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지상 성지순례 1
구세사의 현장, 시나이 산


이주연(미카엘라)|가톨릭신문 투어 서울팀장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온 모세는 시나이 산을 향해 걸었으며 산 정상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한 후 하느님으로부터 두 개의 돌판에 새겨진 열 개의 계명을 부여받는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산’으로 불렀던 곳,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산들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산으로 여겼던 곳, 호렙 산이라고도 불리는 시나이 산.

시나이 반도 중앙에 위치한 시나이 산을 가기 위한 여정은 다소 험하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마른 풀 포기, 몇 그루 나무만 간간히 심어진 드넓은 광야를 7-8시간 달려가야 한다. 버스 차창 밖으로 그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광야를 보고 있노라면 하느님의 지시대로 이집트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동족을 이끌고 광야를 다녔을 모세 그리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를 걸으며 토해냈을 어려움, 불만, 온갖 투정들이 영화를 보듯 눈앞에 그려질 수밖에 없다.

어스름하게 해가 질 무렵이면 시나이 산 아래 카타리나 수도원 인근 숙소에 도착하게 되는데 대개 저녁식사 후에는 다음날 등정을 위해 곧장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리곤 새벽 1시 30분 경. 방마다 기상을 알리는 전화벨이 울리고 호텔 직원이 직접 방문을 두드리는 광경이 벌어진다.  

한여름철이라 해도 한기가 느껴져 긴 옷은 필수이고 가을, 겨울철이면 두툼한 바람막이 옷에 머플러 등으로 중무장을 해야 한다. 그만큼 새벽 산 공기가 차갑기 때문이다. 카타리나 수도원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 5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한 후 각자 손전등을 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카타리나 수도원 자체가 이미 해발 1,500m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정상까지 실제적으로 걷는 거리는 약 800m 정도라 할 수 있다.

낙타 몰이꾼들이 ‘camel’혹은 한국어로 ‘낙타’라는 말로 호객하는 사이를 지나 요새처럼 보이는 카타리나 수도원 벽을 지나다 보면 저 멀리 산등성이에 손전등 불빛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등 각국 말이 뒤섞인 가운데 혹자는 낙타를 타고 혹은 걸어가면서 산 정상을 향하는 이들의 것이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 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버리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하였다. 모세가 보러 오는 것을 주님께서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그분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 2-6)

가빠지는 호흡을 추스르면서 발걸음을 내딛다 보면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기 위해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던 모세의 심정을 잠시 헤아려 보게 된다. 이 산에서 하느님 음성을 듣던 엘리야의 마음도…. 전 세계에서 온 각양각색의 이 사람들이 모두 그런 기대감으로 새벽잠을 미루고 시나이 산을 만나러 나선 것 아닐까.

시나이 산 등정에서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볼꺼리는 새벽하늘을 수놓는 영롱한 별무리들이다. 사막에서만 체험 가능한 별빛들의 우주쇼가 아닐 수 없다. 1시간 30분여를 지나면 완만한 길을 벗어나 750여 개의 돌계단을 마주하게 된다. 한 숨 한 숨 계단을 올라 20여 분을 더 땀 흘려 가다보면 정상이라고 할 만한 곳에 다다르는데, 대개 이곳에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담요나 점퍼를 뒤집어쓰고 여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산 정상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장소임을 기념하여, 그리스 정교회가 세운 작은 모세기념 교회가 서 있고 이슬람교 사원도 세워져 있다. 이 주변에서는 슬리핑백에 의지해 밤을 새운 이들을 심심찮게 본다. “주님께서는 시나이 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모세를 그 산봉우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갔다.”(탈출 19, 20)

이스라엘 민족의 탈출 경로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는 것처럼 시나이 산 위치 역시 분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성서 상 이집트의 나일 삼각주 지역과 가나안 사이에 있다는 것 외에는 뚜렷한 단서가 없다. 7세기경 이슬람 군대에 의해 시나이 반도가 점령 되었을 때 인근 카타리나 수도원이 보호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아랍인들이 현재 사람들이 오르는 수도원 남쪽 해발 2,285m 봉우리를 ‘예벨 무사(Jebel Musa)’, 즉 ‘모세의 산’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 같다는 추측이다.

시나이 산의 일출은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속한다고 할 만큼 무아지경 그 자체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면 화강암으로 된 주변 산들이 불그레하게 물들며 온통 분홍빛으로 변하는 장관을 이룬다. 

주로 하산하는 길에 들르게 되는 카타리나 수도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중 하나에 속한다. 548-565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이 수도원은 그리스 정교회 소속으로 세계 최초의 그리스어 성서인 시나이 사본이 발견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 사본은 알렉산드리아 사본 바티칸 사본과 함께 최초의 신약성서 사본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한번도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돼 온 이곳은 그 덕분에 희귀한 고대의 성화 수백 점을 보유하고 있고 3,000점 이상의 고대 성경 필사본들이 보관돼 있다. 바티칸 교황청 도서관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성경사본과 희귀 성경들을 많이 소장한 곳으로 알려진다.

수도원 내부에는 모세가 이드로의 딸들을 처음 만났다는 ‘모세의 샘’이 있고 모세가 부름을 받은 ‘떨기나무’가 있다. 이 떨기나무는 시나이 반도 남쪽에서만 자라는 특이한 종자로 다른 곳에 이식하면 죽는다고 한다. - 다음 호에 계속

 

* 이번 호부터 소개되는 <지상성지순례>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앞으로 애독자 여러분들이 떠나게 될 성지순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이주연(미카엘라) : 서강대 언론대학원 언론학 석사. 1988년부터 가톨릭신문사 취재부에서 근무했으며, 2005년 11월부터는 가톨릭신문 투어 서울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