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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책 한 권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


이영구(실베스텔)|침산성당

퇴근길에 우연히 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차를 길가에 세우고 디카에 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뒤 따라 오던 차에서 남자 둘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내리더니 ‘아무것도 없네.’ 하고는 투덜대며 도로 차에 타는 것이었다. 나 또한 다시 차에 타며 ‘아무것도 없지는 않지. 석양에 비친 고요한 물결이 하늘을 너그러이 안고 있고 물고기들의 지느러미가 일으키는 파장, 물살에 뿌리를 애써 지탱하는 풀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아름다운데….’라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공동체이든 그 틀을 밖에서 들여다보면 일면 단순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한 조각 한 조각 구성원들 사이에는 서로 깊은 관계성을 띠고 서로 영향을 준다. 또 아기자기한 개울의 물이 돌과 부딪히듯 말과 행동으로 깊은 상처를 주고받기 마련이다.

올 봄 계산서원에 들렀다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구입하여 단숨에 읽고 또 읽고 하였다.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안셀름 그륀 지음, 모명숙 옮김)》은 1500년이나 되는 성베네딕토 수도회의 규칙이 오늘 이 시대에도 많은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조직과 사람들과의 올바른 관계성을 유지하는데 하나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1945년 독일에서 태어난 안셀름 그륀은 성베네딕토 뮌스터 슈바르차흐 대수도원의 수사 신부로, 현대 그리스도교 베스트셀러 작가의 한 사람이며 독일 최고 경영자들의 영적고문으로 평가 받고 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대권 주자들도 ‘기업식 성과관리’형과 ‘자율경영관리’형으로 참모들을 이끄는 방법이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는 것쯤은 정치 문외한이라도 느낄 수 있는데, 어느 쪽이 과연 그들의 조직에 활력을 주고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성베네딕토 수도규칙에는 특히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 먼저 자신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즉 경영인의 인품이 무엇보다 강조되고 있다. 경영인으로서 인품이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경영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영 세미나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관리 능력, 명확한 목표 설정과 이에 따른 인적·물적자원을 적절하게 투입하는 것, 복잡한 연관을 신속히 파악하는 것, 적절한 결단 등이지만 베네딕토는 특히 수도원 살림을 책임 맡고 있는 사람의 태도와 자질에 관해 기술하면서 경영목표를 간과하지는 않는다. 경영목표는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창조물과 인간을 세심하게 다루는 데에 있으며 공동 작업으로 하느님의 집을 세우는 데 있다고 본다.

이 책에 따르면 책임자의 자질로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음미하는 사람, 사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뿐 아니라 사물과 접촉하는 사람, 사물을 자기 감각으로 파악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는 일에 머리를 싸매기도 하고, 닥쳐오지도 않은 일에 고민과 헛된 시간들을 보내며 스스로 힘들어 하기 마련이다.

문제를 쉽고 단순하게 풀어가는 능력, 그 모든 것에 앞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인간애로 가득차고 사람에 대해 선하게 받아들이며 평화와 기쁨에 가득한 삶을 살아가도록 항상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그 모습만으로도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자세가 바로 한 조직의 책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한다.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자영업을 한 지 17여 년 만에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동체에 몸을 담게 되면서 낯선 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어 공동의 목표를 갖고 주어지는 여러 난제들을 잘 해결해 나가고 조직과 인력을 갖추고 소기의 성과를 일구어 나가는 데에 이 책이 제시한 부분들이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상 위에 두고 틈틈이 읽으며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나와 같지 않은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또 함께 하는 사람들의 창의력과 자율성을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 책은 나에게 마음의 양식이 되고 힘과 용기를 주는 고마운 책이다.


이영구님은 영천 성모병원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하면서, 한국 ME 정보홍보분과 부대표, 대구 ME 사도직분과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