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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기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황성준(다니엘)|한의사, 대구 가톨릭 한의사신우회

길이 있습니다.

이천 년을 이어온 고난과 영광의 길,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그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야고보 성인이 걸었던 길, 그리고 그 고난의 길을 함께하고 영광의 신비를 체험하고자 매년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만 명의 신자들이 기꺼이 800km의 고행을 감내하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저희 부부는 지난 여름 한 달여의 일정으로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너무 힘들어 그만 두고픈 고통의 순간들도 있었고, 아름다운 자연풍광에 푹 빠져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성지순례라는 같은 목적 때문에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외국 순례자 친구들과의 소중한 만남에, 이별의 아쉬움에 눈물 흘렸던 그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Camino de Santiago(산티아고 가는 길)’을 소개합니다.

야고보 성인과 카미노
야고보 성인은 예수님의 12사도 중의 한 분으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복음을 전하고자 두 명의 제자를 데리고 스페인으로 옵니다. 약 3년간의 선교활동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결국 헤로데왕에 의해 순교합니다. 그의 제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돌로 만든 배에 실어 바다로 띄어 보내는데, 이 배가 스페인 북서쪽 파르돈이라는 곳까지 흘러왔다고 합니다.(전설에의하면 배에는 선원도, 돛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곳에 남아 있던 제자들이 시신을 거두어 산티아고에 매장하게 됩니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어로 ‘성 야고보’를 뜻합니다.

산티아고의 정식명칭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r)’, 즉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야고보의 무덤은 한동안 잊혀졌다가 약 700년 후 양치기 목동에 의해 발견됩니다. 커다란 빛이 이끄는 데로 가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당시 무슬림과의 싸움으로 힘들어 하던 스페인에서는 이 발견을 계기로 야고보 성인을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고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까지의 성지순례를 대대적으로 권장합니다. 이때부터 유럽전역에서 산티아고로의 성지순례가 활성화 되었으며,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산티아고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199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후 점차 순례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1. 바스크 지역(생장피드포르에서 라라소나)
카미노는 여러 개의 다양한 루트가 있습니다. 심지어 유럽의 어떤 순례자들은 프랑스나 독일의 자기 집에서부터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시작합니다. 그 중 가장 전통적인 루트는 프랑스 생장피드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지역을 서쪽으로 가르는 프렌치 루트입니다. 순례 첫 날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 생장피드포르에서 순례자 등록을 하고 순례자 증명서를 발급받고 나서 걸어간 피레네 산맥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해발 1300미터의 고갯길을 뜨거운 스페인 태양 아래 8시간 동안 힘겹게 넘어 첫 번째 목적지인 론세스발레스에 도착했습니다. 론세스발레스는 규모가 큰 알베르게(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무슬림 군대를 격파했던 나바라왕 산초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colegiata), 그리고 중세의 전설과 신화들을 간직한 고딕건물들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어 시간을 거슬러 중세로 온 듯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성당 앞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순례자를 위한 식사시간에는 그날 모인 순례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식사하면서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됐음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2. 나바라 지역(팜플로나에서 아타프에르카)
‘팜플로나’는 산 페르민 축제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시내 한가운데서 광란의 소몰이축제가 특히 유명합니다.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교한 조각들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주교좌성당입니다. 성당 주제단에서는 이 지역 나바라의 왕들이 제관식을 거행하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화려했던 예전의 영화를 뒤로하고 소수의 신자들만 참례하는 미사는 쓸쓸했습니다.

‘에스텔라’ 근처에는 공짜 와인을 제공하는 이라체수도원이 유명합니다. 수도원 옆 와인공장에서 수도꼭지를 아예 길가에 만들어 놓고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마음껏 와인을 마실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카미노 전 구간에서는 이렇게 순례자들을 위하여 온갖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음식물이나 마실 것을 길가에 내놓는 집, 손수 만든 지팡이를 나눠주는 할아버지, 따뜻한 미소로 무사히 성지순례를 마치도록 기도해주시는 수녀님들 덕분에 힘든 일정 중에서도 행복했습니다.

 

3. 메세타 지역(부르고스에서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
‘부르고스’는 주교좌성당(cathedral)이 있는 큰 도시입니다. 이 도시를 지날 무렵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준비해 간 레인코트를 꺼내 입고 터벅터벅 걸으면서 목청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유행가에서 시작하여 트로트, 군가까지 동원하여 모든 곡목이 끝날 무렵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부르고스의 대성당은 정말 큰 규모를 자랑하는 카미노 중 가장 큰 세 개의 성당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알베르게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메세타 지역은 대평원지역입니다. 끝없는 목초지를 걸으며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내 지나온 과거를 떠올리며 참회하고, 주변의 가족, 친지들을 위해, 제 자신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해주신 은혜를 깨달아 주님께서 주신 소임에 소홀하지 않도록 저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십시오.”

‘레온’은 1세기경 인근의 금광을 보호하기 위해 로마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10세기경 오르도노 2세에 의해 크리스트교의 수도로 지정되었다가 무슬림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후 새로 도시가 건설되면서 더욱 크고 중요한 도시가 되어 지금은 많은 유물과 유적을 간직한 도시입니다. 대성당 안에는 정말 크고 많은 스테인드글라스가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깔의 빛들을 보여줍니다. 산 이시도라교회당(Basilica de San Isidora)에는 용서의 문이 있습니다. 아픈 순례자가 이 문을 통과하면 산티아고까지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과 똑같은 사면을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4. 코딜레라 칸타부리카 지역(아스토르가에서 오세브레이로)
‘아스토르가’에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거장 가우디의 작품이 있습니다. 1889년 주교를 위한 궁전(Palacio Episcopal)을 처음 설계했을 때 비싼 비용과 환상적인 외양 때문에 스캔들을 우려한 주교의 변덕으로 몇 차례 수정을 하면서 가우디는 무척 화가 났었나봅니다. 애드벌룬을 타고도 아스토르가를 지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오세브레이로’는 1400미터 정도의 높은 산위에 형성된 마을입니다. 가파른 오르막을 몇 시간동안 악전고투하며 오른 후 도착한 마을에서의 미사는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의 미사도 물론 소중하지만 힘든 일정 속에 느끼는 미사의 감동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습니다. 어딘가에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고통 없인 영광도 없다.”

 

5. 갈리시아 지역(트리카스텔라에서 산티아고)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면서 순례자들도 점점 많아집니다. 특히 100여 킬로미터를 남겨둔 ‘사리아’에서부터는 다양한 루트로 걸어온 순례자들과 새로이 합류한 순례자들로 알베르게와 마을이 북적입니다. 최소한 100km를 걸어야만 순례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있는 규칙 때문입니다. 산티아고 전 마지막 마을 ‘아르코 도 피노’에서는 그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카미노를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하면서 한편으로는 작별의 시간을 아쉬워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성당보다도 웅장합니다. 성당 앞 광장에서도 성당의 전체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습니다. 야고보 성인의 무덤 위에 처음 만들어졌던 성당은 수차례 증축을 거듭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지속된 전통에 따라 성당 앞 계단을 올라 현관을 들어서면 중심기둥에 손을 대고 무사히 순례를 마친 것을 감사드리고 뒤편에 위치한 건축가 마에스트로 마태오(Maestro Mateo)의 흉상머리에 머리를 세 번 부딪칩니다. 그의 지혜가 전해진다네요. 한참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후 제단 뒤쪽에 있는, 13세기에 만들었다는 야고보 성인의 좌상에 다다라서는 동상의 등을 껴안아봅니다. 예전에는 동상의 금관을 순례자 자신의 모자와 바꿔 써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서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당 내부를 둘러 본 후 다시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매일 정오에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거행됩니다. 미사 중 긴 시간동안 순례자의 국적별로 인원수를 하나하나 불러줍니다. 가슴 뿌듯한 순간이지요. 미사가 끝날 무렵 수 미터의 높은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은향료(botafumeiro)를 성당을 가로질러 흔드는 의식이 거행됩니다. 1851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의식에 사용하는 향료는 가톨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카미노가 끝났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어봅니다. “왜 이 먼 곳까지 왔느냐고, 무엇을 느꼈느냐고?” 처음의 끌림은 막연한 동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삶이 지루해졌습니다. 외면하기엔 두렵고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막연한 믿음으로 미사에 참석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찾고 싶었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 하느님이 제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순례를 마친 지금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몸이 허락하는 한계치까지 걸으면서, 삐걱거리는 침상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딱딱한 바게트 빵을 씹으며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얻었습니다. 많은 길을 보았습니다. 깜깜한 새벽길 가장 확실한 이정표는 항상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은하수였으며, 길을 잃은 허허벌판에서 마지막 믿음은 언제나 서쪽으로 지는 태양의 움직임이었습니다. 가는 길이 헷갈리고 막막할 때 하늘을 보렵니다. 거기 계신 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