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세상을 압도해 버린 장맛비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순간, 고집스런 저희들에게 겸손의 마음을 깨우쳐 주시려는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사랑하는 수험생 여러분! 창밖의 세상과 단절된 채, 사각의 책상머리에 앉아 매일매일 무너지는 결심들을 추스르며 흐르는 시간들을 안타깝게 되돌아보고 있지만, 정작 마음을 묶어 두지 못하는 자네들의 그 모습들조차도 나의 눈에는 사랑스럽게 보이는구나! 자네들을 떠올리는 사람은 누구나 야생마처럼 초원을 달리며 혈기를 발산하고픈 시기에 스스로를 억제하며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책과의 씨름에 전념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자네들에게 그 흔한 ‘수고’나 ‘고생’ 등의 말로 위로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네.
그것은 자네들이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위로를 받아야 할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는 나의 고집 때문이야. 혹시라도 자네들 중에 자기를 걱정해 주시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혹은 다른 누구를 위하여 내키지 않는 학업에 몰두하고 있다면 잠시 하던 것을 멈추게. 물론 그 분들의 다그침이 동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공부는 자네들 시기에는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 중의 하나이며, 그 길을 선택한 당사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바라네.
그리고 무엇보다 자네들 시기에 공부가 아닌 어떤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많은 수고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인생의 원리라는 것도 인정하기를 바라네. 스스로 내린 결정을 신뢰하며 즐겁게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이므로 나는 자네들에게 그러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네.
사랑하는 수험생들! 세상은 인간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아주 섬세하고도 완벽한 무대야.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기회가 주어지며,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개개인의 노력에 맡겨 주셨기 때문에 경쟁이 나타나기도 하지. 의욕이 앞선 사람들로 인하여 과열된 경쟁이 때로는 비인간적이고 불공정하다며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경쟁을 통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깊어지고 소중해지는 것이지. 그리고 경쟁의 결과가 세상에서 누리는 재물이나 명예, 권력으로 판단되지 않는다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어. 일본의 小林 주교님은 저서 《고독에의 도전》에서 ‘베풀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은 무엇에도 비길 바 없이 커다란 기쁨’이라고 했어.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지.
내가 아침 자율학습에 늦거나 수업을 집중하지 않는 녀석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은 결코 자네들을 명문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한 욕심 때문이 아니야.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더 큰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이 소중한 경쟁에 임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은 없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야.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내 삶의 가치가 되는 셈이지. 흔히 말하는 ‘빛이 되는 삶’이 바로 그것이야.
자네들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다면 지금의 수고들이 축복임을 알 수 있을 거야. ‘사랑하는 곳엔 고생이란 없다. 만일 고생이 있다면 그 고생이야말로 즐거움이다.’ 라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진실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현명한 자네들은 지금의 모든 노력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하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가슴과 몸으로 체득해야 할 습관이기에 긴 학교생활이 필요한 것이지.
수험생 제군들! 학교는 단순히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기관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야. 정말 냉정하고 무한경쟁의 무대인 사회에 비하면 학교는 지극히 단순한 곳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멀지 않아 알게 될 거야. 이곳의 한정된 경쟁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이지 못하는 자에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낼 기회가 주어질 만큼 세상이 허술하지 않아.
수학의 기초를 잃어버린 어떤 녀석이 수업시간에 질문하는 것을 자네들도 들은 적이 있지? “선생님! 제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 배우는 이 미분과 적분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도 이 수업을 계속 들어야 하나요?” 그때 나의 대답은 단순했어. “물론이지! 미분과 적분은 자네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과제가 아니고 지금 이 순간 자네가 해결해야 할 과제야.”
지금 이 순간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형태의 과제를 비켜갈 생각만 하는 녀석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들이 주어지는 인생길에서 극복하거나 해결함으로써 얻어지는 열매를 체험할 기회도 맞지 못한 채 비켜갈 생각을 하게 될 거야. 그렇기 때문에 자네들이 힘들게 여겨지는 현재의 시간들이 인생을 배우는 소중하고도 엄숙한 순간이지 결코 누구의 위로를 받거나 칭찬을 기대할 일이 될 수가 없어.
사랑하는 고3 수험생들! 인생은 준비의 기간이 있고 그것이 끝나면 해방감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야. 치열함의 사이사이에 기쁨과 보람이 섞여있는 것이 인생이지.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나의 소중한 인생은 시기에 따라 우리가 몰두해야 할 대상만 달라진다고 보면 돼. 내가 성장해 간다는 것은 점점 더 치열한 경쟁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지.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동안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지금 못지않은 숨 가쁜 생활이 반복될 거야.
그러므로 우리는 훗날의 행복을 위하여 지금의 시간들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는 지혜를 이 학창시절을 통하여 체득하게 하려는 것이지. 늘 빈둥거리는 사람에게 휴식이 없다는 말처럼, 치열한 삶이 없으면 진정한 기쁨이나 여유는 경험할 수 없다는 의미야.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과제의 무게만큼 그 뒤에 마련된 보람도 커다는 말 아니겠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중요한 시험을 치르게 되면 자네들에게 주어진 고등학교의 생활도 막을 내리게 되겠지. 자네들이 고등학교의 문을 나설 때 자신의 인생을 가치 있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꼭 습득했기를 바라네. 내일은 오늘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오늘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내일 변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지.
아직도 많은 시간들이 허락된 자네들을 사랑하고 부러워하는 이유는 자네들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야. 더 큰 사랑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 말이야. 그리하여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찾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 말이야. 정말 우리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해. ‘나는 지금 왜 이렇게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지를. 나는 나의 인생을 위하여 오늘 무엇을 했는지를. 내가 그토록 꿈꾸는 좋은 대학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 지리한 장마가 끝나면 견딜 수 없는 무더위가 우리를 괴롭히겠지,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나를 더욱 강하게 단련하려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는 기도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겠지.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자네들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들이며 자네들을 향한 나의 사랑도 끊이지 않을 걸세.
자네들의 삶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낼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기대하겠네.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명심하게나. 굵은 빗줄기가 끊이지 않는 오후 7월 하순 진학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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