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들 안녕하세요? 이제 곧 설과 재의 수요일이 시작되겠네요. 아니, 이 글이 실릴 쯤이면 사순시기도 한참 지나간 후가 될까요? 아무튼 모두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를 은총의 시기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달에는 저희들이 하고 있는 좀 색다른 일을 소개할까 합니다. 몇 번에 걸쳐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이곳 주민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냥 전문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 제대로 된 대접도 못 받고 살아간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는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의 위로 못지않게 그나마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술 교육을 시키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시설을 마련하는데 들어가는 재원을 충당할 수가 없어서 늘 고민이었는데 재작년에 한국에서 아주 기쁜 소식이 도착했답니다.
허연구 신부님을 아시지요? 지금은 일선 사목에서 은퇴하시고 고령 월막동 피정의 집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는 그 신부님 말씀입니다. 신부님께서 저희들에게 꽤 많은 돈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거든요. 그 소식을 전해들은 저희는 바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제관이 있는 뒷들을 사제관과 분리시켜서 그곳에 건물을 짓기로 말입니다. 총 3층짜리 건물인데, 1층은 주변 학생들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식당을, 2층은 직업 훈련에 사용될 세 개의 교실을, 3층은 어려운 학생들, 특히 시골 공소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24개의 침대가 있는 기숙사를 가지고 있는 건물을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공사에 들어가서 작년 5월 이곳 추기경님을 모시고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한국에서 허연구 신부님까지 와 주셔서 더욱 좋았고요.
그리고는 바로 Comite Civico(꼬미떼 시비꼬, 시민위원회)와 연계되어서 직업 교육 두 개 반을 개설했습니다. 양재와 재봉 그리고 미용이 그것이었지요. 다행히 시민위원회에서 강사를 파견해주었고, 강사비도 절반이나 지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 교육이 끝나고 난 다음 시민위원회의 명의로 된 자격증까지 발급해 주었지요. 이러한 사정을 제대로 모르는 저희들로서는 시민위원회의 도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까지 발로 뛰면서 사람들을 만나던 전임 주임신부였던 신현욱 루가 신부(현재 대구 신서성당의 주임으로 있지요.)의 수고도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올해는 작년 7월 중순에 볼리비아에 들어온 자원봉사자 한 분이 이 교육관을 전담해서 맡고 있습니다. 최유경(리나) 씨라고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7년 동안이나 자원봉사자로 일한 경험이 풍부한 분입니다. 리나 씨의 도움으로 올해는 몇 가지 과정이 더 추가가 되었어요. 물론 작년에 있었던 양재와 재봉, 미용을 포함해서 병원이나 가정에서 환자를 돌보면서 간단한 치료나 주사를 할 수 있는 간호조무사, 집에서 할 수 있는 염색(천에 여러 가지 무늬를 수놓듯이 하는 염색)과 뜨개질, 한국을 대표하는 격투기 태권도와 요즘 이곳 젊은이들에게 최대의 관심사로 떠오른 컴퓨터(이번에 최신형 컴퓨터를 10대 구입했습니다.) 등을 교육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지난번처럼 시민위원회에서 강사와 강사비를 지원받는 것도 있지만 간호조무사, 염색과 뜨개질, 컴퓨터 등은 리나 씨가 교육관 운영위원들과 함께 발로 뛰면서 강사를 초빙하고 저희 신부들이 강사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태권도의 경우에는 강사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저희 신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 강사로 나서기로 했지요. 이번 과정의 태권도 강사는 바로 박상용 요한 신부입니다. 왜 박상용 신부가 강사를 맡게 되었냐 하면요, 최고 선임 신부인 저는 그냥 빠졌고요(저는 태권도를 할 줄도 모르고 그냥 안 하겠다고 했더니 다른 신부들이 순순히 승낙을 하더라고요.), 막내인 김종률 신부는 지금 언어를 배우러 Cochabamba(코챠밤바)라는, 여기서 500Km 떨어진 도시에 가 있거든요. 따라서 별 대안이 없이 그냥 박상용 신부가 태권도 강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박상용 신부의 머릿속에는 그에 대한 고민으로 꽉 차있답니다. 비록 검은 띠인 박상용 신부도 태권도를 배운 지 20년이 다 되어 가거든요.
이렇게 세 개의 교실이 있는 2층은 그럭저럭 운영에 들어갔지만 1층과 3층은 아직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1층 도서관은 그냥 성당의 청년들 몇몇이 알음알음으로 알고 수업이 빈 시간에 찾아와서 공부를 하고는 있는데, 본격적인 운영은 못하고 있답니다. 볼리비아는 아주 가난한 나라이지만 몇몇 물가는 선진국 수준에 올라있거나 그것보다 더 비싸답니다. 전자제품들은 밀수로 들어온 것들이 많아서 한국과 비슷한 수준에서 거래가 되지만(그래도 여기서는 14인치 브라운관 컬러 텔레비전이 사치품에 속합니다.), 밀수로 들어오기 힘든 자동차의 경우는 한국의 현대자동차 아토즈가 1,200만원 선에서 거래됩니다. 그것도 세금이나 기타 비용을 제한 순수한 자동차 가격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책값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서 우리 동네 학생들은 책이 없이 학교를 다니거나 복사를 해서 다닙니다. 이 학생들을 위해서 도서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근처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와 참고 도서를 비치해야 하는데(그냥 도서관 문만 열어서는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가 없거든요, 책이 없어서요.), 그 비용을 저희들이 감당할 수가 없답니다. 이리저리 도움을 청해서 세 평 남짓 되는 서고에 책을 모으고는 있지만, 들어오는 대부분의 책들이 몇 년씩 지난 낡은 책들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올해 도서관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이 문제 때문에 도서관을 그냥 회의실로 사용하는 형편입니다.
3층의 기숙사는 더 어려운 형편이지요. 저희들이 기숙사를 지은 목적은 시골 공소에 있는 학생들이 그래도 근교이지만 시내에 나와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었는데, 저희들이 기숙사를 짓고 있는 동안 다른 곳에서 먼저 기숙사를 지어버렸습니다. 사실 저희들이 맡은 10개의 시골 공동체 가운데 6개는 본당 구역상 저희들의 구역에 속한 공동체가 아니랍니다. 다른 군(Provincia Cabeza)에 속한 본당의 소속인데, 그 본당의 여건상 이들 공동체를 돌볼 여력이 되지 않았고 또 거리상으로도 저희 본당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저희들이 담당하고 있던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까베사 본당에 한 미국인 신부님이 부임을 했고, 이 신부님이 미국에 있는 본인의 교구에 요청을 해서 기숙사까지 완비한 학교를 지어서 운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그 본당에서 돌보지는 않고 있었지만 원래 까베사 본당에 속했던 저희 6개의 시골 공동체의 학생들도 모두 그 기숙사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던 저희들로서는 훌륭한 기숙사를 지어놓고도 들어올 사람이 없어서 운영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물론 저희 동네에 사는 학생들 가운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소개받고 찾아다니고는 있지만, 내부적으로 저희들이 정한 규정에 맞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서 선뜻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아무튼 저희들이 하는 일 가운데 이런 일들도 있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본당 일 뿐만 아니라 이런 일들까지 해나가려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가끔씩 결론도 없이 지루하게 몇 시간씩 계속되는 회의에 짜증도 나지만, 하느님과 함께 당신의 일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무엇보다 다행한 것은 함께 사는 신부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 다음 달에는 또 다른 내용으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리면서 그 때까지 모두들 건강하게 사순시기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