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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길준 신부의 울릉도 사목일기
아름다운 울릉도(5)


고(故) 이길준 신부

라파엘호 출항(2)
오징어 잡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구경조차 해 보지 못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모두 처음에는 고기를 잡으러 가면 심한 뱃멀미를 한다는데 과연 잘 견딜 수 있을지도 염려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같이 나가서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선원들의 사기문제도 문제인지라 정말 이판사판 곤경에 처했다. 왜 배가 이렇게 속을 썩이는지 모르겠다고 성모님께 탄원도 해보았다. 그때가 8월 중순 내지 9월 초라고 생각된다.

낚시를 준비하고 우의를 준비하며 분주하게 하루를 지내고 드디어 오후 5시경 라파엘호에 몸을 실었다. 배는 도동 축항을 떠나 남으로 남으로, 약 6시간 동안 바다 복판으로 나갔다. 해가 지고 온 바다에 어둠이 짙어질 무렵, 바다 한복판에서 닻을 내렸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수평선, 정말 사방이 수평선뿐이었다. 뜨문뜨문 고기잡이배들의 불빛이 멀리서 반짝일 뿐, 흙빛 푸른 바다는 무섭게 출렁였다.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에 이 조그마한 배에 몸을 싣고 밤이 새도록 지새워가며 고기를 잡으려고 찾아 온 뱃사람들의 처량한 모습이 정말 가련해 보였다. ‘아! 정말 뱃사람들이 불쌍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외로이 떨어져 밤새도록 낚시와 씨름하고도 아침이 되어서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축항으로 돌아가면, 고기 잡아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안겨 줄 실망과 그 괴로운 마음을 정말 누가 알아주랴. 그것도 거센 파도와 죽을 고비를 넘나들면서 돌아갔을 때의 그 괴로움이란! 아, 정말 먹고 살기 위하여 바다에 나가서 고기잡이 하는 뱃사람들의 불쌍한 모습에 눈물이 날 지경으로 처량하게 보였다.

나는 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정말 처음으로 열심히 묵주알을 굴렸다. 몇 십 단을 뱃머리에 앉아서 되풀이 했는지 모른다. 선장이 몇 마디 농담을 걸어 왔지만 파도소리와 바람소리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했다. 여름인데도 밤이 깊어지니 얼마나 추운지 턱이 달달 떨렸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뱃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배가 기관의 힘으로 갈 때는 별로 몰랐는데 닻을 내려놓은 후 파도치는 대로 배가 굼틀굼틀하니 속이 막 뒤집히는 것 같으며 먹은 음식이 받쳐 올라 왔다. 머리는 처음엔 띵한 것 같더니 차차 골이 쑤시기 시작했다. 그동안 울릉도를 오고 가고 하면서 여객선을 많이 타 보았지만, 뱃멀미를 잘 하지 않는 편이어서 한번도 음식을 토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배를 탈 때마다 기분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울릉도에 갈 때마다 언제 이 뱃길을 면할까, 하고 생각해 본 때는 있었지만, 이 고기잡이배를 타고 처음으로 나는 심한 뱃멀미를 해보았다.

선장이 추위에 떨고 있는 날 보더니 기관실에 들어가 자라고 했다. 나는 선원들 보기 미안해서 끝까지 버텨 볼 요량으로 고집스럽게 뱃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마 그때가 새벽 두 시경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잠깐 잠든 나를 흔들어 깨웠다. “신부님, 고기가 몰려왔어요. 오징어가 막 잡혀 올라온단 말입니다.”하고 소리쳤다. 나는 잠에서 뛰다시피 깨어났다. 뱃장에 오징어들이 끌려 올라와서 끽-끽- 소리를 마구 친다. 주둥이서는 검은 먹물을 내뿜었다. 막 떠오른 달빛에 오징어들이 반사되어 번쩍번쩍 빛을 발했다.

온 뱃장에 고기들이 마구 뒹굴고 있었다. 이것이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옆에 앉은 교우가 보시면 모르겠느냐며 즐거운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신부님도 그러고 앉아 계시지만 말고 오징어를 잡아 올리시오.”라고 했다. 나도 배 타기 전에 선장한테 오징어 잡는 법을 이미 배워 두었으니 그 선원의 말에 두 말 없이 낚시를 물에 던져 놓고는 낚싯줄을 풀어 주었다. 옆에 있던 교우가 고기는 열 발과 이십 발 사이에 놀고 있다고 했다. 나도 즉시 줄 계산을 하면서 이십 발 정도에 낚싯줄을 풀어 주고 뱃전에 줄을 대고 그 줄을 당겼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했다.

오징어 낚시는 보통 민물낚시와는 그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마치 우산살을 펴 놓은 것 같이 생겨먹었다. 우산종이를 뜯어버리고 아주 작게 축소한 것 같은 모양인데,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 작은 우산을 거꾸로 해서 손잡이 쪽에 줄이 달려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그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모양의 낚시에 매우 무게가 있어, 이것을 물 속에 넣고 시커먼 물방울이 생겨나는데 이 물방울들을 보고 오징어들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달라붙다가 그만 낚시에 다리나 몸통이 걸려 버린다. 이렇게 걸려 올라오면 손으로 그 놈들을 잡아 낚시에서 빼낸다. 그 놈들은 문어들과 같이 잡혀 올라오며 끼-끽- 소리를 내며 뱃속에 들어있는 먹물 같은 것을 내뿜는다. 정말 처음 보면 그 오징어가 그렇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십 발 정도 물 속에 낚시를 던져놓고 잡았다 놓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데, 별안간 낚싯줄이 ‘홱’하고 손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겼다. 아! 이 놈의 오징어가 이렇게 힘이 센 줄 정말 몰랐다. 온 힘을 다 써서 겨우 배 위까지 끌어올렸다. 그 순간 그 놈의 오징어가 화가 났는지 내 얼굴에 대고 먹물을 ‘쫙~’ 뿜어댔다. 온 얼굴에 먹물이 ‘쫙~’ 뿌려졌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오징어를 도로 물 속에 놓칠 뻔했다. 두 손으로 잔뜩 움켜쥐었더니 이번에는 그 꽁치같이 생겨먹은 것이 내 손등에 바짝 달라붙었다. 아-아얏, 정말 놀라웠다. 그 놈이 달라붙은 손등이 점점 조여드는 것 같았다. 얼떨결에 오른손으로 오징어 머리를 잡고 떼어 냈더니 ‘죽~’하고 소리가 나면서 떨어져 나갔으나 손등이 마구 저렸다. “아- 이 놈의 오징어가 사람 잡겠네.”하고 소리치니 선장이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러면서 “신부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손등 피부를 다 벗겨버립니다.”하고 놀려댔다.

모두가 몇 십 년 만에 오징어 구경을 한 것처럼 즐거운 비명을 올렸다. 오징어가 온 바닷속에 우글우글했다. 오징어가 불과 10발 내에서 마구 잡혀 올라온다는 것을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다. 보통 30발 내지 50발, 깊을 때는 60-70발 밑에서 잡혀 올라온다고 한다. 저 깊은 곳에서 잡아서 배까지 올라오는 시간과 10발 내에서 잡혀 올라오는 시간은 그야말로 깊은 데서 한 마리 잡아 올리는 동안 얕은 데서는 서너 마리 잡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오징어는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고 한다. 한 곳에서 길어야 한 시간 머물러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곧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오징어 떼가 이동하기 전에 기술껏 많이 잡아 올려야 한다. 하루 저녁에 많아야 이 오징어 떼를 세 번 만날 수 있다는데, 한 번이나 두 번만 만나도 본전은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얕게 오징어 떼를 만나면 한 번만으로도 본전에 이자까지 쳐서 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이 기쁜 선물을 놓칠세라 전력을 다하여 마구 잡아 올렸다. 두 마리가 한 낚싯줄에 걸리는 것을 ‘쌍달’이라고 한다. 연방 ‘쌍달이다!’하는 즐거운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이 즐거운 시간은 약 40분간 계속되었다. 이 40분 동안 선장 등 고기를 잡는 사람들은 50축 내지 30축을 잡았는데, 나는 겨우 10축도 못되게 잡았다. 그 후 새벽녘에 잘 잡는 사람은 두세 축 더 잡았지만 오징어 떼는 꼭 한 번 만난 것뿐이었다.

아침에 닻을 거두고 10시경에 축항에 들어서니, 벌써 배의 심도를 보고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아보고 환성을 올렸다. 선원들도 윗옷을 벗어 흔들었다. 오징어를 많이 잡았다는 신호였다. 그 중에는 “라파엘호 만세!”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날 아침에 한 사람이 50축을 잡았다는 사람은 라파엘호에 탄 사람밖에 없었으니깐. 그 때 오징어 한 축에 300원 정도였으니까 하루 저녁에 15,000원을 번 셈이다. 그야말로 큰 돈이었다. 그 때 당시 쌀 한 되가 150원 정도였으니 하루 저녁에 5축 내지 7축만 잡아와도 본전은 된다고 했는데, 그보다 8배 내지 9배나 잡았으니 그렇게 자랑할 만했다.

선장은 이것이 모두 주님, 성모님의 덕이라며 싱글벙글했다. 또 신부님이 열심으로 묵주기도를 했기 때문에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께서 보살펴 주었다고도 했다. 그 다음에도 여러 번 오징어 잡으러 나갔는데,  그때마다 다른 배보다 비교적 고기를 많이 잡아오는 편이어서 해신제 문제는 이것으로 일단 끝이 난 셈이었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