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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건강
술과 정신건강


조근호(토마스 아퀴나스)의사, 대구 가톨릭대학병원 정신과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십니까? 뒤늦게나마 지면으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새로이 밝아오는 을유년에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고, 원하시는 바가 다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연말연시, 특히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설날 같은 경우에 항상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게 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술과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환자들이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설날이나 추석 이후에 그 비율이 급격하게 많아지는 질환이 바로 알코올중독입니다. 자신이 술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수 개월간 음주를 참아오던 사람들이 명절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핑계거리가 생기면 금주에 대한 이전의 각오를 어느새 새까맣게 잊고 술을 마시다가 다시 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는 거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음주나 흡연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어서 흔히 간과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우리 성인 중 약 20% 이상이 음주와 연관된 문제를 가지고 있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즉 5명당 1명의 꼴로 음주 문제가 있다는 뜻인데,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중 본인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치료를 받는 사람들은 채 1%도 되지 않습니다. 문제 음주란, 즉 알코올중독이란 술을 마시는 양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혹은 매일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만을 이야기 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술을 마신 후의 행동이나 몸의 상태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는 충고를 듣게 되는 경우, 또 이러한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줄이거나 끊는 데 결국 실패하고 다시 음주를 하게 되는 경우, 이는 문제 음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주 두세 잔밖에 마시지 않더라도 술을 마실 때마다 타인과 시비가 붙어 파출소까지 가게 된다면, 또 간이나 위가 좋지 못하다는 소리를 병원에서 들었음에도 매일같이 술을 마시게 된다면 이것도 문제 음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이러한 문제 음주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집이나 직장 등 자신이 속한 사회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음주를 많이 하는 분들은 흔히 술을 마신다는 핑계로 다른 사람과 편하게 사귀고, 원활하게 일을 추진하려면 반드시 술이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알코올중독자들을 살펴보면 항상 외톨이이며, 술 이외에는 주위에 친구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과 어울려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하나 둘 떠나 버리고, 술만을 벗으로 삼은 채 지내게 되는 거지요.

 

사실 이 분들은 보통 대인관계의 기술이 부족하며,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줄을 모릅니다. 여가 시간에 다른 사람과 어울려 행동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즐겁고 의미 있는 것인지 별로 경험해 본 적도 없습니다. 항상 술과 시간을 보냈을 뿐이죠. 그래서 이분들에게서 술을 빼앗아 가면 일분일초를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몰라 막막해 합니다. 그리고 흔히들 주위에 사람들이 없어 외로워하시고 우울해 하십니다. 또 많은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처해 계시구요.

 

그래서 이러한 분들이 병원에 오시면, 단순히 몸을 회복시키거나 술에 대해서만 교육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극복해 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술을 피해갈 수 있으며, 내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물론 이것들보다 먼저 몸 상태를 회복시키는 치료가 필요하겠지만 말이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술은 우리 몸의 모든 장기를 다 망가뜨립니다. 흔히 생각하는 위장, 간장만이 아니라 심장과 췌장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 중의 하나인 뇌를 망가뜨립니다. 많은 분들이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당시의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술을 끊는 데는 우선적으로 본인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술을 끊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으신 분들을 치료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의지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냅둬, 나 혼자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은 사실 마음속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 상관하지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을 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입니다. “나 이래 뵈도 3개월 술 안 먹고 지낸 적이 있어.”라는 말은 결국 3개월 후에는 다시 유혹에 빠져 술을 마셨다는 뜻입니다. 술을 끊고자 하는 제대로 된 의지는 “저 정말 술을 끊어야겠는데, 좀 도와주세요. 병원에 입원할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담센터에 다닐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 의지로 열심히 치료에 임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의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술은 분명한 질환을 유발하는 중독성 물질입니다. 그리고 빠져 나오기 무척 힘든 병입니다. 모쪼록 이번 설에는 가급적이면 술을 적게 드시고, 혹시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치료 기관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스스로 치료를 받고자 하실 때 치료는 더 쉽게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