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빨리 겪고 싶어졌어요. 가슴 속에서 뭔가 솟구쳐요.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라는 외침과 함께. 사막을 거닐 때, 조용히 침묵을 배우는 것이죠. 그리고 내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거죠. 감사할 뿐이에요. 이렇게 하느님의 섭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어서.” - 2005.4.27 이른 새벽 <빛 >잡지에 실린 류지현 클레멘스 형의 글을 보고
예수님! 2004년 12월, 한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성탄을 축하하는 인사와 함께 군 제대 후 우리가 해야 할 과정에 대한 안내가 담겨 있었죠. 처음에는 ‘사목실습’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지금의 과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지 알 수 없어서 두려움뿐이었어요. 게다가 군대란 특수한 환경에서 이러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겨우겨우 주워들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어서 더욱 고민되고 걱정되었죠.
그런데 우연히 <빛> 잡지에 실린 선배 신학생의 경험을 읽고 저는 위와 같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세상에 아무런 도움 되지 않는 체험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어디서든 하느님의 뜻이라면 웃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요. 교회의 결정에 순명해야 하는 것은 성직자와 수도자뿐만이 아니라, 성직자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우리 신학생에게도 중요하다고 여겨졌지요. 그래서일까요, 예수님? 후에 ‘복음화 과정’이란 이름으로 바뀐 이 과정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왔어요.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일어났어요. 몇몇 동기들은 이 과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오히려 다른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죠. 아니, 각자의 뜻대로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결국, 서로 얼굴을 붉혀가며 이 과정을 따라야 한다느니, 이 과정보다는 새로운 뭔가가 필요하다느니, 하며 다투기까지도 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렇게 이 과정을 산 지 한 달여쯤 지났을까요? 저는 물론이고 다른 동기들 또한 이 과정이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지를 깨닫고는 서로 얼굴 붉혔던 지난 시간들을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었어요. 참으로 감사드려요.
그렇답니다, 예수님. 이 ‘복음화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정말 두려웠고 걱정뿐이었어요. 매일 주던 밥만 먹고, 짜여진 일과에 내 몸을 맡기며 살아왔던 제게 스스로 밥을 짓고 하루의 일과를 스스로 만들어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럽고 걱정스러운 일이었죠. 게다가 스스로를 ‘복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저를 짓누르고 있었나 봐요.
그런 걱정도 잠시,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 그랬을까요? 밥 짓는 것도, 하루 일과를 계획해서 살아가는 것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기 시작했었죠. 물론 처음에는 많이 서툴러서 된 밥도 만들고 무른 밥도 지었어요. 하루 종일 멍하니 천장만 보며 누워있기도 했고 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러한 일상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 ‘복음화 과정’에 함께 하신 성령님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날이 갈수록 하루 24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도 든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죠.
처음 한 달간은 피정하는 기분으로 제 자신을 다잡으려고 했어요. 2년이라는 군 생활동안 제대로 바치지 못한 기도들을 다시금 제 안에 자리 잡아가려고 노력했고요. 하루 종일 대침묵을 하면서 당신과 이야기 나눈 적도 있었지요.(물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적도 있지만요.) 그렇게 제 자신을 위한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이렇게 제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화기를 들었어요. 한 달이 넘도록 공소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분들의 이름에 밑줄을 긋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죠. 제가 이렇게 생활하면서 느끼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비록 짧지만- 느낀 하느님을 그분들께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매주 함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함께 손잡고 기도하자고 전화를 드렸답니다. 냉랭한 반응에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제게 힘을 주셨지요. 또 성령께서는 이곳에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셨고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제가 만든 음식들을 신자 분들이 오시면 해드리고, 간식거리들도 사서 내어드렸어요. 맛도 맛이지만 모양도 볼품없는 그 먹을거리들이 당신들도 처음에는 부담스러우셨는지 겨우 겨우 잡수시다가 이내 기쁘게 잡수시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드린 기도 기억나시죠? 마치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아, 은혜로운 예수님! 그렇게 대천공소에서 보낸 5개월여의 시간 동안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전 아직도 대천공소에서 드린 첫 공소예절을 기억한답니다. 아이고, 맙소사, 첫 강론은 어떻고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론을 했던 바로 그날 말이에요.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심장이 절로 뛰고 가슴이 뜨거워진답니다. 저를 통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신 하느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이세요!(하느님, 감사드립니다!) 어부였던 자기들을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셨을 때, 그들도 저와 같은 느낌이었을까요? 아, 그리고 예수님, 그거 아세요? 매주 공소 예절 때마다 했던 강론과 성가 반주는 부족하기 짝이 없었지만, 다들 진심으로 경청해주시고 즐겁게 노래 부르셨다는 거요. 그래서 신자 분들 덕분에 저는 하려고 한 게 아닌데도, 자꾸만 겸손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사셨잖아요.
함께하시는 예수님! 예전에 ‘홀로 서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짧은 시를 쓴 적이 있어요. 그 시는 어디에도 기댈 곳 없고 아무도 나를 쉽사리 받아주지 않으므로, 내가 튼튼해야 하고 내 자신을 잘 알아야 하고, 고독을 즐기고 홀로 걷는 것을 즐기라는 시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내 안에 있고 모든 것은 홀로 선다고 쓴 것 같아요. 지금 와서 그 시를 다시 읽어보니 참으로 당시에 그 시를 썼던 제 자신이 왜 그리도 안타깝게 느껴지는지요. 결국 우리가 혼자라고 해도, 마침내 우리가 철저한 개인이어도, 드디어 우리에게는 참으로 든든한 하느님이 계시는데 말입니다.
보고 싶은 예수님, 지난 5개월을 살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체험은 바로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너무도 익히 들어왔던 말씀의 체험이었어요. 이곳에서 혼자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전혀 혼자가 아니었잖아요. 언제든지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는 분이 제 곁에서 귀를 열고 기다리고 계셨고, 제 눈물을 닦아주시려 손수건을 들고 기다리신 분이 제 곁에 계셨으니까요. 그 덕분에 이곳 공소에서 했던 성모의 밤이나 피정 등은 저에게 뿐만 아니라, 이곳 신자 분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해요.
예수님, 부족함으로 채워진 5개월이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법했던 지난 시간을 충만함으로 채워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셨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해주셨고,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신 분도 바로 하느님이셨죠. 제가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하다가도 힘들어 지치면 그것이 아니라 이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분도 바로 하느님이셨어요.
‘복음화 과정’이란 말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제 스스로를 복음이 되게 하는 과정, 저의 하느님 체험을 이웃에게 전하는 과정, 제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살게 하는 과정. 시기상으로 1차 파견은 끝났지만, 이 복음화 과정은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만 할 것 같아요. 아니, 이루지 못한 채 하느님 곁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상에서의 삶이 이어지는 동안 저는 이 과정 중에 있음을 되새기고, 어딜 가나 “항상, 즉시, 기쁘게” 이 과정에 임하려고 노력할거예요. 지금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함께 해주실 거죠? 사랑해요, 예수님!
* 이 글을 쓴 이영승(아오스딩) 신학생은 8월 10일자로 영천성당 북안공소로 파견되었으며, 이 글은 1차 파견지인 청도성당 대천공소에 머물 때 쓴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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