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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상의 이유로 휴양을 하다 지난 11월 8일, 은퇴를 하신 전주원 바울로 신부님을 포항 이동의 한 주택가에서 찾아뵈었다. 매주일 이동성당에서 오후 5시 미사를 집전하고, 매월 수녀원을 방문하여 고해성사를 주는 등의 일과를 보내는 전 신부님은 “은퇴를 했건 안 했건 삶이 변하는 것은 없지.”라며 “다만 시간을 다투는 일이 없고 마음의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1961년 3월, 사제수품 이후 삼덕성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군종신부로 군복무를 마쳤으며, 계산성당, 군위성당을 거쳐 소신학교에서 라틴어와 전례를 비롯한 기도생활을 가르쳤다. 그리고 죽도성당, 수성성당, 청도성당, 봉덕성당, 대봉성당, 경산성당 등 시내·외 지역의 사목지를 거쳐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 신암성당, 양남성당, 대잠성당까지 쉼없이 달려온 전주원 신부님은 그때마다 자신과 그리고 신자들에게 약속한 세 가지 철칙이 있었다.
첫째, 성당 안에서는 늘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둘째, 신자들이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것. 마지막으로 어떤 일이든 신자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신자들 자율의사에 맡기는 것. 이렇듯 신자의 입장에 선 전 신부님은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에 도움을 줄까?’라는 마음으로 신자들을 향한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드러냈다. 또한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도 남다른 애정을 가진 전 신부님은 “주일학교는 선교의 장이자, 성소의 자리.”라면서 요즘 보이는 선교활동과 성소활동에 문제점을 제기했다.
전 신부님은 “본당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하다 보면 그것이 부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온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례하다 보면 가족간의 선교 뿐만 아니라 이웃간의 선교가 되는 것이고, 본당 신부와 수녀와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저절로 성소도 함께 자라게 된다.”며 주일학교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곳이라고 전한다.
그 예를 직접 경험한 전 신부님은 “경산성당 사목시절, 스무 명 가까이 되는 복사단 아이들이 ‘저희들도 역시 신부님 같은 어진 신부님이 되겠습니다.’라고 사인한 서약서가 담긴 액자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며 신부님 또한 어린 시절 복사단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제의 꿈을 키웠고, 시간이 흘러 보니 어느덧 사제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당에서 본당 신부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다시 한번 강조하는 전 신부님은 더불어 미사 때마다 하는 강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바쁘게 돌아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자들한테 주일 복음을 읽어라, 성경을 읽어라 하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강론을 통해 그날의 복음말씀을 확실히 전달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강론이 신자들한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강론을 준비하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때로는 타협하지 못해 적도 많고, 융통성이 없다는 등의 험한 소리도 곧잘 들었다는 전주원 신부님. “확고한 신념의 표현일 뿐 그외의 다른 뜻은 없었다.”고 전하는 전 신부님은 “매순간을 살면서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하느님께 맡기며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눈빛이 유난히도 반짝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재차 질문을 하니 “은퇴했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게 있나, 그냥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해야지.”라며 평소 관심이 많았던 교회 정통음악인 그레고리안 성가에 대한 자료수집과 정리에 박차를 가하고 다시 본당에서 많이 불리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피력했다.
전주원 신부님을 취재하러 가기 전 들려온 ‘대쪽같은 성품의 소유자’, ‘카리스마 짱’, 본당사목 시절 유명한 일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살짝 떨었던 기자가 만난 신부님은 일상에 주어진 작은 행복에 감사하고, 누구보다도 온유하고 인자함이 넘치는 분으로 다만 표현하는 것이 서툰 분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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