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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사상 대강좌
뉴에이지와 가톨릭 신앙(1)


이창영(바오로)신부, 가톨릭신문사 주간

Ⅰ. 뉴에이지란 무엇인가?

1.‘뉴에이지’ 명칭과 기원 

(1)‘뉴에이지(New Age)’와 물병자리 시대

단지 ‘새로운 시대’를 뜻하는 ‘뉴에이지’라는 말이 현대 문화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뉴에이지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제 뉴에이지는 교황청에서도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 과제이며, 실제로 문화평의회와 종교간 대화평의회가 중심이 되어 2003년 2월에 《생명수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 : ‘뉴에이지’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Jesus Christ the Bearer of the Water of Life: A Christian Reflection on the ‘New Age’)》이라는 보고서(이하 ‘교황청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교황청 보고서는 ‘뉴에이지’라는 말이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 혁명 시기에 장미십자회(Rosicrucianism)와 프리메이슨단(Freemasonry)을 통하여 유포되기 시작하였으며(1.3.), 미국에서 1900년에 이미 《뉴에이지 매거진(The New Age Magazine)》이라는 잡지 제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교황청 보고서, 주14)

 

1970년대 중반에는 《타임(Time)》지를 비롯한 여러 대중 잡지들이 염력, 심리 치료, 침술, 예언 등에 관하여 다룬 기사들을 통하여 ‘뉴에이지’라는 표현이 관심거리가 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그 관심이 고조되어 뉴 에이지 사상을 다룬 《뉴에이지 저널(New Age Journal)》, 《요가 저널(Yoga Journal)》, 《동서 저널(East-West Journal)》 등의 몇몇 잡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교황청 보고서는 ‘뉴에이지’라는 명칭이 점성술에서 말하는 곧 다가올 물병자리 시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간주한다.(1.1.) 물병자리 시대는 점성술에서 각각 약 2146년에 해당하는 12개 별자리 시대 가운데 하나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물병자리 시대는 물고기자리 시대 다음에 오는데, 어떤 사람들은 물병자리 시대는 보편 종교의 시대, 물고기자리 시대는 그리스도교 시대, 그 이전인 양자리 시대는 유다교 시대라고 단정한다. 또 물고기자리 시대는 전쟁과 갈등의 시대이며, 물병자리 시대는 조화, 정의, 평화, 일치의 시대라고 한다.(7.2.) 그런데 이른바 ‘뉴에이지’인 물병자리 시대로 전환되는 정확한 때는 저술가들에 따라 다르게 제시되며, 1967년에서 2376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추정된다.(교황청 보고서, 주 14)

 

(2)  뉴에이지 사상의 기원과 새로움

교황청 보고서는 뉴에이지 사상의 본질적 모체는 밀교적 신지학적 전통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2.3.2.) 서양 밀교의 기원은 그리스도교 초기에 성장하고 유럽의 종교 개혁 시대에 힘을 얻었던 영지주의 단체들로 거슬러 올라간다.(1.3.) 서양 밀교는 18-19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지성계에 상당히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특히 프리메이슨 운동, 심령술, 은비학(隱庇學, occultism) 그리고 신지학(theosophy)에서 일종의 밀교 전통을 공유하였다.(2.3.2. 참조) 1875년 미국 뉴욕에서 러시아인 영매 헬레나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 등이 설립한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는 전통적 밀교 요소들을 진화론, 심리학, 비교종교학 등의 현대 문화와 통합하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자연 법칙들과 인간의 잠재력 연구를 설립 목적의 하나로 설정하였다.

 

뉴에이지로 흘러 들어온 전통 가운데는, 고대 이집트의 비술(occult) 관습, 히브리 신비 철학(Cabbalism), 초기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수피교, 드루이드교 지식, 켈트족의 그리스도 사상, 중세의 연금술, 르네상스의 헤르메티시즘(hermeticism), 선불교, 요가 등이 있다.(2.1.)

 

이처럼 뉴에이지에는 사실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1.3.) 그럼에도 뉴에이지의 새로움은 바로 혼합주의(syncretism), 곧 ‘밀교적 요소들과 세속적 요소들의 혼합’에 있다고 할 수 있다.(2.1.) ‘밀교(esotericism: ’안에 있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esotros에서 유래)’란 일반적으로 입교한 집단에게만 전수되는 고대의 신비한 지식 체계를 일컫는다. 이들 집단은 자신을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진 진리의 수호자라고 생각한다.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밀교적 신지학적 전통을 일반인의 영적 욕구, 건강과 행복의 추구, 환경 보호 의지와 융합하고 시장 경제 원리와 대중 매체의 지원으로 세계적 현상으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뉴에이지가 과거의 밀교적 전통과 다른 점이다.

 

2.‘뉴에이지’ 운동의 대중화

(1) 뉴에이지 운동의 대중적 확산과 공모

뉴에이지 운동의 첫 상징은 미국 뉴욕 주의 우드스톡(Woodstock) 축제(1969년)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어(Hair: 1968년 공연)’이다.(교황청 보고서, 2.1.) 뮤지컬 ‘헤어’에서 불린 노래 ‘물병자리(Aquarius)’의 가사는 뉴에이지의 주요 요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신지학회의 활동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부 대중 잡지들과 더불어 뉴에이지 운동의 전개에 중대한 역할을 한 사람은 매릴린 퍼거슨(Marilyn Fergus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1980년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저서 《물병자리 시대의 공모: 1980년대의 개인과 사회의 변혁(The Aquarian Conspiracy: Personal and Social Transformation in the 1980s)》을 통하여 자신은 비록 점성술 지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둡고 어지러운 물고기자리(Pisces) 시대를 지나 사랑과 광명의 황금시대, ‘진정한 정신의 해방’의 시대인 물병자리(Aquarius) 시대에 들어선다는 것”에 공감하며, 12개 별자리 가운데 “오래된 갈증의 해소를 뜻하는 적절한 상징”인 물병자리의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 “정치가, 법인이나 개인회사 경영인, 사회 명사, 전문 분야에서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전문 직업인 그리고 사회적 변화의 기적을 이루어 내는 ‘보통’ 사람들”이 공모하고 있다고 단언하고 그 공모의 확산을 부추긴다.

 

(2)  시장에서 뉴에이지 운동의 성공과 대중 매체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차원에서 뉴에이지와 연관되어 있다.(교황청 보고서, 2.5.) 대부분의 경우, 어떤 집단이나 운동에 ‘소속’되는 일도 없고 뉴에이지의 기본 원리에 특별한 관심도 자각도 없지만(예를 들면, 아로마테라피를 받는 사람들이나 뉴에이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대개 그러한 것들이 자신의 건강이나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질 뿐, 그것의 이론적 신비적 의미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뉴에이지’는 일종의 상표가 되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대중 매체를 통하여 그 개념들이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급속한 전파가 우연히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뉴에이지 신봉자들의 계획에 따른 것인지 증명할 길은 없다. 왜냐하면 물병자리 시대의 공모자들 또는 뉴에이지 신봉자들의 공동체는 매우 느슨한 ‘공동체’ 또는 ‘조직망’이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은 나이와 배경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뉴에이지에 관심을 갖도록 해 주었고, 심지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 젊은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가 잘못된 것일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실제로 진지한 것에서 터무니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뉴에이지 관련 사이트들이 놀랄 만큼 늘어나고 있다.(교황청 보고서, 1.2.)

 

3. 뉴에이지의 기본 사상

 

뉴에이지의 본질은 주류 종교와 문화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활동, 생각, 사람들의 느슨한 결합이므로, 뉴에이지 안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교황청 보고서는 몇 가지 공통점을 지적한다.(2.3.3.)

 

- 우주를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본다.

- 우주는 신의 영혼이나 정신과 동일시되기도 하는 에너지로 생명을 얻는다.

- 다양한 영적 존재들에 대한 명상을 매우 신뢰한다.

- 인간은 비가시적인 상위 영역으로 상승할 수 있으며, 사후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

- 모든 종교와 문화보다 앞서며 우위에 있는 ‘영원한 지식’이 있다고 믿는다.

-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은 스승을 따른다.

 

이제 뉴에이지의 인간관, 신관, 세계관 등에 관하여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1) 뉴에이지의 인간관

뉴에이지의 모든 사상과 수행에는 범신론이 스며들어 있다.(교황청 보고서, 2.3.1.) 범신론(pantheism)이란 모든 것이 신이라는 믿음이며, 때로는 모든 것이 신 안에 있고 신이 모든 것 안에 있다(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뉴에이지에서는 인간이 ‘신의 불꽃(a divine spark)’을 지니고 태어나며, 이 불꽃을 통하여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전체(the Whole)와 일치를 이룬다고 한다.(교황청 보고서, 2.3.4.1.) 인간은 명상, 심리 요법 등을 통하여 개인의 자아를 ‘우주적 의식(universal consciousness 또는 cosmic consciousness)’으로 변형시키는데, 이는 여러 몸을 거치는 환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환생 사상은 힌두교 윤회 사상의 일부이고 불교 전통에도 있는 것이지만, 유럽에서는 환생이 징벌과 정화의 연속이 아니라 배움을 통하여 개인의 잠재력을 점진적으로 완전히 개발 성취하는 과정이라는 식으로 훨씬 더 낙관적으로, 곧 단계적 상승 과정으로 이해되어 왔다.(교황청 보고서, 2.2.3.)

 

이제 인간에게 죄는 없으며, 다만 불완전한 지식만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외부에서 오는 계시나 구원은 필요 없고, 초월적 존재의 심판을 받을 필요도 없으며, 최종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심리적, 육체적 기법을 숙달함으로써 자신 안에 감추어진 구원을 경험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러한 뉴에이지의 인간관은 하느님의 모습이며 세상의 중심인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다양한 기법과 치료법을 통하여 인간이 완성될 수 있다는 근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협력해야 한다는 그리스도교의 인간 구원관과 반대된다.

 

(2) 뉴에이지의 신관

뉴에이지의 신은 유다-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전혀 다르다. 뉴에이지의 신은 인격적이지도 초월적이지도 않으며, 우주의 창조자도 유지자도 아니다. 단지 우주 안에 내재하며 ‘우주적 일치(cosmic unity)’를 이루는 ‘비인격적 에너지(impersonal energy)’이다.(교황청 보고서, 2.3.4.2.) 또한 신은 ‘생명 원리(life-principle)’이며 ‘세상의 영 또는 영혼(spirit or soul of the world)’, 곧 세상에 존재하는 의식의 총합(the sum total of consciousness existing in the world)이라고 한다. 신의 비인격적 에너지를 인간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면 흔히 ‘그리스도의 에너지(Christic energy)’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나자렛 예수는 유일한 그리스도가 아니며, 부처나 다른 사람들처럼 단지 그러한 ‘그리스도적’ 성격이 드러나는 여러 역사적 인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한 그리스도들은 모든 인간이 천상의 신적 존재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우주의 신적 에너지(divine cosmic energy)’를 감지하는 가장 내적이고 인격적인(정신적인) 차원을 ‘성령(Holy Spirit)’이라고 부른다.

 

다른 한편, 뉴에이지에서는 동양 종교나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를 선호하여, 고대의 농경 의식과 다산 숭배를 높이 평가하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개념과 연결될 수 있는 하느님 아버지 대신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 등을 제시하기도 한다.

 

(3) 뉴에이지의 세계관

뉴에이지에서 “우주는 에너지의 바다이며, 단일한 전체 또는 관계들의 조직망이다.”(교황청 보고서, 2.3.4.3.) 뉴에이지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범신론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신, 단일한 전체를 이룬다. 다만, 인간이 환생을 통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며 단계적으로 상승하듯이, 세계도 그 자체는 신성하지만 물질적 세계에서 ‘상위의 완전한 의식(higher and perfect consciousness)’으로 진화의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또 세계는 창조된 것이 아니며 영원히 자급자족한다고 한다. 신과 세계, 영혼과 육체, 지성과 감성, 하늘과 땅은 모두 에너지의 거대한 진동이라고 한다. 이러한 세계관에는 물질을 분자로 보기보다는 파동이나 에너지로 보는 물리학적 이해 변화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신적 에너지 또는 ‘영(spirit)’을 통하여 우주는 활기를 얻으며, 우주 안의 모든 것은 하나의 가족을 이룬다. 이처럼 인간을 비롯한 각 존재가 모여 자연과 세계의 전체 조직을 이룬다는 ‘전체론(holism)’은 현대인의 전체적인 세계관을 통합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고 주장된다. 전체론에 대한 가장 분명한 표현은 ‘가이아’ 가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뉴에이지의 일부 경향에서는 다른 세계와 소통함으로써 개인의 운명을 알아내고자 한다. 이는 상위 단계에 사는 영적 존재, 곧 승천한 스승, 천사, 귀신, 집단적 존재들, 자연 정령, 더 높은 자아(Higher Self) 등에게서 정보를 받아 전하는 통로(channel)인 영매(psychic mediums)를 요청하는데, 그러한 영매를 통한 교신을 채널링(channeling)이라고 한다.

 

(4) 뉴에이지의 종교관

뉴에이지의 핵심에는 특정 종교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확신이 깔려 있다.(교황청 보고서, 2.) 매릴린 퍼거슨은 《물병자리 시대의 공모》라는 책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86퍼센트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76퍼센트가 조직적 종교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 믿음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찬성하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의 60퍼센트가 ‘대부분의 교회가 종교의 참된 영적 측면을 상실했다.’는 데에 동의하였다는 1978년의 조사 결과를 밝히며, “서양의 형식적 종교는, 탈퇴, 반대, 반역, 영향력의 상실, 재정 지원의 감소 등에 의해 뿌리째 흔들렸다. …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발견하지 못하면, 교회는 홀로 고행의 길을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조직적 종교보다는 ‘영성’을 추구하였다.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조직화된 종교가 그들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그러한 종교를 거부하는 반면, 동양 종교나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를 선호하여 관련 서적이나 강좌의 성행을 초래하였다.(교황청 보고서, 1.4.)

 

(5) 뉴에이지의 영성관

뉴에이지에서 ‘영(spirit)’은 범신론에 따라 본래 하나이며 신적이다. 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식의 총합이며 세상의 영(soul of the world)이고, 신성은 가장 낮게는 광물계의 수정에서부터 우리가 아무것도 언급할 수 없는 은하계의 신에 이르기까지 등급에 따라 모든 존재에서 발견된다고 한다.(교황청 보고서, 4.) 그러므로 인간의 영성은 곧 신성이며, 명상, 심리 요법, 인간 잠재력 개발, 영매의 도움과 상위의 영적 존재들과의 교신, 환생 등을 통하여 인간 자신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교황청 보고서, 2.2.3.) 다른 한편, 뉴에이지 옹호자들은 영과 물질을 구별하는 이원론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전체성(wholeness)’의 추구는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며, “전체론”은 세계를 모두 에너지의 진동으로 파악하여 통합적으로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 개념으로(교황청 보고서, 7.2.), 뉴에이지 운동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요컨대, 뉴에이지에서 ‘영’은 ‘물질’과 구별되지 않으며, ‘영’과 ‘물질’은 모두 신적 에너지로써 하나의 전체를 형성한다.

 

뉴에이지가 제시하는 ‘새로운 영성(new spirituality)’은 “실재 전체와 이루는 조화와 일치의 내적 경험, 곧 각 인간이 느끼는 불완전성과 유한성을 치유해 주는 내적 경험”(교황청 보고서, 3.1.)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성은 형이상학적 요소와 심리학적 요소로 구성된다. 형이상학적 요소는 밀교와 신지학에 뿌리를 두며, 기본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영지주의이다. 또 심리학적 요소는 밀교 문화와 심리학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개인적 위기나 오랜 영적 탐구 끝의 신비 체험 또는 명상, 치료법 등을 위하여 심리적-영적 변화(psycho-spiritual transformation)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영성에서는 우리를 찾으시는 하느님의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