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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으로의 초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정제된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


박수원(프란치스코 하비에르)|오르가니스트, 성김대건성당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9월에는 한국 순교 성인 축일이 있어 음악을 업으로 하는 필자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임진왜란 직후 일본을 통한 미미한 접촉은 제외하더라도 18세기 후반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이제는 좀더 아름다운 전례 음악을 마련하기 위해 진실되게 노력해야 할 시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산으로 들로 이리 저리 쫓겨 다니고,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시대의 혼란스러움을 거치면서 또 한국 전쟁을 치르고 그 피해를 복구하며 좀 살 만해질 무렵에 이르기까지, 그저 단순하고 평화롭게 주일미사에 함께 참석할 수 있게 되기를 얼마나 바랐을까? 우리가 가진 모든 소리들 중에서 가장 귀한 것들만 내어놓아 다만 주님을 찬미하고 더불어 우리 자신도 위로받는 것이 바로 교회음악의 근본정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행했던 지난 세월들은 이렇듯 최소한의 아름다움을 미사 중에 찾는 것조차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쉽고 재미있으며 비싸지 않은 교회음악에 대한 환상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탓에 오랜 시간에 걸쳐 갈고 다듬어야 그 아름다움의 빛을 발하는 단순하고 정제된 예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으로부터 900여 년 전 독일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성 베네딕도회 수녀로 일생을 바친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97-1179)의 삶과 음악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본보기가 되어주고 있다.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었던 중세사회에서 여성 사상가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그 유려한 시와 정제된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많은 명성도 함께 얻었다.

영적인 깊이를 지닌 음악들을 모아놓은 <천상 계시의 조화로운 울림>이라는 곡 집이 유명한데, 힐데가르트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과 육신 그리고 음악 모두는 ‘울림’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상징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를 이 곡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도이치 하르모니아 문디(Deutsche harmonia mundi)에서 1985년에 제작된 이 음반은 쎄   시아(Sequentia)라는 보컬 앙상블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로만 녹음되어 당시로서는 드물게 수녀라는 신분으로 음악활동을 한 힐데가르트의 음악이 지닌 섬세함을 잘 살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성악 작품들 사이사이에 배치된 기악곡들은 플롯과 하프 등과 같이 복원된 당대의 악기들로 연주되어 소박한 음색이 주는 정갈함이 단연 돋보인다.

허공을 가르는 단선율 음악이 깊은 침묵 속으로 사라지는 잔향을 들으면서 보다 큰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위로 받는 우리 교회의 내일을 꿈꾸어 본다.


* 박수원 님은 프랑스 리용 국립고등음악원 오르간 및 즉흥연주, 리용 음악원 작곡 졸업 후 프랑스 이릿니 음악원, 리용 가톨릭 대학 즉흥연주 교수역임. 현재 연세대, 성공회대, 가톨릭대 출강, 대구평화방송 <교회음악으로의 초대 2부> 진행자로 활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