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주적 생명력으로서의 기
다. 우주의 원천으로서의 기
“기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관통하여 흐르는 우주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뜻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기가 우주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여, “기의 활기찬 변화에 근거하여 만물과 현상들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렇게 기는 생물의 근원이며 생명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 기가 어떠하고 어디서 유래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설명이 있다.
* 원기
‘원(元)’은 기의 시작과 원천으로 표현된다. 이에 따라서 많은 철학자들이 기를 만물을 낳는 원기(元氣)로서의 기라고 생각한다.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 원기가 있었는데, 이는 우주의 본체이자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기는 우주와 지혜와 생명의 본원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원기는 그 다른 특성에 따라 각각의 다른 기로 표현되는데, 예를 들어 정기(精氣), 천지의 기, 음양의 기, 오행의 기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상응하는 여러 가지 사물을 낳는다.
* 현
몇몇 철학자들은 기를 ‘현(玄)’에 의해 생산된 근원 물질이라고 여기는데, 여기서 현은 만물의 기본요소이다. : “현이란 무형의 부류로, 자연의 뿌리이다. 현은 태시(太始)에서 일어나니 그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 태허
장재(張載)는 ‘태허(太虛:원초적인 진공상태, 우주를 감싸고 있는 무한한 공간)’를 기의 본체, 존재의 근원, 기의 원형, 무형의 기로 여긴다. 이 태허는 확산된 기의 형상으로서 원초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세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기의 본체가 태허이므로, 태허에 속해있는 하늘도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확산된 기의 한 모습이다.
* 정기
허형(許衡, 1209-1281)에게 음양의 기는 우주에서 왕성하게 작용하고 운동하는 ‘정기(精氣)’이다. 그에 의하면, 만물은 모두 음양에 근본하며 그 가운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가장 귀하다.
* 허무
담약수(湛若水, 1466-1560)에 의하면 기는 ‘허(虛)’ 또는 ‘허무(虛無)’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를 호흡함에도 사실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왕부지(王夫之, 1619-1692)는 우주 간에는 오로지 일기(一氣)만이 있으며, ‘허’라고 하는 것은 단지 기를 표현하는 형식의 하나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기는 우주를 위한 근본존재이다. 왜냐하면 전 우주가 기이고, 기가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거하여 왕부지는 비록 우주공간을 태허로 불렀지만, 태허의 본체를 기라고 하면서, 우주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아니라 우주가 곧 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사람들이 태허라고 하는 것은 ‘기’이지 ‘허’가 아니다. 허는 기를 포함하고 기는 허에 충만되어 있으니, 이른바 무(無)라는 것은 없다.” 무라는 것, 즉 없다는 말은 아무 것도 없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 무가 아니라, 무언가 있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 무라는 말이다.
라. 기와 도
* 도
‘도(道)’라는 단어는 길, 선(線), 방법, 도구, 수단, 원칙, 원리, 교훈, 교의(敎義:道敎 혹은 道家 참조) 등 여러 뜻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장자와 노자의 도교는 도를 ‘기의 근본요소’로 생각한다. 그런데 “도가 중국의 모든 개념들 가운데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개념은 결코 아니지만, 그 유래와 생성을 표현하기엔 연대기와 기록문서들의 가치의 관점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이다.” 이렇게 어려운 개념인 도에 관하여 다음 노자의 말은 비교적 명확한 설명을 던져주고 있다. : 하늘과 땅 이전에 생겨난 한 혼란한 것이 있으니, 아, 그것은 고요하고 비어 있으며, 홀로 있고, 변하지를 않으며, 두루 다녀도 지치지를 않는구나. 사람들은 그를 천하의 어머니로 볼 수 있으나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나는 도(道)라 이르고 굳이 이름 하여 크다고 말한다. 크다는 것은 달아난다는 것이요, 달아난다는 것은 돌아온다는 것이다. … 사람의 법은 땅이요, 땅의 법은 하늘이며, 하늘의 법은 도이고, 도의 법은 자기 자신이다.
여기서 도는 인간과 만물의 근본적인 법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의 근원을 도로써 설명하며, 또한 이 도를 가지고 기를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므로 도라는 개념은 기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 기가 도로부터 낳아지는지, 아니면 반대로 도가 기로부터 낳아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이론이 구별의 시금석이 된다.
* 도 우위설
몇몇 철학자들에 따르면 도는 기의 원천이다. 도는 기를 낳고, 기는 만물을 낳기 때문이다. “도는 태극과 기보다 앞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데, 도는 태극을 낳고, 태극은 기를 낳고, 기는 음양오행으로 나누어지고, 음양오행의 기는 왕성하게 작용하고 교감하여 천(天)·지(地)·인(人)·사물(事物)을 낳는다.”
* 기 우위설
이와는 반대로 많은 철학자들은 도가 기에 종속되고 음양의 기가 도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기를 만물의 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에 굳게 서서 기가 도로부터 낳아진다는 관점을 분명하게 거부한다.
* 기와 도의 동등설
한편 다른 몇몇 철학자들은 기와 도가 같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본다. 기와 도, 이 둘은 나눠질 수 없는 것이다. 음양의 기는 도의 내용이고, 도는 음양의 모순과 통일에 대한 총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는 도의 본체이고 음양의 존재를 위한 근거가 된다. 도와 기는 한 몸이다. 기를 무시하고 도를 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 기와 리
전 자연과 인간들을 철학적인 구조 안으로 이끌어 들이려고 애썼던 송(宋) 왕조(12세기)의 신유학자들에게 있어서 ‘기(氣)’와 ‘리(理)’는 학문적으로 주요한 근본개념이었다. “기에 있어서의 구조적인 요소는 도의 해설과 신유학에서의 불교비판을 통해서 형이상학적 원리인 리로 해석되었고, 따라서 기와 리는 중국철학의 계속적인 발전을 확정하였던 것이다.”
* 리
리는 이성, 원인, 원리, 이론, 학문 등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철학적 개념으로 ‘우주적인 질서원리’를 가리킨다. 기철학 안에서 리는 중요하고 복잡한 개념이다. 하지만 리개념은 상당히 늦게 기와 관계되게 되었다. 우선 위진(魏晉)시대의 왕필(王弼, 226-249), 배위(裵 ,264-300), 곽상(郭象, 252-312)에게 있어서 리는 기와 관련하여 고찰되었으니, ‘자연의 필수적인 법’인 리는 일반적으로 ‘만물에 적용된 법칙’이자 ‘모든 이가 따라야만 하는 법칙’으로 파악되었다.
송대(宋代)의 철학자들은 학문적으로 새로운 개념인 리로써 처음 기이론에 접근하였고, 리·기이론을 그들 철학의 중심주제로 삼았다. (이러한 이론을 성리학[性理學] 또는 신유학이라 한다.) 대다수의 철학자들의 생각은 리가 기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기가 모든 사물 가운데 언제나 첫 자리를 차지한다는 견해를 주장한 철학자들도 있었다.
아무튼 리는 기 곁에 있든지 혹은 기 안에 있든지 간에 사물의 근본요소로 보인다. 이렇게 신유학 안에서 리와 기의 존재관계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고, 그 우주론적인 해석에 따라서 여러 이론이 성립되었다.
* 주리론
다수의 철학자들은 기가 리에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만물의 원천은 기인데, 그 기는 리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기로 말미암아 구성되는 형상을 가진 사물도 리를 존재의 근거로 삼는다. 이렇게 하여 리는 기로부터 분명히 분리되어 최고의 철학개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여기서 리는 기의 주재이고 천지만물의 존재근거이며, 기보다 앞서 존재한다. 기는 리에 속해있는 한편, 리는 기를 다스린다. 리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선과 악은 모두 기의 활동영역에 있다.
* 주기론
리가 기에 우선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음양의 기가 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이들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음양의 두 양상으로 활동하는 기에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기 안에 포함된 리는 사물의 본질로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기는 사물의 유일한 근원요소로 표현되니, 리는 기에 종속되는 것으로서,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며 기에 의존적인 것이다. 기는 리의 본질을 결정하지만, 한편으로 리는 기를 자신 안에 있는 고유한 질서로 다스린다. 기는 만물의 토대인 반면에, 리는 기의 한 특성이며 기 없이 자존적으로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바. 기와 신성(神性)·영(靈)
기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기의 원천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앞에서 본대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으니, 도(道)나 현(玄), 혹은 무(無)가 그것이다.
곽상(郭象, 252-312)은 기를 자존재(自存在)로 고찰한다. 그에 의하면, 기는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며, 항상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존재로서의 기관념’은 여러 기개념 가운데 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기는 결코 자립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기는 항상 발판과 작용토대로서의 [자신 밖에서의 어떤] 지주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래서 기는 자신을 지탱하는] 개별 존재와 삼라만상 사물의 특성에 따라 [고유한] 자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기는 왕부지(王夫之, 1619-1692)의 생각대로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인 존재로 보여진다. 즉 리가 객관적인 법칙이라면, 기는 물질적인 실체이고 홀로 ‘불멸하는 물질’이다. 이와 같이 기는 ‘비물질’, ‘혼백’과 관련되어 신(神)적인 개념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특히 유교와 도교는 신이 기와 더불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기가 있으면 신도 존재하고, 기가 없어지면 신도 없어진다고 하였다.
유우석(劉禹錫, 772-842)은 하늘(神)이 인간들에게 기를 선사한다고 생각하였다. : “하늘은 정기(精氣)를 위대한 인물에게 부여한다.”
장재(張載, 1020-1077)는 태허의 기를 신이라 칭하고, 신을 기의 성(性)으로 여겼다. 그에 의하면, 신은 모든 사물의 운동을 통일하고 지배한다.
정이(程 , 1033-1107)에 따르면 기는 신 이외에 다름이 아니니, 그는 기운동의 순수한 작용을 신으로 이해하였다.
이와 반대로 양만리(楊萬里, 1127-1206)는 우주가 바로 기의 운동과 음양의 상호작용과 변화로서 영원한 존재이므로, 거기엔 어떤 주재자(神)도 없다고 말한다.
왕정상(王廷相, 1474-1544)은 기와 신성(神性)·영(靈)의 관계를 설명하기를, 기는 본질이고 신은 작용이라 하였다. : “신이란 형기(形氣)가 신묘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 신은 반드시 형기를 빌려서 존재하는 것이다. 형기가 없으면 신은 사라진다. … 기가 없으면 신은 어디로부터 생기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