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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서창환 화백
나무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네는 화가


김명숙(사비나) 본지 편집실장

서창환(기리꼬) 화백, 그는 평생 ‘나무’그림을 즐겨 그려 온 원로 서양화가이다. 그것도 잎이 다 떨어진 나목(裸木)은 그의 화가 인생에서 주요 작품 소재로 등장한다. 화폭마다 푸른 보랏빛으로 일관된 색채의 나무를 그림으로써 나무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넨다.

이번 달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대구대교구 가톨릭 미술인회 초대회장을 시작으로 25년 동안 회장 직을 수행해 오면서, 특별히 30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전시회를 열도록 뒷받침하여 가톨릭 미술인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해 온 서창환 화백을 만나 보았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의 한 아파트 단지, 서창환(기리꼬, 지산성당) 화백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모처럼 겨울다운 추위가 찾아들어 사람들의 표정도 마냥 시릿하게만 보이는데, 서창환 화백의 집안으로 들어서자 신비스러울 만큼 푸른 보랏빛의 나무 그림들은 바깥 날씨와는 달리 집안의 분위기를 한층 온화하고 아늑하게 만들어준다. 

 

평생을 교단에서 후학을 가르친 교육자로 또 화가로서의 삶을 살아오면서 30여 회의 개인전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그림으로 표현해 온 서창환 화백은 유난히 나무를 즐겨 그리는 화가로 우리나라 화단에서 정평이 나 있다. 서 화백에게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여쭈어 보니, 서 화백은 “나무는 소생의 의미를 갖고 있지요. 죽은 듯 보이다가도 해마다 다시 살아나 더욱 무성해지는데, 우리 인간의 마음에도 이렇듯 거듭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나무를 보면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픈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무들을 늘 푸른 보랏빛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색채가 가지고 있는 깊고 오묘한 맛과 신비스러움 때문.”이라고 자신의 미술 세계를 설명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서 화백이 그리는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나무 그림 안에는 대부분 열세 그루의 나무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그 나무들은 예수님과 열두 사도를 형상화 한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우 열두 사도들을 표현하는 나무들은 하느님을 향한 그의 신앙심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신앙과 결부시켜 작업해 온 그에게도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젊은 교사 시절부터 서 화백은 그림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보면 그의 작업실에서 무료로 그림공부를 가르쳐 주고 밥도 먹여주며 그 학생들이 훌륭한 화가가 되도록 많이 이끌어 주었다. 그런데 그들 중 유독 한 학생의 얼굴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지워지질 않는다. 그림실력이 월등하게 뛰어나서 키워주려고 무진장 애를 썼는데, 너무나도 가난했던 그 학생은 결국 학업을 그만두고 떠나갔다. 그 후 여태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데, 제대로 공부했으면 화가로 크게 대성했을 그 학생의 얼굴이 숱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역력히 남아 스치듯 지나가곤 한다. 좀더 붙잡아 주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

 

그런 인간적인 서 화백의 곁에서 평생의 반려자로 아름다운 황혼을 맞고 있는 그의 아내(박옥단, 말가리다)는 “젊어서부터 남편은 늘 학생들을 집으로 많이 데리고 왔어요. 집에 쌀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쓰고, 그저 가난한 학생들을 보면 그냥 두고 보질 못하고 데려와서 먹여주고 재워주며 그림도 가르쳐주곤 했어요. 그렇게 그림만 생각하면서 그림 아니면 못 살 것처럼 40여 년 동안 그림만 그려 온 남편이 최근 들어 건강이 좋질 않아 붓을 놓고 멍하니 있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려니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라면서 “주일마다 늘 같이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시간들이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라고 전한다.

 

그동안 3년에 한 번씩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서 초대전 형식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회원전에 참여해 온 서 화백은 올해의 전시회에 대해서는 다소 불확실하다고 한다. 이미 계획되어 있는 초대전이지만, 현재의 건강 상태로 작업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14일(화), 대구 가톨릭 미술인회 30주년 기념 대구, 경북 지역 5개 종단 예술가들의 작품전시회 축하식장에서 서창환 화백은 대구대교구장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가톨릭 미술인회 회원으로 활동해 온 지난 30년 세월의 노고를 인정받아 받은 상이었을 텐데, 수상과 더불어 서창환 화백은 “가톨릭 미술인회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미술인회 전시회와 또 제 개인 전시회 때마다 이문희 대주교님은 오랜 세월 저희 미술인회와 제 그림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다.”면서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무를 통해 오늘도 세상에 말을 건네는 서창환 화백. 이제 그의 나무는 화폭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넨다. 그의 나무는 혼탁한 이 세상에 하나의 희망으로, 빛으로 그리고 말씀이 되어 우리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