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사순 제1주일 : 마르 1, 12-15
오늘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의해 광야로 보내어집니다. 그렇다면 성령에 의해 보내어진 광야는 어떤 곳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던 곳입니다. 또한 천사들이 예수님을 시중들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광야’라는 곳은 바로 천사가 예수님을 시중들었던 곳인 동시에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했던 곳입니다. 이러한 광야 생활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바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처음으로 맞이하는 첫 주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참 지긋지긋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이들은 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이야기 합니다. 또 이 세상엔 천사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생활하고 있는 곳,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은 지옥과 같은 세상이기도 하며, 천사들로부터 시중을 받았던 천국과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즉 복음을 실천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번 사순시기 첫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해보는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로 인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나로 인해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것인지를….
3월 12일 사순 제2주일 : 마르 9, 2-10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으로 올라갔던 제자들.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고 그리고 그 자리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제자들은 변모된 예수님에 대해서 겁을 집어 먹었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만큼 충격이었고 놀라운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제자들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즉 제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맞이하게 될 수난과 죽음을 내다보시고 또 그 외에 외부로부터의 박해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계속되는 영광스런 삶이 분명히 있고 하늘나라에서의 그런 영광스런 삶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순시기가 한창 시작되는 지금 시간에 예수님의 영광스런 모습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와닿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의 길 또 스스로의 길에 힘과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 길을 끝까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놀라움과 기쁨을 미리 엿보여 주시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3월 19일 사순 제3주일 : 요한 2, 13-25
성전 뜰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로 북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서 이 광경을 보시고는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행동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전은 바로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면서, 기도하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전은 장사꾼들과 환전상들로 인해 더 이상 하느님이 머무르시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기도하는 집이 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장사꾼과 환전상들로 인해 성전이 물질적인 것과 쾌락적인 것이 존재하는 집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하시면서, 당신 자신이 참된 하느님의 집이라고 밝히십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번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몸을 우리 안에 받아 모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 역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몸 그리고 우리 주위 사람들의 몸 역시 하느님의 집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이 하느님의 집을 얼마나 깨끗하게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몸을 모시는 이 거룩한 하느님의 집이 그릇된 습관과 물질과 향락만을 추구한다면, 또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만 너그럽게 타협한다면 이런 모습 또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성전에서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제 우리의 모습은 변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거룩한 집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었던 우리의 그릇된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 하는 회개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바꾸고, 생활 방식을 바꾸어 나갈 때 진정 자신이 원했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3월 26일 사순 제4주일 : 요한 3, 14-21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어떠한 사람이 살고 있을까요? 복음은 빛을 사랑하는 사람과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을 사랑하는 사람과 어둠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빛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빛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밝혀 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간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또한 빛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 빛에 비추어서 내가 얼마만큼 깨끗한지를,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빛을 사랑하는 사람, 즉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즉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내어놓고 그것이 예수님께 가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내 안에 예수님으로 가득 채울 때, 나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고 빛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애써 감추려고 하고 내가 혹시 드러날까 노심초사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행동을 제재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기준에 사로잡혀서 남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기 싫어하고 만나기도 싫어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둠을 더 사랑함으로써 멸망에 이르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또 우리 인간이 단죄와 처벌을 받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어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제사를 통하여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전의 자신의 것들을 버리는 것이 싫기에, 더 나아가 그런 것들에 집착하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심을 생각하려 하지 않고 그분 사랑의 손짓으로부터 얼굴을 돌립니다.
주위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는데, 어찌하여 우리는 자꾸 어둠 속에 머무르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것을 버리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아니면 새로 나기를 두려워해서일까요?
이번 주간 나는 빛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어둠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