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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세, 다시 뛰는 인생
노년에 관하여 : 키케로


조해경(스텔라)/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연구위원

노인교육을 전공하면서 얻은 가장 귀한 보물을 들라고 하면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를 서슴지 않고 꼽을 수 있다.
라틴 문학에서 최고의 작가로 키케로(기원전 106~43)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웅변가이자 정치가이고 또 문인이었던 키케로는 정치에서 물러나 은둔 생활을 하던 시기에 ‘노년에 관하여’ 를 집필하였다. 《노년에 관하여》 저술을 끝낸 시기는 기원전 44년경으로 키케로가 82세 때로 예측된다. 이 책에서 키케로는 노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역사상의 실제 인물인 대 정치가 카토(기원전 234~149)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 한다. 카토라는 팔십대의 노인이 사십 중반의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라는 두 젊은이에게 노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한 노인이 삶의 경험들을 통하여 자신의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알기 쉽게 들려준다. 

키케로는 이 책에서 노년이 불행하게 보이는 이유를 네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로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노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노년이 되면 쾌락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고, 넷째는 노년이 되면 죽음이 멀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키케로는 그러한 이유가 노년을 불행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대화식으로 조목조목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큰일은 체력이나 민첩성이나 기민성이 아니라 사려 깊음과 영향력과 판단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반박한다. 노년이 되면 이러한 특징들이 빈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부해진다. 활동의 방식과 깊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성급함은 피어나는 시기에 속하며 신중함은 늙어가는 시기에 속한다. 노년기는 신중함으로 오히려 큰일을 할 수 있는 시기이다. 키케로는 현명한 자가 노인이 되면 훌륭한 성품을 지닌 젊은이들과 어울림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하였다. 노인들은 힘은 없지만,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며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이용하여 젊은이들이 삶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둘째, 노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늙어서 허약한 것이 아니라 청년과 장년 시절에 절제하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삶의 여정은 정해져 있으며 자연의 길은 하나이며 단순하다. 인생의 각 시기에는 적절한 특징이 주어져 있다. 유년기의 연약함, 청년기의 격렬함, 중년기의 장중함, 노년기의 원숙함은 각 시기에 거두어져야만 하는 자연스러움을 지닌다. 격정적이며 무절제한 청년기가 노년에게 쇠약해진 육체를 건네준다. 또한 노인들은 고집이 세고, 불안해하고, 화를 잘 내고, 괴팍스럽다고들 하지만 이것들은 성격상의 결함이지 노년의 결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불평에 대한 책임은 각자의 성품에 있는 것이지 노년이라는 인생의 특정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몸이 허약해지면 사소한 공격도 싫은 법이며 이 모든 결점은 좋은 성품과 교육에 의해 개선될 수 있다고 하면서 젊은이들이 노인을 대하는 선입견을 바꾸도록 설득하고 있다.

셋째, 노년이 되면 쾌락을 즐길 수 없다. 쾌락의 부재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욕망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자제력이 설 자리가 없고 쾌락의 영역에서는 그곳이 어디든 미덕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살기’를 제대로 실현할 때가 바로 노년”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덧붙여, 키케로는 노년이 되면 쾌락을 즐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간에게 육체적 쾌락보다 더 치명적 질병은 없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은 인간을 맹목적으로 그리고 제어할 틈도 주지 않고 육체적 쾌락의 노예가 되도록 부추긴다. 자연이나 신이 인간에게 정신보다 더 뛰어난 것을 주지 않았으므로 이 신성한 선물에 쾌락보다 더 큰 해를 끼치는 것은 없다. 욕망이 지배하는 곳에서 절제의 여지는 사라지며 쾌락의 영역에서 덕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쾌락이 넘치거나 오래 지속되면 그것이 영혼의 빛을 소멸시킨다. 쾌락은 심사숙고를 저해하며 이성에 대해 적대적이어서 마음의 눈을 무디게 하여 덕과의 관계를 제대로 못맺게 한다. 쾌락은 악을 낚는 미끼다.(플라톤)

넷째, 노년이 되면 죽음으로부터 멀지 않다. 키케로의 논리에 따르면 노인이 죽음에 가깝고 청년이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죽음은 전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비록 그가 젊은이라 하더라도, 저녁에 자신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정도로 어리석은가?” 반문하면서 실제로는 젊은 시기가 노년보다 더 많은 죽음의 기회를 갖는다. 키케로는 노년과 죽음을 너무 가까운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리들을 나무란다. 배는 오랜 항해 뒤 마침내 항구에 들어설 수 있다. 죽음이 영혼을 이끌어 간다면 오히려 죽음은 열망되어져야 할 것이다. 자연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 노인의 경우 죽는 것만큼 자연에 따르는 것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노인은 젊은이보다 더 좋은 상황에 있다. 젊은이가 희망하는 것을 노인은 이미 이루었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오래 살기를 바란다면 노인은 이미 오래 살았으므로 노년의 결실은 앞서 이루어 놓은 좋은 것들에 대한 풍부한 기억이다.

마지막으로 키케로는 다시 한 번 당부한다.
“건강에 대해 주의를 해야만 하고,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하며, 체력을 소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축적하기 위하여 충분한 음식과 음료를 취해야만 하네. 그렇게 하는 것은 육체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정신에 더욱 도움이 되지. 육체는 운동으로 인한 피로로 무거워지지만, 마음은 연마함으로써 가벼워진다네. 젊은 날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네.”

키케로는 자신 안에 훌륭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수단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인생의 모든 시기가 힘겨운 법이라고 충고하면서 노년의 활동과 노동, 일, 그들의 업적을 칭송한다. 그리고 쾌락이 줄어들면서 번민이 줄어드는 기쁨을 즐기고 또한 준비된 마지막을 기다리는 자의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

키케로는 권면한다, 노년의 가장 적절한 무기는 덕을 갖추는 것이다. 젊음과 힘과 쾌락을 좇지 말고 덕을 실천하라고. 덕을 실천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떳떳이 맞기 위하여 또한 원숙한 노인이 되기 위해 살아가도록. 그리하면 잘 살아왔다는 믿음과 의미있는 일을 많이 행했다는 기억으로 노년이 즐거우리라는 것이다.

키케로의 노년 예찬론은 우리로 하여금 노년에 관한 희망을 갖게 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꿈꾸게 한다. 아름다운 노년, 지혜로운 노인이 되는 것은 젊은 날들과 무관하지 않으며 성공적인 노화는 개인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노년엔 거창한 잔치를 벌일 수 없으나 조촐한 주연을 즐길 수는 있다. 노년을 영예롭게 하는 것은 영향력이다. 마치 질병에 대항하는 것과 같이 노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그리하여 노년의 결점이 근면으로 메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