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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건강
고통 속에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희망


이종훈(안드레아)|의사, 대구 가톨릭대학병원 정신과

눈에 시퍼런 멍이 든 한 여자아이가 어눌한 발음으로 의사가 묻는 말에 겨우 한두 마디로 대답을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익숙한 분위기가 되어서인지 아이의 발음은 점차 똑바로 되어갔고, 엄마가 때릴 때 어떻게 했냐는 말에 “엄마, 제발 때리지 마세요.”라며 애원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표정이 없이 무미건조한 대답만 하던 열 살짜리 여자아이가 면담이 끝나갈 무렵에는 “오빠가 보고 싶어요!”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자 함께 있던 치료자와 보육원 담당 선생님의 눈시울까지 적시게 한다.

한편에서는 경찰서에서 비행행동으로 정신보건센터에 의뢰되어 심리학적 평가와 사회기술훈련을 받았던, 여기저기 긁히고 멍든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는 나이에 비해 덩치가 큰 초등학생이 엄마와 함께 자신이 잘못한 일과 행동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이상의 두 아이는 각각 친엄마와 친할머니에 의해 적어도 1년 이상 구타와 괴롭힘을 받으면서 생활하다가 주민들의 신고로 국가에 의해서 보육원에 맡겨졌거나 친엄마에게 다시 돌아가 양육된 사례들이다.

아동학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학대의 유형과 빈도, 심한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부모의 교육 정도, 빈부, 연령, 종교 등에 따른 차이가 없이 모든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전과 달리 아동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전 세계가 아동을 보호하고 아동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의사결정에 참여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까지 아동학대나 방임이 ‘가정 내 문제’, ‘부모가 자기 자식을 마음대로 하든 다른 사람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아동을 보호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부모를 포함한 가족들이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국가나 사회가 개입하여 이들을 돕거나 해결해야만 한다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국내에서의 발생 빈도를 살펴보면, 이재연(2000) 등의 전국적 조사에서 약 43.7%가 아동부당취급 그 가운데 23.5%가 신체학대, 20% 정도에서 방임을 하고 있었고 정서적 학대는 19%, 성학대가 1.1%였다. 그 외에도 여러 조사가 있었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국내에서도 아동학대 및 방임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범사회적, 범국가적 뒷받침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이 아이들의 아동학대에 의한 후유증은 신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신체적인 것은 우선 손상에 의한 여러 가지 증상들이 있고, 지속적인 학대에 의한 성장의 실패, 과각성 상태와 같은 생리기능의 변화를 나타낼 수 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심각한데, 외부위험에 집착하여 학습과 자기계발에 필요한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경우 지능 및 자아기능의 손상이 발생되고 외상 등으로 인한 중추신경계의 손상을 나타낸다. 감정조절기능의 저하 및 이상, 자기 개념의 손상, 애착형성의 붕괴, 충동조절능력의 저하와 또래 관계의 이상, 자학적 자기 파괴행동, 학교부적응과 같은 문제를 나타내고 이에 따른 정신병리 현상을 초래하게 된다.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으면서 하얀 도화지와 같은 아이들의 마음에 처음부터 검은색 물감으로 새까맣게 칠해버려서 나중에 다른 색깔을 입혀도 계속 어두운 밤과 같이 검게만 채색되어버리게 되는 아동학대는 의사, 사회사업가, 심리학자와 같은 전문가들만의 관심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일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예방하고 관리해주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이 아이들과 함께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