은데, 그에 의하면 도는 기의 본체이며, 하늘과 땅과 사람과 물질의 원천이고, 기는 도가 만물을 변화생성해내는 과정의 중간 고리에 해당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들은 계속되는 기에 관한 연구에 기초가 된다.

4. 우주적 생명력으로서의 기
중국의 철학자들이 전개한 우주론은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고 있음에서 출발하는데, 생명에 관한 문제의 해답이 바로 생명의 우주론에서 역동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기’이다. 즉 많은 철학자들이 기를 우주론을 위한 근본개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는 음과 양, 하늘과 땅, 도(道)나 리(理) 등과 같은 다른 개념들과도 관련되어 있다.

가. 고대에 있어서의 ‘음양의 기’
일반적으로 음과 양은 중국철학을 지배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모든 사물과 세계변화의 구성원리이다. : 모든 이루어진 것들에서 한 사물은 다른 것들과 똑같지 않다. 그렇게 많은 사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실제에 있어서 하나의 사물에 불과한 것이니, 즉 음과 양 이외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과 땅의 변화가 이 두 극단으로부터의 연유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음과 양, 이 두 극단의 근본적 원리이론은 이미 기원전 4세기경부터 있어온 것으로, 고전적 사상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음과 양은 세계의 진행에 있어서의 근본질서를 나타내는 우주철학의 두 요소로 나타난다. 여기서 음은 여성적, 수동적, 수용적이고 헌신적이며 은폐적인 원리이고, 양은 남성적, 능동적, 산출적이고 창조적이며 밝은 원리이다. 음과 양은 양분하는 요소로서가 아니라 역동적인 이원성으로 이해된다. : “이 양극성은 항상 리드미컬한 운동 속에 있다. 그 때문에 이 양극성은 고착된 실체적인 이원론의 의미로 파악되는 것이다.”

* 황제내경에서의 음양의 기
진한(秦漢)시대(기원전 221-기원후 220)의 의학서 《황제내경(皇帝內徑)》에 기에 대한 서술이 들어있다. 여기서 기는 다시 ‘하늘과 땅의 기’와 ‘음양의 기’로 이해되며 ‘네 계절의 기’로 칭해진다. 주목할 것은 ‘오행의 기(金續乫水岫訖土)’가 자연계만이 아니라 인체에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生理之氣) 인체는 안으로 천지와 음양의 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인체 생리의 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기는 서로 통하여 감응한다. 만일 사람이 기와 그 상호관계를 인식하면, 이 생리의 기의 평형을 이루어 신체의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다. 사람은 음양의 영향 밖에서는 살 수가 없으므로 그 음양의 조화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의 기라는 구분은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며 서로를 포함하면서 서로 삼투하는 것이다.”

* 회남자에서의 기
서한(西漢)시대의 회남왕(淮南王 劉安, 기원전 179-122)이 주관하여 편찬한 책인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기는 일반적인 만물의 기초가 되는데, 그것은 음과 양 두 기의 화합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만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는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정미한 원시물질이며 도에 의해서 낳아지는 것으로 고찰되며, 이 음양의 기는 두 ‘신(神)’으로 표현된다.

조화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이고 음양의 기가 운동, 변화하는 방향을 나타내는데, “음이 성하면 양으로 돌아가고, 양이 성하면 음으로 돌아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어야 비로소 ‘조화’가 된다.” 회남자에 의하면 생명의 존재와 발전은 형(形)과 기(氣)와 신(神)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것이다.

* 동중서의 기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는 ‘하늘과 인간은 감응한다.’고 하는 기본 관념에서 기를 생각하는데, ‘천지가 있기 이전에 존재하며, 천지 만물을 낳는 근원’이 되는 근본적인 기로서의 ‘원기(元氣)’를 언급한다. 이 원기가 운동하는 과정 중에 나누어지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음양의 두 기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조화가 논의되는데, 만물도 ‘음양의 기’와 ‘천지의 기’의 교감과 조화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이러한 “음양의 기는 하늘에도 있고 인간에도 있다. 사람에 있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고, 즐겁고, 화나는 것이 된다. 하늘에 있는 것은 따뜻하고, 맑고, 차갑고, 더운 것이 된다.” 하늘과 인간은 서로가 감응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며, 음과 양은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니, 가장 큰 도리는 조화이기 때문이다. 음양의 기가 고갈되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를 아끼는 데에 있다.

나. 중세 이후의 ‘음양의 기’
음과 양의 기가 두 개의 기인지 아니면 한 개의 기인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니, 그 답이 대부분 애매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세 이후의 음양의 기에 관한 이론은 두 가지 방향으로 고찰할 수 있다.

* 하나의 기로서의 ‘음양의 기’
많은 철학자들이 음양의 기를 하나의 기로 생각한다. 모든 사물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지는데, 기는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몸을 갖고 있지만, 하나의 사물이라는 것이다. : “천지는 단지 하나의 기일 뿐이지만 그것은 스스로 음양으로 나누어지며, 음과 양 두 기가 서로 감응함으로 인해서 만물이 화생(化生)한다.” 기는 음과 양의 대립으로부터 ‘상호감응’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니, 이들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의존하며, 서로 단일화하면서 서로를 포함한다. 음양의 모순과 대립이 기의 운동과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은 기의 중요한 특성이다. 여기서 음과 양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기는 ‘태극(太極)’으로 이해된다.

* 두 개의 기로서의 ‘음양의 기’
이와 반대로 많지는 않지만 음양의 기를 ‘두 개의 기’로 여기는 철학자들도 있다.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기가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스스로 음양이 되는 하나의 기가 ‘두 개의 기’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