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이문희 대주교의 편지
초청에 대한 답장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봉곡성당 김명섭 주임신부님,

며칠 전 신부님 편지를 받고 매우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성당을 훌륭하게 짓고 모두 기뻐하며 보여주고 싶고 또 처음 아무것도 없는 곳에 본당을 내어서 이렇게 오늘을 맞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하자고 본당 신자들이 나를 초청하고자 하는 마음을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모두 참으로 큰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생은 잠시고 이루어 놓은 일을 보면 마음 가득 은혜를 받은 것 같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우리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고생스럽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가 천국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 세상의 고생은 틀림없이 하느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적어도 천당에서는 또 늦어도 천당에 가서는.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은 그래서 좋은 것입니다.

나도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마는 교구장 직을 물러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당분간은 본당 방문이나 교구의 여러 공적회합 등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구장 주교님이 계시고 또 보좌주교님도 계시니 교구 신자들은 그분들과 함께 사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가는 목자입니다. 나는 이제 대구대교구의 목자가 아니니 교구 신자들이 새로운 자기 목자를 잘 알 때까지는 얼른거리며 양떼에게 혼란을 주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교는 단지 목장을 짚고 길을 안내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구의 모든 신자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함께 하나되어 살아야 하기에 항상 교구장 주교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 신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보통으로 본당 신부가 이동이 되어도 전에 있던 곳을 잘 가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교구장은 교구 전체 어디에서도 교구장이었으니 갈 곳이 한정이 되는 듯합니다. 그런 것을 나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마는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서 돌아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번 초청은 응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초청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당 발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라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다시 말씀 드리며 서로 사랑하고 사시라고 거듭 부탁드립니다. 주님의 은총 가운데 언제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2007년 9월 20일 한국 순교 성인대축일에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 그동안 몇 곳에서 초대받은 일이 있는데 응하지 못했습니다. 일일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여 이 편지로 대신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