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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신부의 신앙상담
김지현 신부의 신앙상담


김지현 신부

질문 : 저는 작년에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얼떨결에 아무 준비 없이 신청을 하게 되었고 너무 바빴던 탓에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너무 후회스럽습니다. 지금 새롭게 견진성사를 다시 받을 수는 없겠습니까?

 

 

답변 : 누구에게나 지나간 일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는 남기 마련이고, 그 아쉬움과 후회는 다시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다르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떤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기원전 500년경,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강물도 이미 다른 강물이요, 나도 이미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모든 시간은 한 번밖에 오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지만, 그 기회는 지나간 순간과는 다른 기회요, 그 기회를 맞이하는 나 역시도 다른 나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라는 학자가 찾아와 예수님과 얘기를 나눌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이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니고데모는 되묻습니다.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물론 이 말씀은 세례성사를 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시간의 반복, 기회의 반복, 체험의 반복이란 관점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다시 알아들을 수도 있습니다.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 지나간 시간에서 나온 것은 지나간 것이며, 새로운 시간에서 나온 것은 새로운 것이다.

‘내가 그때 그렇게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에서 비롯된 ‘또 한 번만!’이라는 희망은 이미 지나간 것이며,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시간도 이미 새로운 시간이며, 나 역시도 이미 새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되려면 새 것이 되어야지 헌 것이 될 이유가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 옛날 나에게 이러저러한 변화가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헛되이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시기에 안 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옛날 그 정신없는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견진성사의 은총을 주시고자 하셨고,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이미 그에 응답했었습니다.

그러므로 견진성사의 은총은 이미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그 은총이 수여되는 순간의 반복적 체험이 아니라, 그 은총이 이제 자라나도록 그래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재이해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다시 깨닫는 것이며,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재를 풍요롭게 할 깨달음을 다시 얻어내는 것이며, 그 순간에 맺어진 관계를 지금 새롭게 갱신하는 것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때의 기억이 없으니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세례의 은총을 간직하며, 지금 새롭게 세례 받는 사람들의 곁에서 나의 세례를 갱신하는 예절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유일회적이지만, 영원히 지속되고 결코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은총은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선물을 받을 때 내가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고 해서 되가져 가시는 것도 아니며, 선물을 받고도 내가 별 신경을 안 쓰고 내버려두었다 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도 아니며, 선물을 받고도 내가 내던져버렸다 해서 다시는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내리시는 것도 아닙니다. 유일회적이지만 영원히 지속되고 결코 취소되지 않는 선물,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이해의 체험’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비록 새로 견진을 또 한 번 받지는 않는다 할지라도(물론 두 번 견진성사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새로 견진 받을 이들과 함께 견진교리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이 견진성사를 받는 곁에서 그들과 함께 견진성사 때의 서약을 다시 할 수 있고, 견진성사 때의 은총을 내 안에서 새롭게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 내가 받아야 할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계속해서 새롭게 받아나가야 할 성사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받은 은총의 선물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잘 관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에 받을 성사들(성체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혹은 성품성사, 병자성사)과 준성사들(축복, 안수 등등)도 매순간 잘 준비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