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은총 속에 100세까지 사십시오.”라며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의 이형우 아빠스 신부님께서 축하미사 중에 말씀하시자, 노신부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수줍어하시며 양손을 가볍게 가로 저었다.
7월 7일 오전 11시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에 소재한 ‘분도 노인마을’의 작은 성당에서 외국인 선교사 수사신부님이신 민공도(알로이시오) 신부님의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 미사가 있었다.
이 분도 노인마을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설립 운영하고 있는 노인 양로 복지시설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의지할 곳 없는 어르신들에게 애덕으로 보살펴 드리고 그들에게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동체이다. 현재는 원장신부, 보좌신부, 수사 3명, 직원 6명과 어르신 50여 명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 분도 노인마을은 1970년 모 안스가리오 독일 수사가 구미 선산에 ‘성심양로원’을 설립하여 1992년 5월까지 운영해오다가, 그해 6월, 수용의 한계가 있어 칠곡군 왜관읍 금남리로 이주하여 ‘분도 노인마을’이라 개칭하고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는 양로 복지시설이다.
이곳에서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신 민 신부님은 1992년 ‘분도 노인마을’이 설립되면서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한결 같이 하느님 사업에 노고를 아끼시지 않았다. 민공도 신부님은 1931년 독일의 베를린에서 태어나셔서 1957년 7월 7일 사제서품을 받으시고 1년 뒤인 1958년 선교사로 부산을 통하여 한국에 오셨다고하는데, 6.25 이후에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오신 첫 선교사라고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보다 더한 49년 동안 한국에서 하느님의 소명에 충실하며 맑은 영혼으로 일관하신 것이다.
이날 금경축 미사에는 수도원 아빠스 신부님과 민신부님 그리고 수도원 동료 몇몇 신부님들께서 공동으로 축하미사를 봉헌하였는데, 미사가 끝날 때까지 신부님의 순박한 미소는 겸손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께 꽃목걸이를 걸어드리고 짧은 축하식을 가졌다. 축하식에서 민신부님께서는 외국인 특유의 억양으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셨다. 숨김없이 표현하시는 모습을 보며 보는 이들도 모두 즐거웠다. 그리고 시인 이해인 수녀님의 즉석 시가 낭송되자 금경축 축하의 자리는 절정을 이루었다.
신부님의 약력소개를 들으면서 숭고한 신앙인의 모습, 거룩한 사제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40년 동안 척박한 광야에서 헤매었듯이, 신부님께서도 낯설고 물선 한국이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는 곳이기에 마다하지 않으시고 몸을 던지셨다. 처음에는 보좌신부로 여러 곳을 다니셨고, 신부님의 열정이 한창이실 때에는 주임신부로 재임하시면서 힘들고 어려운 모든 일들을 감내하며 주님 소명에 순종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이곳 분도 노인마을의 영적 지도신부로 남은 정열을 불태우고 계신 것이다.
말이 쉬워 50년이지 그 긴 세월 얼마나 힘드셨을까? 1950-60년대 우리나라 전체가 빈곤과 가난으로 몸부림치던 시기였기에 신부님의 선교생활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형제 누구 하나 없는 삭막한 이곳에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한 채 사제의 거룩한 삶을 걸으신 민신부님께 높은 공경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축하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가슴 속에는 무엇인가 모르게 인간적인 아쉬움이 남았다. 사제가 금경축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은 10명 중 1,2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축하식이 너무나 소박했다. 축하객이라고는 수도원 동료 10여 명, 수녀 15~16명 그리고 신부님을 늘 공경하는 평신도 수십 명과 분도 노인마을 식구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축하객 모두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시며 진심으로 기뻐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에 주님 사랑의 뭉클한 느낌을 받았고, 더구나 모국의 동료 수사 신부님이신 현익현(바르톨로메오, 가실성당 주임) 신부님과 기념 촬영을 하는 장면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 앞을 가렸다.
이제 민신부님의 고향은 이곳 한국이 되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난 지 49년이 지난 지금 고국 독일에는 친형제 한 분만 계신다고 한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모국은 신부님께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신부님은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이곳 한국에서 주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여생을 보내실 것이다. 주님의 거룩한 대리자로서 자신을 봉헌하며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이 열심히 살아가실 것이다. 평균 연령 87세 정도의 분도 노인마을 어르신들의 영적지도자로서, 아니 그들의 친한 친구로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여생을 보내실 것이다. 민공도(알로이시오) 신부님을 기억하는 모든 교우들의 많은 기도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신부님께서는 매년 맞이하시는 당신의 영명축일(6월 21일)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신단다.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는 신자들이 혹여 찾아 올까봐 설레는 마음으로 서성거리신단다. 어쩌면 노신부님의 이런 모습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어버이의 심정이 아니겠는가?
* 민공도 신부는 독일출신으로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수사신부로 현재 분도노인마을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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