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은퇴를 하신 선배 선생님과 함께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 당시 교무실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직원이 한 명 있었는데, 주로 전화를 받거나 심부름을 하는 등 사소한 업무를 맡은 임시직원이었다.
온몸이 죽죽 늘어지는 한여름의 5교시 수업은 생각만으로도 맥이 풀린다. 더위와 식곤증으로 몸과 마음이 무겁고, 잠시 의자에 기대어 눈이라도 붙였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싶은 심정이다. 기다리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빨리 다가오듯, 수업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에 충혈된 눈을 비비며 천근이나 되는 몸을 추스른다. 주섬주섬 책과 분필을 챙겨 들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던 선배 선생님, 전화기 앞에서 한가하게 앉아 손톱을 후비며, “수업에 빨리 들어가세요!”라고 웃으며 재촉하는 허양이 부러운 듯 무심히 한마디 던지는 말, “허양! 나하고 자리 바꿀래?”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익숙하면서도 자신을 평가하기는 싫어하고, 인사를 받는 일에 익숙하고, 예의를 갖추거나 접대하는 일에 인색하며, 스스로 똑똑하면서도 사회의 물정에 어두워 바깥에 나가면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교사들이 집단적으로 머무르는 곳.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왠지 두렵고 독특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요새처럼 부담스러운 장소로 취급되기도 하는 교무실. 그러나 일생의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는 우리 교사들에게 교무실은 많은 애환과 즐거움의 발원지가 되기도 한다.
요즈음 시대의 고등학교들 중에 비평준화 지역에 위치하여 한해 한해의 대학 입시 결과가 학교의 위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우리 학교와 같은 처지의 학교들이 가장 힘겹다. 매년 반복되는 무한 경쟁 속에서 선생님들의 고충이 참으로 깊고도 고단하다. 비록 입시가 아니더라도 삶의 중요한 시점에서 일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시기를 사는 학생들에게 우리 교사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그 업무의 중요성에 비하여 선생님들 상호간의 인격적인 의존성이 낮은 것 또한 큰 특징이다. 교과 지도가 업무의 대부분인 선생님들은 각자 개별적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학년 담임이 아니면 마치 다른 직장에 근무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부서별로 각자 독립된 업무로 구성되어 있기에 선생님들의 상호협력도 그렇게 절실하지가 않다.
교사들은 누구로부터 간섭이나 비난에 민감하며 업무에 대하여 강요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시스템이나 위계에 의한 업무 수행보다 수평적 인적구조 속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의 열정을 지켜 가야 하기에 그만큼 외로움도 깊다. 교무실은 서로 의존된 듯 하면서도 격리된 사람들이 앉아 있고, 요란한 듯 하면서도 선뜻 나서서 깨어 버리기 어색한 정적에 묻혀 있으며, 긴장과 피로가 자욱한 회색의 공간이다. 평등하지만 따듯함이 부족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자제한다.
이런 집단 속에 허양의 자리는 조금 독특했다. 단순히 전화를 받고 잔심부름을 해주는 역할이 전부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상냥한 표정으로 농담도 하고, 가끔씩 가벼운 잔소리도 하면서 애교도 보이고 머리의 스타일과 갈아입은 옷에 관심을 보여 주기도 한다. 선생님들에게 대놓고 하지 못하는 교장, 교감 선생님의 질책을 받을 땐 굵은 눈물을 흘리고서는 금방 잊어버린 듯 밝은 얼굴로 언제나 즐겁게 살아가는 솔직한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부탁을 할 때는 달려와 팔에 매달리는 등 교사들 상호간의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실수를 두려워하여 절제되고 규격화된 삶의 방식으로는 닿을 수 없는 어떤 편안함,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 집단에서 경쟁과 자존심을 뗌으로써 오는 자유로움을 보게 된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상호간에 터놓고 이야기 하지 못한 응어리를 철없는 이 어린 아이에게 실없이 던지는 한마디 농담으로 풀기도 하고, 약간의 실수가 부담스럽지 않은 유일한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젊은 영혼을 다루면서도 투쟁과 같은 교육 현장에서 스스로를 감금한 채 여유를 갖지 못하는 선생님들에게 사람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깊다는 것이 참으로 낯설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깨닫지 못하여 불행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더 많이 알고 더 많을 것을 가졌다는 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그렇게 자신을 낮추고 어설픈 것을 인정하는 한 사람이 세상을 얼마나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가를 볼 수 있다.
겸손하고 가난한 길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뿐 내가 가지 않으려는 이기심이 부끄럽고 두렵게 만드는 허양. 손톱 후비던 것을 멈추고 동그란 눈으로 치켜뜨고는 아버지뻘 되는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쾌활하고 밝은 목소리로 응수를 했다. “좋아요, 선생님!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뭐든지 이야기 해봐!” “봉급도 바꿔요.”
교실로 향하던 선생님들과 의자에 앉아 졸음에 절어 있던 선생님들, 잠시 흥미로운 대화에 어렴풋이 관심을 기울이다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허양! 완승이야, 녀석 재치는 있어 가지구.” 갑자기 교무실에 가득 생기가 돈다. 의기가 양양해진 허양은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마치 관중을 향해 답례라도 하듯이 두 손을 들어 인사하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선배 선생님의 마지막 펀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좋아, 그럼 나이도 바꾸자.” 비명 같은 허양의 반응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싫어요!”
나른한 오후 선배 선생님이 걸어가는 긴 복도에는 슬리퍼 소리와 함께 너털웃음이 허허롭게 메아리가 되어 퍼져 나간다. 이제는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밝고 맑게 살아가고 있을 허양, 건강 때문에 조기 퇴임하여 소식도 알 수 없는 선배 선생님 그리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들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