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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구라복지사업회 엠마 프라이싱거 회장
나환우들의 손과 발이 되어


김명숙(사비나) 본지 편집실장

앞산에는 희끗희끗 잔설이 남았는데, 어느 사이 우리 가까이 다가온 새봄의 문턱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뿐하다. 구라복지사업회(릴리회)의 엠마 프라이싱거(Emma Freisinger) 회장, 평생을 나환우들의 삶을 위해 헌신하면서 그들의 자립을 위해 애써 온 이. 현재 그녀는 대구광역시 북구 태전동의 한 아파트를 릴리회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여전히 나환우를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릴리회’ 현판이 부착된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창을 통해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반가운 아파트 거실은 한창 지로용지를 출력하느라 부산하기만 하고, 엠마 회장은 방 한 칸을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따뜻한 차 한 잔과 더불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는 동안, 40년 넘는 이국생활을 어쩜 그리도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뭉클하기까지 하다. 순간순간 안경 너머로 보이는 엠마 회장의 깊은 눈빛은 참으로 맑고 따스하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교의 작은 마을 출신의 그녀가 낯설고 생경하기만 했을 아시아의 한국, 그것도 대구 땅을 밟은 것은 1961년 3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던 중 한국과 에티오피아 선교의 갈림길에서 운명처럼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녀는 한국에 오자마자 경북 고령, 칠곡 등지의 나환우들을 찾아다니며 진료 활동을 펴왔다. 처음엔 2년만 봉사하고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떠나온 고국이었는데, 어느새 40년 세월이 훌쩍 흘렀다. 5년에 한번씩 고국방문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설레고 그리운 마음이 많았다는데, 세월이 흐르는 만큼 그리움도 곰삭아서인지 이제는 오히려 한국이 더 고향 같단다.

 

엠마 회장은 칠곡 가톨릭 피부과병원을 설립하던 1965년부터 1996년 퇴임하기까지 30년 넘는 시간을 가톨릭 피부과병원(대구. 북구 읍내동 위치)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특별히 나환우들의 치료와 자활에 힘써 왔다. 1970-80년대 나환우들은 설령 나병으로부터 완치되었다고 해도 이미 나병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야 했는데, 그들의 병이 나았을 때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도 불편할 만큼 이미 손과 발을 잃은 후였다. 그런 까닭에 엠마 회장은 “완치된 나환우들은 사실 장애우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나라에서 그들에게도 장애 판정을 해서 생계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며 나환우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털어놓는다.

 

나환우들의 대모로서, 나환우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그들 곁에서 자신의 한 생을 소진하고 있는 엠마 회장. 그녀는 “부자보다는 가난한 보통 사람들한테 도움받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자주 깨닫는다.”고 전하면서 “남을 도우며 살아갈 때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고 또 저절로 기뻐지니 거기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나환우들이 정착하여 삶의 터전을 가꾸며 살아가는 나환우 ‘자조(自助)마을’이 전국에 걸쳐 서른 군데 있다. 엠마 회장은 수시로 전국의 자조마을을 방문하여 그들을 위한 경로잔치, 피정 등의 행사를 주관하면서 물심양면으로 그들의 삶을 돕는다. 물론 릴리회 회원들의 회비가 도움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따라서 나환우와 릴리회는 엠마 회장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엠마 회장은 “이제는 중국이나 인도, 필리핀 등 다른 나라의 나환우들을 위해서도 일해야 하는데, 이러한 일은 그 옛날 우리가 도움 받은 것을 이제는 우리가 돌려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면서, “우리 눈앞에 있는 그들을 우리가 나서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릴리회’는 나환우들을 돕기 위한 후원단체로, “내 손으로 한 사람의 나환우를 돕자.”는 마음으로 1970년 한국은행 부산지점 여행원들에 의해 시작되어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그 회원수를 늘려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한센병(hansen disease) 혹은 한센씨병(hansen s disease, 1873년 노르웨이의 의학자 한센이 이 병의 바이러스를 발견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불리는 나병(leprosy), 이제는 치료만 잘 하면 완치도 가능해졌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1985년 이후로 발병률이 현저히 줄어든 상태이지만, 이미 병을 앓았던 환우들에게는 자립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 여전히 릴리회 회원들의 후원금은 절실한 상황이라 하겠다.

  

아름다운 젊은 나이에 한국이라는 낯선 나라에 와서 평생을 나환우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쳐 오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수도자처럼 살아온 엠마 프라이싱거 회장. 스스로 가난한 삶을 원하여 주님 앞에 가난하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날마다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 엠마 프라이싱거. 가슴 깊은 곳에 가난하고 소외되고 아픈 사람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이국에서의 40년 넘는 봉사의 삶도 가능했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이야기가 잡지에 소개되는 것조차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치던 엠마 회장.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나환우들의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는 엠마 회장은 “하느님께서 이렇게 건강을 허락하셨기에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다.”며 환히 웃는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3월의 새봄 햇살보다 더욱 눈부시게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