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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인데도 엄청 더운 날이었다. 나는 그때 여전히 제멋대로인 중3 소신학생이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1시간가량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날씨가 더운 탓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한 방을 사용하던 8명 중 3명이 의기투합해서 샤워장으로 내려갔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시원치 않자, 평소에 꾀가 많은 친구가 신부님들이 사용하시는 목욕탕에는 항상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청소 시간에 보았다며 우리도 잠깐 사용해 보자고 꼬드겼다.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들은 신부님 전용 목욕탕으로 이동했다. 과연 근사한 욕탕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신나게 목욕을 즐기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리고 이윽고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숨을 죽이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우리는 기도시간에 참여해야 하는 규칙을 어기고 있었고 더구나 신부님 전용 목욕탕까지 침범을 했으니 할 말이 없는 터였다. 다시 문고리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안에서부터 잠금 장치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밖에서는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쇠로도 열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한참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나다가 인기척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얼른 옷을 입고 목욕탕을 빠져 나와 적막한 복도를 살금살금 지나 2층 침실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우리는 목욕탕에서의 상황을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 끝에서 다시 인기척이 들렸고, 복도 중앙에 위치한 우리 침실로 오는 발걸음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순식간에 몸을 숨겼다. 한 사람은 침대 밑으로, 또 한 사람은 옷장 안으로, 그리고 나는 문에 서 있다가 반쯤 문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문 뒤에 숨게 되었다.
신학교 경리 담당신부님이셨다. 흘긋 침실을 둘러보시고 나가시다가 다시 들어 오셔서는 침대 밑을 살피며 친구 한 사람을 발견하셨다. 곧이어 “나와, 또 다른 사람은 어디에 있어?”하는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이내 친구는 머뭇거리며 옷장을 가리켰고 신부님은 옷장을 열고는 “나와.” 하시고는 “또 다른 사람은 어디 있어?” 하시는 것이 아닌가? 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친구 때문에, 굳이 변명을 하자면 문 뒤에 서 있다가 문이 열리면서 숨은 꼴이 되어버린 탓에 가장 가슴을 졸이며 서 있던 나에게 신부님은 화가 난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날 우리는 엄청나게 혼이 났다. 사실 그날 이후 여름방학을 할 때까지 우리들은 신부님 전용 목욕탕을 날마다 청소해야 하는 벌을 받았다. 문 뒤에 숨기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고 쳐도 그것이 해결책은 아닌데 미련스럽게 숨기부터 했던 것이 참 부끄러웠다. 그 대가의 지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요즘도 대중목욕탕에 가면 신학생 시절의 그 보속(?)하던 일이 떠오르곤 한다.
신앙을 가진 것을 부끄러워하는 일은 일상에서 자주 찾아오는 유혹이다. 성호경을 긋기가 거북하거나 신앙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부끄러워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은 정녕 의젓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신앙인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것만큼 어색한 일도 없다. 어떤 이들은 신앙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자연스레 습관이 되었다고 하지만, 살이 굳게 되면 그 살은 분명 윤기를 잃고 갈라지고, 트고 해서 결국 피부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신앙은 생활에서 오는 것이고 생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미루거나 피하거나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 둔감해지면 우리의 양심은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게 된다. 신앙은 이렇듯 민감하게 작용한다. 오래 비워둔 집이나 오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온전할 리 없는 것처럼 늘 우리의 삶에서 신앙은 거리를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 뒤에 숨어 쉽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의 진정한 신앙의 모습을 선교하는 삶과 자신을 헌신하는 순교자와 선교사의 삶에서 다시 조명하게 된다. 이제 우리도 삶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본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성실한 삶을 통해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내며 사는 자신감을 되찾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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