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삼아 걷는 저녁 길에 바람이 꽤 쌀쌀합니다. 눈앞에 자리한 산 능선이 하얀 것으로 봐서 아직 겨울이라고 해야 할 듯합니다. 여기는 잘츠부르크입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기 때문에 캥거루는 없습니다.)의 네 번째 큰 도시입니다. 네 번째라고 하지만, 사실 시내 인구 16만의 소박한 도시입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이라는 뮤지컬 영화가 촬영된 곳이라고 하면 생각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서양 음악의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모짜르트와 20세기의 지휘자라고 하는 카라얀의 고향이고, 지금도 서양 음악으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또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성탄노래가 생겨난 동네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인갑 베네딕도 신부입니다. 이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벌써 네 번째 부활을 맞이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저는 햄버거 하나 사 먹어 보지 않은 순수 토종입니다. 치즈나 소시지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비행기 딱 두 번째 타면서 열일곱 시간 걸려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탄 경험이랬자 제주도 한 번 가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그냥 비행기 타보는 재미로 동기신부님을 유혹해서 1박 2일 동안 놀러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럽의 낯설음을 극복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더 걸린 듯합니다. 처음에는 말을 못해서 그랬고, 그 다음은 이곳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자주 속을 앓았습니다. 한 1년쯤 지나서 쓴 일기 같은데, 그때 생각을 잠시 옮겨보겠습니다.
“… 우리나라 사람은 노래를 잘 부른다. 누구라도 소주 한 잔이면 가수가 된다. 곗날에는 어김없이 뽕짝이 흘러나오고, 젊은이들은 기묘한 춤을 추며 유행가를 따라 부른다. 군대에서는 군가를 부르고, 또 ‘영자야’를 부른다. 곗날 노래가 시작되면, 누가 오신지 금방 알 수 있고, ‘영자야’를 부를 땐 군대 생활의 설움이 한 움큼씩 목구멍을 넘나든다.
이곳 사람들도 노래를 참 좋아한다. 도시 전체가 음악으로 싸여있고, 일년 내내 곳곳에서 연주회가 열린다. 어떻게 알고 가는지 희한하게도 어디든 늘 만원이다.
그런데 내게는 아직 낯설다. 길 가다가 예쁜 아이들을 보면 쓰다듬어주고 싶고, 주인과 산책 나온 개를 보면 옛날에 키우던 강아지가 생각나는데, 이들의 소리는 길가 돌멩이처럼 무심하다.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참 여러 가지로 낯설었습니다. 그 낯설음 안에서 울고 웃는 많은 경험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 낯설음을 계속 지고 살았다면, 저는 아마 네 번째 부활을 외국에서 맞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삶의 낯설음을 이겨내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좋은 만남입니다. 살아가면서 하나 둘 알게 되는 좋은 친구들입니다. 현지의 여러 신부님과 수사님,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 몇 명 되지 않지만 한 달에 한두 번 미사 드리는 한국 학생들과의 좋은 만남, 그 안에 서로를 위로하고 도와주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을 느끼고, 서로 친구가 될 때 많은 낯설음은 하나 둘씩 사라져 갔습니다. 사람은 밥만으로 살지 못하고, 사랑을 먹어야 살 수 있나봅니다.
부활에 대한 좋은 경험들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저는 짧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우리는 때로 낯선 하느님을 느낍니다. 그 낯설음을 이겨내는 방법은 하느님을 만나는 길밖에 없을 듯합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만남이고, 목숨을 건 사랑의 만남입니다. 참 고마운 만남입니다. 그 만남이 이제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랑은 사람을 살 맛 나게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사람을 진짜로 살 맛 나게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히 우리를 살 맛 나게 합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리며 잘츠부르그에서
한인갑 베네딕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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