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년 11월 7일 경북 달성 출생
·1972년 2월 대구고등학교 졸업
·1981년 3월 대건신학대학 대학원(현 광주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졸업
·1981년 3월 19일 사제 수품
·1981년 4월 대구 대덕성당 보좌 ·1982년 1월 대구 복자성당 보좌
·1983년 1월 군종신부로 육군 복무 ·1988년 9월 대구 덕수성당 주임
·1991년 9월~1994년 2월 안식년(미국 교포 사목)
·1993년 10월~12월 예루살렘 Ecco Home 신약성서 코스 수료
·1994년 2월~1998년 9월 대구 형곡성당 주임
·1998년 12월~1999년 8월 대구대교구 사목국 사도직 담당
·1998년 12월~2002년 10월 대구대교구 사목국장
·1999년 3월~2004년 12월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2004년 12월~현재 매일신문사 대표이사 사장
·2007년 2월~현재 한국 신문협회 부회장
·2007년 3월 23일 대구대교구 보좌주교 임명
쪻 교구장 착좌·보좌주교 성성식 : 4월 30일(월) 오후 2시 성김대건기념관
3월 23일(금) 교황청과 주한 교황대사관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대구대교구 조환길 신부를 대구대교구 보좌주교이자 아비르 마조레 명의 주교로 임명하셨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대구대교구는 이문희(바울로) 대주교와 최영수(요한) 대주교에 이어 조환길(타대오, 53세) 보좌주교까지 모두 세 명의 주교를 모시게 되었다.
이제 조환길(타대오, 53세) 보좌주교는 교구장 최영수(요한) 대주교를 보필하며 교구 사목과 지역복음화를 위해 한층 애쓸 것이다. 이번 달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는 조환길(타대오) 보좌주교를 주교관 접견실에서 만나 뵈었다.
1. 보좌 주교 서임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이 어떠하셨는지요?
- 두렵고 떨렸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이런 큰 소명이 주어져 당황스러웠지만 하느님과 교회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순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축하인사를 받을 때마다 하느님 나라와 교회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교구장님의 뜻을 잘 받들어 교구와 한국교회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 사제가 되고자 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 해방 후부터 1990년대까지 경북 달성군 화원본당 관할 강림공소에서 40년 넘도록 공소회장을 지낸 아버님(조순조 라이몬드)의 신앙을 지켜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3대째 내려오는 구교우 집안이라 아침, 저녁기도는 물론 삼종기도를 바치는 분위기에서 자랐고, 사순시기에는 성로신공을 매일 바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도 사제의 길은 나하고는 별개의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을 올라갈 때였던 것 같습니다. 《태식이가》라는 이태식 부제의 유고집을 읽으면서 비로소 사제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신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3. 신학교에 입학하고는 장차 어떤 사제가 되기를 바라셨는지, 또 사제가 된 이후 모토는 무엇인지요?
- 신학생 때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라는 책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특히 그 책에 나오는 ‘치셤 신부’를 보며 그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고…. 하지만 지난 26년의 사제생활을 돌이켜보면 모토인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 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라는 시편(34,9) 말씀처럼 살지 못한것 같아서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성실한 삶을 살자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4.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특별 히 ‘베들레헴 공동체’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는지요?
- 포항 송라면에 있는 베들레헴 공동체(비영리 장애인복지시설)와의 인연은 ME 성대현(로마노)·조영희(아가타) 부부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지 요. 그 부부의 꿈이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2년 전쯤 지금의 공동체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그들 부부가 주축이 되어 그 공동체를 이끌어가고 있고, 한 달에 두 차례씩 찾아가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날 때마다 들러 볼 예정이고, 매월 봉헌하는 정기 미사는 4대리구 소속 신부님들께 부탁을 드려놓은 상태입니다.
5. 본당과 군종 사제 등 특수 사목직을 수행해 오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군종 신부 제대 후 첫 사목지인 포항 덕수성당에서의 일이 생각납니다. 88올림픽이 끝난 그 이듬해 갑자기 물가가 오르는 바람에 우리 성당 교우들도 전세금을 올려줘야 하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아기를 안고 성당을 찾아 온 어떤 젊은 부부가 결혼반지를 저에게 맡기면서 돈 50만 원을 빌려 달라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까맣게 잊고 지내다 사목지를 옮기게 되어 짐정리를 하던 중 우연히 그 반지를 찾게 되었는데 제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친정 어머니가 그 부부 대신 50만 원을 돌려주고 결혼반지를 찾아갔던 기억납니다.(웃음)
6. 앞으로 교구장을 보필하는 보좌 주교로서 대구대교구를 이끌어갈 책임을 부여받으셨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요?
- 무엇보다 교구장님을 잘 보필하여 교구 사목지침이 잘 실현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현재 교구가 당면하고 있는 일들, 특히 교구 설정 100주년을 잘 준비해야 할 것이며 그렇기 위해서는 시노드도 해야 하고 교구 100년사 자료 정리 등 여러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잘 치뤄지도록 교구 사제단과 교구민 전체가 그 역할을 나누어 앞으로 더 나은 교구의 모습을 만들어가도록 노력 할 것입니다.
7. 끝으로 교구민들과 <빛>잡지 애독자들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 하느님을 믿는 신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는 요즘 신자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무늬만 신자인 경우가 많은데, 우리 신자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숨기지 말고 사랑하는 티를 겉으로 드러내며 신앙생활에 더욱 더 매진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세상, 살만한 세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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