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 대주교님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 1960년경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여하튼 우리 둘다 유학생 시절이었는데 어느덧 거의 반세기가 지났으니 그저 어이가 없습니다. 방학 중에 우리나라 신학생끼리 어렵사리 한번 모이기라도 하면 맨 뒷줄에서 가만히 물러앉아 듣고만 있다가 엉뚱하면서도 속 깊은 소리 한마디씩 내던져 ‘저 양반 안에는 영감이 두어 명 들어앉아 있구나.’ 했습니다.
귀국 후 서로 교구가 달라 이러저러한 기회에 만나곤 했는데, 감히 친구를 자처하지는 못하지만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1972년 대구대교구 고 서정길 대주교님의 보좌주교로 계산동성당에서 서품되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 이래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우리나라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을 의연하고 슬기롭게 중용으로 다스려 나가면서, 1986년부터는 대주교로서 맡으신 교회 공동체의 내실과 성장에 크게 이바지해 오신 공덕은 세상이 익히 아는 바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세 증가와 본당신설, 가톨릭병원과 가톨릭대학교 설립 같은 업적도 물론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눈에 덜 띄는 성소의 질적인 배양과 사제단의 돈독한 단합, 깊이 있는 시노두스 추진과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신자들과의 꾸준한 친교, 젊은이들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과 배려, 조용한 실질적 대북지원 그리고 국경 너머로는 한일 주교교류회의 개시와 진행, 중국에서의 폭넓은 사목 노력 등 참신하고 값진 일련의 행적이 실로 두드러집니다.
또 전국 교회를 위한 공적도 매우 크십니다. 주교회의의 테두리 안에서는 의장직을 비롯하여, 군종단을 포함 모든 위원회에서 두루 소중한 기여를 하셨고, 주교회의 운영 전반의 미래지향적인 정립에도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저희들 모두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런 분이 어찌 이렇듯 일찍 현직에서 물러나시는지 저희들로서는 -하기야 대주교님의 뜻을 어찌 다 헤아리겠습니까만-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남다른 현실감각을 지니고도 마음의 여유와 유머 넘치며 내심의 시적인 낭만과 은근한 멋과 정 가득한 좋은 목자이신 대주교님,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수호 아래 날로 청안하시고 길이길이 우리들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
2007년 4월 24일
주교회의 의장 장익 요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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