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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 정인용 바르톨로메오 신부
맡은 소임에 충실하게,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취재|박지현(프란체스카)·본지기자

10월 3일(수) 아침미사가 끝난 시각, 성당을 나서는 신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있는 정인용(바르톨로메오) 신부를 금호성당에서 만나보았다.

구교 집안의 4형제 가운데 막내, 자라면서 형들이 항상 사제가 되겠다는 의사를 비추었지만 정작 그 길을 걸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찾아온 성소의 뜻을 따라 사제가 되었고 그 세월이 벌써 28년을 흘렸다.
그동안 줄곧 본당 사목을 해 오는 동안 다른 형태의 사목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하지만 정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사목이란 주교님의 뜻에 따라 그저 맡은 소임에 충실할 뿐입니다.”

본당 생활을 하는 동안 참으로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신자들을 만났다는 정 신부는 “세상을 살면서 제일 좋은 것도, 제일 힘든 것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라며 “본당을 옮길 때마다 그 순간순간 적응하는 것이 참 힘든 것 같습니다.”라며 지금까지의 사목 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장성성당 건립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대잠성당을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대해성당 박병원 신부로부터 빨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달려갔더니 이문희 대주교님이 와 계시더군요. 뜻밖이었지만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나서 이 대주교님께서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장성에 성당을 하나 지어야겠는데, 정신부가 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완전히 백지 상태였고,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네.’라는 대답이 나왔지요. 아직까지도 순식간에 어떻게 그런 대답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이 대주교님께서도 그러셨지만 그것은 나의 의지가 아닌 성령의 이끄심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장성성당을 짓기로 하고 먼저 주교님께서 미리 마련해 놓으신 성당 부지를 둘러보러 가 보았지요. 하지만 도착한 그곳에는 야산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솔직히 눈 앞이 캄캄하고 막막했지요. 하지만 성당 건립은 시작되었고, 해야 할 일들은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먼저 성당을 짓기 전까지 신자들을 모아서 미사를 봉헌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사 드릴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때마침 신자 소유의 주유소 2층이 비었다는 소식에 달려갔으나 이미 계약을 맺은 터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그 일대를 걸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한 채 풀이 죽어 차를 세워둔 죽도성당으로 들어서는데 신협에 계신 형제님이 ‘신부님, 무슨 일있으십니까? 추운데 차 한잔 하고 가시지요.’하더군요. 차를 마시면서 ‘미사 드릴 곳을 구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했더니 함께 있던 형제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운영하고 있는 지하 합기도 도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했습니다. 그 순간 벅찬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해 성탄을 보내고 1월말까지 무사히 미사를 드리고 2월부터 다시 주유소 2층을 사용하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추운 겨울에 새벽 6시 미사를 시작으로 주일에 하루 6대의 미사를 드리느라 당시 보좌신부가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성당 건립은 계속 되었지만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부지를 만드는 기초 공사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덤프트럭 800대 분량의 흙을 실어 내고서야 1000여 평의 반듯한 터를 겨우 만들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비용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정성을 모아준 대잠성당 신자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성당을 완공 할 수 있었습니다. 지하 도장에서 주유소 2층을 거쳐 드디어 새 성전에서 미사 드리게 되었을때 ‘지하에서 지상을 거쳐 드디어 하늘에 이르게 되었네요.’라던 신자들의 이야기에 함께 웃었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또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리잡을 때까지 함께 고생 해준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껏 나의 사목생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고 재미있었습니다. 더불어 내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활기찬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추억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정 신부는 그때를 회상하듯 행복하게 웃으며, 때로는 힘들었던 표정으로, 때로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한참을 인터뷰 없이 혼자 이야기 하였다.

평소 미사와 관련해서 신자들에게 잔소리를 자주 하는 편이라는 정 신부는 “모든 신자들의 원천과 쟁점은 전례, 그 중에서도 ‘미사’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우리는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혜와 힘을 얻으며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막연히 사제가 되고 싶었지만 철이 들면서부터 ‘신자들과 하느님께 봉사하는 것이 사제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봉사란 자기 나름으로 하는 것이므로 나는 신자들을 위해 미사로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정 신부. 그만큼 미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매번 최대한 정성을 다하도록 노력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연 우리는 미사 참례에 얼마나 올바른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사목하고 있는 금호성당의 모습이 얼핏 보기에는 시골본당이라 마냥 조용할 것 같지만, 본당 신자들의 연령대가 높은 탓에 미사 전 쉼터를 만드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에 더 바쁜 정인용(바르톨로메오) 신부.

앞으로도 그저 맡은 소임에 충실하게,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사목생활을 이어갈 것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