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버스 터미널에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립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장거리 아닌 단거리 손님에 더욱 짜증이 나고 입에 붙은 욕설은 이미 싸움의 불씨가 되어 때론 손님들로부터 고발당하고 집에 들어서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은 기사생활, 손님을 태우고 달리던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 짜증이 체질화 되어 버린 듯한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장거리를 자주 이용하시던 손님의 권유로 예비신자 교리반에 입교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교리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해서 종일 손님과 다투게 되고, 저녁이면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시간에 왜 여기 나와서 이런 마음고생을 하나 싶은 생각에 엉뚱한 질문이나 던지곤 했습니다. 몇 번이나 그만 두려던 저의 낌새를 알아차린 듯, 인도해 주신 분이 아예 함께 참석하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교리반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저를 시험이나 하듯 시련은 엎치고 덮쳤습니다. 처가 일로 아내와의 가정생활은 파경지경에 이르렀고 8개월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지내던 아내와 결국 이혼 이야기까지 오가게 되었습니다. 흔들리는 가정에 아이들의 정서가 걱정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예비신자 교리반에 입교 했는데, 성탄절쯤에 늦둥이 아들이 이웃집 진돗개에 얼굴을 물리는 바람에 한 달씩이나 입원을 해야 했고 그 와중에 고등학생인 딸까지 와사풍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런저런 상황에서 설날을 맞아 아침 일찍 큰댁에 가니 아버님께서는 대문 안에도 못 들어오도록 우리 가족을 내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결국 저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제 아내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저의 집안 사정을 알고는 굿을 하라고 권유하기도 했었답니다. 아내와의 긴 침묵을 여전히 술로 달래던 저는 결국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르렀고 그 방법까지도 알아보았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보상금은 나오니 남은 식구는 잘 살 수 있을 것이고 내 마음의 고통도 없어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전교해 주신 분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분들은 저에게 집안 문제에 종교적인 문제를 개입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가장 큰 죄가 자살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며, 아직 묵주기도를 배우지 않은 저에게 9일 묵주기도 책과 묵주를 사주시면서 한번 기도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루하루가 싫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런 중에도 교리와 미사는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운전대 옆에 놔두었던 9일기도 책도 자꾸 눈에 뜨이기에 한 번 읽으면서 끝까지 하니, 시간도 잘 가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무조건 100단씩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이 결심을 했을 때가 제가 세례받기 12일 전이었습니다. 처음엔 숙제처럼 100단씩을 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저절로 기도하고 싶어 새벽 일찍 나와 손님을 기다리며 묵주기도를 바치곤 하였습니다. 평소엔 아침 10시쯤에나 나와서 자정이 되어야 집에 들어가곤 했는데, 이젠 생활리듬도 바뀌어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게 되니 결국 묵주기도를 통해 담배도 끊고 거의 알코올 중독에 가깝던 술도 끊게 되었지요.
인상이 좋지 않은데다 언제나 욕이 입에 붙어 있고, 집에 들어가면 고함부터 지르던 저였습니다. 어쩌다 짐이 많은 할머니가 차를 세우면 못 본 체 지나가 버리고, 손님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을 하며 내리라고 했던 제가 어느 순간 변해 있었습니다. 짐이 많은 할머니가 차를 세우면 이제는 친절히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손님들과도 웃으며 인사를 나눌 때는 제 자신도 무척 놀랐습니다.
아내의 바쁜 모습도 눈에 들어와 주방일도 거들게 되었고, 세례(2007년 4월)를 받은 후에는 저의 집안이 성가정으로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루에 200단씩 묵주기도를 바쳤을 때는 동네 사람들과 아내의 손님들이 저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말들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8개월 동안 입을 닫고 있던 아내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면서 저에게 말을 건네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 당신만 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아내에게 말하니, 그동안 굿을 하자는 둥 이혼을 하자는 둥 하던 아내가 두말하지 않고 따라 나서서는 예비신자 교리반에 입교를 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내는 모르겠지만 저는 알 것 같습니다. 기도의 힘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바위 같은 아내의 마음을 열었는지 말입니다.
성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청했던 그 묵주기도의 힘을 체험한 저는 더욱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잠자리에서 눈만 감으면 성모님이 제 눈앞에 있습니다. 저의 기도가 항상 성모님의 기도가 되었고, 성모님께서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신다는 걸 믿으니 얼마나 은혜로운지 매일매일 기쁨에 벅차오릅니다.
저는 온종일 운전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하는데 하루에 몇 번씩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답니다. 핸들에 감겨 있는 묵주를 보면서 냉담 중에 있는 교우들이 성당에 가고 싶어도 남편 시댁 때문에 못 간다는 하소연을 해오면 그분을 위해 즉시 성모님께 부탁합니다. 이런 작은 기도가 얼마나 감동스럽고 은혜로운지 어떤 때에는 눈시울을 붉히곤 합니다. 묵주를 통해 미사참례에 대한 열정도 깊어져 평일 아침, 저녁으로 미사에 참여하니 일하는 시간은 줄어 들었지만 수입은 전보다 훨씬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처음엔 나 같은 놈이 성당에 나간다고 욕을 할까봐 성당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 다녔는데, 성모님의 군단이 된 이제는 길을 다닐 때에도, 식당에 갈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항상 묵주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세례 받고 같은 해에 견진까지 받고 보니 세상 만물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례 받기 전에는 전부 꼬였던 일들이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고통이 와도 예전의 고통에 비하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희 가족을 위해 정말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셨고, 특히 저에게 신앙을 갖게 도와주신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신영세자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게 참으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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