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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주는 성인이야기
김효임 골롬바와 김효주 아녜스 자매


김혜영(율리엣다)|포항 대잠성당·동화구연가

김효임 골롬바, 효주 아녜스, 클라라 이들 세 자매는 서울 가까운 밤섬이라는 마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골롬바는 6남매 중 둘째, 아녜스는 넷째, 클라라는 다섯째였어요. 이들 가족이 처음부터 천주교 신자였던 것은 아니예요. 이들의 아버지는 천주교를 믿기는커녕 오히려 집안에서 이를 엄격하게 금했지요. 이들은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와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어요.

“골롬바 언니, 난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거야!”

“그래, 우리 세 자매 모두 동정으로 살면서, 오로지 천주님만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자!”

얼마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들 자매는 고양에 사는 오빠 김 안토니오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어요. 골롬바와 아녜스의 믿음의 생활과 사랑의 실천은 늘 다른 교우들의 아름다운 표양이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기해년 5월 3일에 김사문이란 사람이 이들을 돈 많은 교우집이라며 고발했어요. 다행히 가족들은 이 소식을 미리 알고 피신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집에 남았던 골롬바와 아녜스, 세 살 박이 어린아이는 포졸들에게 붙잡혔어요. 두 자매는 서울포도청으로 압송되었어요. 골롬바와 아녜스는 함께 포장 앞에 끌려나가 신문을 받았어요.

“너희가 천주교를 믿는다니 참말이냐?”

“예, 우리가 천주를 흠숭하고 공경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혼인을 아니 하였느냐?”

“우리의 마음과 몸을 정결하게 보존하고 천지, 신인, 만물을 창조하신 천주님을 섬기고 흠숭하여 우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골롬바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동정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사실 그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결혼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큰 죄가 되었거든요.

“너희들은 어찌하여 인륜을 파괴하는 일이요, 나라에서 엄금하는 일을 감히 한단 말이냐? 지금이라도 천주를 배반하고, 너희 책이 어디 있는지 말하고 동교인을 대라. 그리고 너희 오라비가 어디로 갔는지도 말하라.”

“만 번 죽어도 천주님을 배반할 수는 없고, 오빠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형리들은 이들 자매의 주리를 틀고 뾰족한 몽둥이로 마구 찌르기 시작했어요.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더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어라, 다른 죄인들은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난리들인데 저 두 자매는 마치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걸 보니 마귀가 씌인 게 틀림없다.”

형리들은 다른 교우들보다 이들 두 자매에게 더욱 혹독한 형벌을 가했어요. 형리들은 부적을 써서 이들의 어깨에 붙이고는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그 글자들을 13군데나 뚫어 지지게도 했어요. 그러나 4,5일이 지나자 이들은 다시 기운을 차렸고 덴 자리도 씻은 듯이 가셨지요.

또 하루는 형리들이 이들을 외딴 감방으로 끌고 가서 학춤이라는 형벌을 가하였어요. 이 형벌은 죄수를 발가벗기고 손을 뒤로 결박 지운 채 팔을 공중에 달아매고는 네 사람이 번갈아 가며 매질을 하는 것으로, 몇 분만 지나면 혀가 빠져 나오고 입에 거품이 고이며 얼굴빛은 검붉어져서 죄수를 내려 쉬게 하지 않으면 곧 죽어버리는 끔찍한 형벌이에요. 형리들은 이들을 무수히 때리며 온갖 비웃음과 욕설을 퍼부었어요. 그러나 골롬바와 아녜스는 더욱더 열심히 자기의 고통을 천주님께 바치며 묵묵히 기도만 드렸어요. 때론 형리들이 형벌을 중지시키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천주대전에 가기 위해 나를 빨리 죽여 주십시오.”

“에잇, 지독한 것들! 어디 이래도 너희들이 버티는지 보자.”

형리들은 두 자매의 옷을 모두 벗기고는 남자도둑들의 감방에 몰아넣었어요. 그러나 기적처럼 어떤 신비스런 힘이 두 자매를 감싸서 아무도 이들을 해칠 수가 없었어요. 결국 형리들은 옷을 돌려주고 그녀들을 다시 여자 감방으로 데려갔어요.

이렇게 포청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낸 골롬바와 아녜스는 다시 형조로 이송되었어요. 형조판서는 이들에게 물었어요.

“너희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참말이냐?”

“관장께서 말씀하시는 제사는 헛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옥에 갇혀있는 사람을 보십시오. 그들은 생일이나 무슨 명절을 당하여 아무리 자식들이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청한다 할지라도 자기들 마음대로 옥에서 나가 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하물며 지옥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 거기서 나와 제사에 참례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 그것은 헛되고 거짓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골롬바는 차분하고 조리 있게 대답했어요. 형조판서는 그녀의 언변에 크게 감동했어요. 문초가 끝날 무렵에 골롬바는 자기와 동생이 당한 모욕의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서민의 딸이건 양반의 딸이건 우리는 존중함을 받을 권리가 있지 않사옵니까? 나라 법에 의해 우리를 죽이신다면 즐겨 죽겠사옵니다. 그러나 법에도 없는 그런 모욕을 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옵니다.”

“도대체 누가 감히 백옥같이 고귀한 젊은 여자들에게 그런 몹쓸 짓을 했단 말이냐? 여봐라, 이들에게 법 이외의 형벌을 가한 자들을 귀양 보내도록 하여라!”

그 후 이들은 다시 법정에 끌려 나가 세 차례나 더 곤장을 맞았으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과연 그들의 온순함은 저 무서운 고문이나 죽음보다도 더욱 강했지요.

1839년 9월 3일, 그들이 옥에 있은 지 4개월 만에 동생 아녜스의 형이 먼저 집행되었어요. 김효주 아녜스는 다섯 명의 교우들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순교의 화관을 썼어요. 그리고 20여일 후인 9월 26일, 스물여섯의 김효임 골롬바도 동생의 뒤를 이어 참수형을 받고, 천국에서 영원한 가족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