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은 1894년 1월 8일, 폴란드 중부 지방의 작은 마을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났어요. 막시밀리아노는 수도명이고, 신부님이 되기 전의 이름은 라이몬드였어요. 라이몬드는 삼형제 중 둘째였고, 그의 가정은 아주 가난했지만 화목했어요. 그의 어머니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자녀들을 매우 엄격하게 가르쳤어요. 그러나 그 엄격함 속에는 늘 사랑이 가득했기에 삼형제는 밝고 건강하게 자랐지요. 라이몬드는 호기심이 많고 총명했으며 무척 개구쟁이였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라이몬드가 달라졌어요.
“그렇게 개구쟁이짓만 하더니 요즘은 말도 잘 안 하고, 툭하면 기도방에 틀어박혀서는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어머니는 달라진 아들의 모습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아도 도무지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지요. 몇 번을 다그쳐 묻자 그는 그제야 입을 열었어요.
“성모님을 만났어요.”
“뭐라고?”
어머니는 깜짝 놀랐어요. 그러나 아들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란 걸 금방 알아채고는 조용히 물었어요.
“어디서?”
“성당에서요. 지난번에 어머니께서 제게 ‘이렇게 장난만 쳐서 나중에 뭐가 될래?’ 하고 걱정하셨을 때, 성당에 가서 성모님께 제가 뭐가 될지 여쭈어 보았어요.”
“성모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
“제게 두 개의 관을 보여 주시면서 어떤 것을 가지고 싶으냐고 물으셨어요.”
“관이라고?”
“네, 하나는 하얀 관이고, 하나는 빨간 관이었는데, 하얀 관은 순결을 뜻하고, 빨간 관은 순교를 뜻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둘 다 가지겠다고 했어요.”
어머니께 성모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자 라이몬드는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콜베가의 삼형제는 자라면서 모두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막내가 수도원에 들어간 후에는 라이몬드의 부모님도 각각 다른 수도회에 입회하게 되어 다섯 가족 모두가 수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요.
라이몬드는 막시밀리아노라는 새로운 수도명을 받게 되었어요. 그 무렵, 막시밀리아노는 결핵에 걸렸는데, 비록 병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언제나 수도회의 규칙을 지키는 데 엄격했어요. 어려움을 이겨낼수록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더욱 깊어갔고, 성모님을 향한 사랑 또한 커져만 갔지요.
막시밀리아노 콜베는 24세 때 신부님이 되었어요. 그 동안 그는 로마 유학을 다녀왔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의 기사회’라는 신심단체도 만들었어요. 이듬해 콜베 신부님은 두 개의 학위를 받아 고국 폴란드로 돌아왔어요.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하느님의 가르침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하기 위해 ‘성모의 기사’란 잡지를 만들었어요. 이 잡지를 만들기 위해 모든 면에서, 특히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얼마 후, 콜베 신부님은 니에포칼라누프라는 새로운 수도원 건물을 지었고, 이곳에서 잡지사 운영을 계속하여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성공을 이루어냈어요. 신부님은 또 일본으로 건너가 ‘성모의 기사’를 통해 성공적인 선교활동을 펼쳤어요. 그러나 신부님의 병은 더욱 악화되어만 갔지요.
그러던 중 1936년 5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야 말았어요. 독일은 제일 먼저 폴란드를 공격했고, 니에포칼라누프도 공습을 당했어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가세요.”
때마침 이곳에 머물던 콜베 신부님은 수사님들에게 이렇게 명하고, 자신은 계속 그곳을 지켰어요.
9월 19일, 독일군이 수도원에 들이닥쳤어요. 콜베 신부님 일행은 암티츠 감옥에 갇혔다가 겨우 풀려나게 되었지요. 그러나 1941년 2월 14일, 독일군들은 다시 신부님들을 체포했어요. 독일은 소련을 침공하기 전에 폴란드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는 무서운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매일 몇 천 명이나 되는 폴란드 사람들이 죽어갔어요. 콜베 신부님은 파비악 감옥을 거쳐,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는 아우슈비츠의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갔어요. 모진 괴롭힘과 노동 속에서도 신부님은 언제나 사람들을 격려하며 하느님 나라를 전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14호 감옥에서 죄수 한 사람이 도망쳤어요.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한 사람이 도망가면 다른 열 사람을 죽이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야, 너, 너, 너, 그리고 너!”
수용소 대장은 14호 감옥의 죄수들 중에서 아무렇게나 열 사람을 뽑았어요.
“너희들은 굶어 죽는 형벌을 받은 사형수들의 감방에 가서 죽어야 한다.”
그 때, 뽑힌 사람 중 한 사람이 울먹이며 말했어요.
“안 돼요! 전 지금 죽을 수 없어요. 저한테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자 콜베 신부님이 수용소장 앞으로 나아갔어요.
“제가 저 사람 대신 죽고 싶습니다.”
“뭐라고? 너는 누구냐?”
“가톨릭 신부입니다. 나는 늙었고 가족도 없으니 나를 대신 죽이시오.”
열 사람은 벌거숭이가 되어 작은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들에게 그나마 행운이라면 콜베 신부님과 함께라는 사실이었어요.
“죽을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그 동안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입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는 동안, 함께 기도하고 성가를 부릅시다.”
간수들은 믿을 수가 없었어요. 원망과 저주의 울부짖음이 들리기는커녕 기도와 성가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에요. 신부님은 사람들에게 미칠 듯한 죽음의 공포가 닥쳐올 때마다 그 사람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해 주었어요.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사람들은 죽어갔고, 병이 있어 제일 먼저 죽을 거라던 예상과는 달리 콜베 신부님은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아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오래 견뎌야 했어요.
간수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죽음의 주사를 놓기로 했어요. 간수들이 주사기를 들고 들어왔을 때, 신부님은 그들이 일하기 쉽도록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그들에게로 팔을 뻗어 주었어요. 그 날은 1941년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로, 콜베 신부님의 나이 47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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