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계산성당에서 보좌주교로 서품될 때 ‘봉사하는 기쁨을 허락하신 것에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드린 것이 서른다섯 해 전의 일입니다. 순진한 봉사를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늘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오늘 생각하면 그래도 봉사할 때 기쁨이 있었다고 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처음 보좌주교로 임명되고 교구의 총대리의 직을 수행하게 되어 서품식준비위원회의 회의에 본인이 직접 나가서 서품식이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책임을 담당하기 시작하고 그 후 늘 교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한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혼자서 무엇이나 다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줄도 알았습니다마는, 혼자서 하려 한 것이 아니라 언제 무엇이든지 교구의 일이라면 같이 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물러난 후에도 또 그렇게 함께하고자 할까 걱정이실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이제는 새 교구장 최대주교님과 함께 하셔야 하기에 저는 가능한 한 멀리 있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70년대 초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과 사회참여로 격동기를 겪는 한국교회에서 어린 주교로서, 당시 대구교구는 쇄신된 정신이 결핍되어 낙오된 구식 교회로 남을까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러나 묵묵히 전진했으며, 80년대에는 이미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교구라는 것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이런 풍랑 가운데서도 배가 추호의 동요 없이 항해를 계속했던 것은 교구민 모두가 일치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도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0주년을 준비하며 교구 사목회의를 열심히 하였고 교황님을 모시고 청소년대회를 준비하며 ‘새 인류를 위한 봉사자학교’를 개설한 바 있습니다.
우리 교구는 청소년 신앙교육에 늘 힘써 왔으나 오늘날 그 노력의 보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안타깝고, 교구 초기부터 평신도들의 활동이 남달리 활발했었는데, 특히 공의회 이후 서 대주교님의 뜻을 받들어 교구 액션협의회가 설립되고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저 혼자의 착각이겠습니까?
90년대를 보내며 새로운 천 년기를 맞으며 교구 시노드를 무사히 종결한 것은 참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하느님께 오늘도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제2차 교구 시노드 소집을 위한 절차를 완료하였으니 불원간 또다시 교구 시노드 교구사목에 쇄신이 있기를 기대하여 마지않습니다.
세상에는 정의도 있어야 하고 사랑도 있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사랑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살아왔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계명이고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당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인성식당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면서 신앙 공동체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을 함께 터득하고 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사랑의 실천이 신앙공동체에서는 없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좋은 일만 저에게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서정덕 알렉산델 보좌주교의 장례를 주례하는 슬픔을 주셨고, 직접 서품을 준 사제를 제적하는 아픔도 주셨습니다. 그보다도 이제 힘이 여러 가지 면으로,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성적으로 모자란다는 신호를 몇 해 전부터 주시기 시작하였고, 본인을 위해서도 교구를 위해서도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셨으며, 이상하게도 신체에 큰 이상이 오는 징조가 보였고 그것을 그대로 교황님께 아뢰어 마침내 지난달 29일 은퇴를 허락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안배이심을 오늘 더욱 깊이 느낍니다.
최근에는 교구 100년사를 정리하는 중, 역대 교구장 주교님들의 사목을 생각하면서 저는 교구장으로서는 좀더 철저하게 그동안 우리 교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다 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죄스럽게 여겨지고, 그래서 교구의 여러분께 미안한 마음이 간절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철저한 신앙생활을 모두가 함께 해나가도록 하느님께서 힘을 주실 것을 빌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 불찰로 잘못된 모든 것에 대해서 너그러이 용서하시기를 청합니다. 바쁘신 가운데, 일부러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교구 교형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하나가 되어 영원한 하느님 나라의 축복받은 삶을 누리실 것을 빕니다.
2007년 4월 24일 교구장 이임식에서
전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바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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