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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 복음화 과정의 현장에서
"짱구학사님, 짱구학사님"


고영일(프란치스코)|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생

찬미예수님! 저는 김천 신룡성당 소속 감문공소에 파견되어 생활하고 있는 고영일 프란치스코 신학생입니다. 신룡성당 관할 내에는 감문공소와 개령공소가 있는데 현재 감문에는 제가, 개령에는 오영재 요셉 신학생이 파견되어 신학생 복음화 과정을 지내고 있습니다.

한참 더울 때 이곳에 와서 그런지 더운데 어떻게 지내냐고 걱정해주시는 우리 감문공소 신자분들과 생활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이곳에 와서 며칠동안 공소생활에 적응하느라 조금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 번째 파견이라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신룡성당 김기진(안드레아) 신부님과 사무장님, 공소회장님을 비롯한 공소 신자분들께서 신경을 너무 많이 써주셔서 한 달 지내는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포도 농사를 많이 짓는 곳입니다. 요즘 다들 얼마나 바쁘신지 아침 일찍부터 일을 하시지만 평일미사나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으시려고 많이 노력하십니다. 특히 공소미사는 일주일에 한번 있는 것이라 꼭 참석하려고 하십니다. 지난주에는 다들 바쁜 중에도 언제 준비하셨는지 레지오 한 팀이 900차라면서 떡과 과일을 준비해 미사 후 신부님과 함께 나누기도 했답니다.

우리 공소 신자분들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이렇게 서로 나누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니깐 초대교회 신자들이 이렇게 살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에 있다보면 밖에서 “학사님 계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면 혼자 밥 해 먹는 게 걱정이 되시는지 반찬이며 집에서 수확하신 감자, 양파를 한 가득 들고 오셔서 냉장고를 채워 주시고가시면서 고추장이나 간장 부족하면 말하라고 하시며 집으로 돌아가시는 신자분, 저번 학사님은 봉지 씌워 주셨으니깐 학사님은 배 따는 걸 도와 달라며 나중에 배 많이 주시겠다는 신자분, 일을 마치고 경운기를 타고 가시다가 저를 보시고는 금방 딴 포도라며 먹어보라고 포도를 한가득 주시는 신자분. 이런 신자분들을 뵈면 나도 이렇게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도 해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곳으로 보내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공소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공소미사가 있고 미사 후 레지오 회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 반모임도 있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레지오 회합 때 훈화를 하는 것인데 훈화를 한다기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저에게 더 도움이 되는 그런 시간입니다. 어설프고 부족한 훈화지만 끝까지 진지하게 들어주시면서 훈화가 끝나면 “좋은 말씀 감사해요. 다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래도 하나 정도는 머리에 남아요. 학사님이 훈화해주시니깐 너무 좋아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신자분들 때문에 더 좋은 말씀, 신앙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들려 드리기 위해 책도 더 읽게 되고 기도와 묵상도 더 하게 됩니다.

본당신부님께서는 복음 말씀을 묵상하고 복음나누기를 하는 팀이 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신데, 신룡성당 교사회가 신부님 바람대로 너무나 잘 하고 있다면서 공소에서도 이 말씀의 불꽃이 피어났으면 좋겠다고 첫 만남 때 말씀하셔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해봤답니다. 그런데 우리 공소에 이 말씀의 불꽃이 조그마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공소 레지오 한 팀에서 단장님이 활동 지시사항으로 복음읽기를 지시하신 것입니다. 단원들은 복음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노트에 적어 와서 읽고 왜 그 구절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누기를 하는데, 이는 신자분들 안에서 자발적으로 말씀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대로 사는 것, 복음 말씀대로 자기 것을 서로 나누면서 사는 것,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 말씀대로 사는 것, 이것이 복음화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저희가 당신 말씀과 함께 하길 원하시나 봅니다.

1차 파견 때(영천성당 북안공소) 늘 학교마치고 찾아오는 두 천사가 생각납니다. 그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것이 저의 오후 일과였습니다. 산수도 가르치고 읽기 연습도 시키고 받아쓰기도 도와주고 점수도 매겨주고, 잘못을 했을 때는 혼내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두 아이는 “어린이처럼 되어라.”는 예수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두 아이를 소개할 때 천사들이라고 했던 것이다.

어느 날 두 아이가 무엇 때문에 다투게 되었고 그래서 제가 두 아이를 심하게 혼을 내었습니다. 한참 혼을 내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두 아이가 돌아서자마자 서로에게 미안하다면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아이들이구나! 어린이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린이처럼 되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앞뒤 재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어린이의 마음이 아닐까요. 보통 우리는 이런 경우에 남의 탓을 하거나 화를 낼 수 있는데 바로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니깐 그 두 아이가 복음 말씀대로 사는 것 같고, 그들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두 아이와 보낸 시간들이 저에겐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던 것입니다.

복음화 과정이란 무엇일까? 이 물음에 이문희 대주교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복음화는 죽는 것입니다. 내 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복음화입니다. 죽어야 합니다. 죽을 각오가 되었습니까?” 대주교님 말씀처럼 제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주님이 사실 때, 저희가 복음 말씀대로 살아갈 때 저희 자신이 복음화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런 복음화의 모습을 공소 신자분들을 통해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신자분들은 삶 속에서 하느님을, 삶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신자분들은 성당에 다니시지 않는 동네분들께 “좋으니깐 성당 다니지, 재미로 성당 다니나, 당연히 다녀야 하니깐, 의무니깐 다니지.”이렇게 말씀하시며 삶 속에서 하느님을 전하고 계시는 모습을 통해 삶 속에서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자 외딴 곳으로 가 기도를 하신 것처럼 저 또한 이 공소에 와서 혼자 밥해먹고 혼자 기도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며 제 자신부터 복음화를 이루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부터 복음화가 되지 않는다면 신자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 주신 이유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곳 감문공소에서 복음화 과정을 다시 시작하며 잘 해보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러나 마음만 너무 앞선 것은 아닌지, 성급한 마음으로 많은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봐야겠습니다. 복음화 과정을 통해 만났던 신자분들을 보면서 기쁨도 느끼고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자녀답게 변화하는 모습도 보게 되고, 무엇보다도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를 통해 하느님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만날 수 있었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입니다. 저희가 복음화 과정을 거치는 것은 사랑을 주는 것보다 사랑받기 위해서 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사랑을 더 받기 위해서 말입니다. 저는 이 복음화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받은 사랑을 되돌려 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하느님께서 저를 신자분들에게 사랑을 주기 위한 도구로 쓰실 뿐입니다. 제가 하느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더 좋은 도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우리 감문공소 아이들이 붙여준 저의 별명은 바로 짱구학사입니다. 짱구를 닮았다며 “짱구학사님, 짱구학사님 귀여워요!”라고 하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 우리 공소 아이들 더 귀엽답니다. 공소 바로 옆이 학교라며 자주 찾아올 것이라는데 우리 아이들, 우리 감문공소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이라도 준비해야겠습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