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경주감영에선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고문이 시작되었어요. 이들은 모두 청송 노래산에서 숨어살다가 전지수라는 사람의 배신으로 이 곳에 잡혀온 사람들이에요. 김윤덕 아가다 막달레나도 이때 함께 붙잡혔어요. 김 아가다 막달레나는 경상도 상주 고을 은재에서 태어났으며, 경주에서 옥사한 박 바오로의 이모이기도 해요.
벌써 며칠째 고문이 이어졌어요. 여러 차례에 걸친 힘든 고문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신앙을 증거하는 김 아가다 막달레나를 보고 관장이 말했어요.
“무식하기도 하다. 대관절 무엇 때문에 죽으려 하느냐?”
“비록 비천하고 무식하다 하더라도, 조물주 천주의 은혜를 몰라보고 그 분을 배반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가다 막달레나는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대답했어요.
잡혀온 신자들은 천주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진 고문을 용감하게 견뎌냈어요.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갔지요. 결국 노래산에서 잡혀온 신자들 중 김윤덕, 고성대, 고성운, 구성열 네 사람만이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이들은 다시 경상감영이 있는 대구로 이송되었어요.
경상감영에서는 더욱 모질고 힘든 고문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경상감사 이존수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지요. 공을 세우고 싶은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고요.
“에잇, 끈질긴 놈들. 안 믿겠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저도 좋고 나도 좋은데 어찌 이리 고집을 부린단 말이더냐. 네놈들이 아직 매맛을 덜 본 모양이구나. 오냐, 어디 두고 봐라, 내가 네놈들을 반드시 배교시키고야 말테니. 여봐라, 저놈들 입에서 안 믿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저들을 사정없이 쳐라!”
지금까지 용감하고 꿋꿋하게 잘 참아낸 아가다 막달레나였지만, 더욱 세차게 퍼붓는 매질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어요. 결국 그녀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해 배교하겠노라고 말하고는 옥에서 풀려나게 되었어요.
그녀가 막 감영의 문을 나서려는데 때마침 안동진영에서 이송되어 오던 김종한 안드레아 일행과 마주쳤어요. 김 안드레아는 한눈에 그녀가 지금 배교를 하고 풀려나는 길임을 알아차렸지요. 그는 호송하는 포졸들이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가다 막달레나를 향해 말했어요.
“여보시오, 부인. 어인 일이시오?”
“더 이상은 매를 못 견디겠어서요.”
김 아가다 막달레나는 힘없이 대답했어요. 그녀는 조금 전까지는 몸이 아팠지만 천주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으로 이제는 가슴이 아파왔어요.
“이거 아주 좋은 기회를 놓칩니다. 그래,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무엇을 위해 더 살려고 하시오? 지금 주님을 거부하고 여기서 나간다 한들 그래 몇 해나 더 살 것 같습니까?”
“하기는 제가 지금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마는 내가 오늘이나 내일 죽지 말란 법이야 없지요.”
“그렇다면 지금 착하게 죽는 것이 천 번 낫지 않습니까? 생명의 주인이신 천주를 배반하고 어디로 가서 누구의 힘으로 더 살기를 바란단 말이오!”
김 안드레아는 힘 있는 말로 그녀를 설득했어요.
아가다 막달레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용기가 생겼어요.
“예, 그렇습니다. 잠깐 잘못 생각하고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뻔했습니다.”
김 아가다 막달레나는 발길을 되돌려 김종한 일행의 뒤를 따라 다시 감영으로 들어갔어요. 이제 들어가면 다시는 살아나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에요. 포졸들은 욕설을 퍼붓고 때리고 밀치며 말렸지만, 막무가내로 관장에게 나아가는 그녀를 막을 수가 없었어요.
“왜 이리 소란스러우냐? 아니, 너는 조금 전에 놓아 준 죄인이 아니냐? 왜 다시 왔느냐?”
관장은 그녀를 알아보고 물었어요.
“아까는 혹형을 견디다 못해 잠시 천주를 배반하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그걸 뉘우치고 다시 관장님 앞으로 왔습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실되게 저의 믿음을 증거합니다.”
관장은 살려 준 은혜도 모르고 다시 찾아온 그녀가 무척 괘씸했어요. 관장은 그녀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 내쫓으려고 했어요.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자신의 배교를 취소했어요.
“나으리, 제발 저를 죽여주십시오. 바른 정신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천주님을 절대로 배반 못합니다. 죽어도 못합니다.”
관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쳤어요.
“고얀 것! 오냐, 네가 정녕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구나.
좋다, 네 소원대로 해 주지. 여봐라, 저 죄인을 형틀에 묶고 죽도록 쳐라!”
형졸들은 김 아가다 막달레나에게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매질을 퍼부었어요.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가 허옇게 드러났으며 온 몸이 피로 물들었지요.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감옥으로 옮겨졌어요.
“예수…마리아…예수…마리아…”
그녀는 무의식 중에 ‘예수 마리아’를 되뇌이고는 곧 숨을 거두고 말았어요.
1815년 5월, 김윤덕 아가다 막달레나는 50여 년의 이 세상 삶을 끝내고 꿈에도 그리던 천주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비록 순간적인 약한 마음으로 믿음을 잃을 뻔도 하였지만, 그로 인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더 강해져서 용감하게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순교의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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