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월)-10일(목)까지 3박 4일 동안 2006년 새 사제들은 이문희 대주교님과 함께 일본 성지 순례의 여정을 다녀왔습니다. 그 여정의 처음부터 새삼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그 이유는 김해 국제공항에서 항공편으로 약 35분밖에 걸리지 않는 정말 가까이에 있는 이웃 나라라는 것을 그제야 다시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에 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애증(愛憎)의 상대와 같은 일본이란 나라 안에서 새 사제들은 순례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 안에도 많은 순교성지들이 있는데 왜 구태여 비싼 돈을 들여서까지 일본을 찾아가느냐고 말입니다. 사실 그러한 의구심은 저 역시 순례를 시작하면서 가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순교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기꺼이 자신의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그 현실적인 처참함과 그것을 넘어서서 믿음과 사랑으로 모아지는 모습은 비단 우리나라와 일본뿐 아니라 세계 그 어느 나라의 순교지에서도 느낄 수 있는 신앙적 감동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려 하며 느끼려고 하는 것은 단지 과거의 순교 역사에 대한 회상과 감동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까지 포함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비슷한 순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의 역사를 지나 이어온 신앙의 모습은 사뭇 다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성지 순례를 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며 결국 나 자신의 신앙에 대한 깊은 체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6인의 순교기념비, 오우라 성당, 우라카미 주교좌 성당, 운젠 지옥, 나가사키 원폭 박물관, 나가이 다카시 박사 생가, 히라도 지역의 가쿠레 기리스탄(숨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자료관, 엔도 슈사큐의 박물관 등 참 많은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많은 곳 중에서 운젠 지옥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으로도 온 몸이 후끈 달아오를 만큼 뜨거운 열기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유명한 온천관광지이기도 한 그곳이 한편으로는 형벌로 인해 살이 터지고 갈라진 상처에 뜨거운 유황 물을 부으면서 배교를 강요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을 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이 대주교님께서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떤 관리 출신의 그리스도인이 발각되어 그곳에서 많은 고문을 당했는데, 그 중에서 자신의 자식을 앞에 데려다 놓고 자식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면서 배교를 강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끝내 그는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않고 그곳에서 순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주교님께서는 물으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우리 역시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목숨과 맞바꿀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우리 사제들이 찾아야 하는 숙제일 것입니다.”
물론 당장에는 가슴 가득한 열의로 만약 우리 역시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해서 자꾸만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순교라는 것, 아니 신앙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이나 우발적인 열의로만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앞으로 사제로 살아가면서 정말 사제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일에 대한 결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더욱이 자기만족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닐 겁니다. 아마 평생을 살면서 말 그대로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교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야 하는 삶의 한 가운데가 마치 순교의 터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목숨을 맞바꿀 순교는 없을지라도 사제로 살아가면서 진정 사제가 사제다울 수 있는 그 무엇, 나아가 진정 나 먼저가 신앙인다운 것을 끊임없이 선택해야 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히 열의만으로 내뱉은 대답은 속으로 거둬들이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단순히 머리가 아니라 이제 시작하며 삶으로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것 역시 말로 내뱉는 대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의 순간순간이 쌓여가면서 삶으로 보여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역시 순교의 역사 모습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교회의 모습은 다른 모습을 띄고 있었습니다. 숨겨지고 고립된 상황에서 변질되어 버린 가쿠레 기리스탄의 모습과 일본 인구에 대비해서 열악한 교회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에 대한 우월감을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어쩜 경고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던 것은 비단 저 혼자만의 막연한 착각이었을까요.
순례를 마칠 즈음 나눈 소감에서 동기 신부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일본인들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친절한 국민들입니다. 그 진의가 어떠하든 먼저 상대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친절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꼭 배워서 마치 일본인 같은 사제의 모습이어야겠습니다.”라고. 한편으로는 재밌게만 들리는 동기 신부의 그 말이 저에게는 그 경고의 또 다른 해답처럼 들렸습니다.
이제 사제로서 시작하는 우리에게 주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목숨을 맞바꿀 상황은 없을지라도, 권위와 자만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고 먼저 고개 숙이고 먼저 모든 것을 다해 기도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성지순례를 하면서 얻어 누릴 수 있었던 은총이었습니다.(본문 사진제공 - 김덕우 안토니오 새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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