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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요?
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이경수(라파엘)|용성성당 주임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평소에도 더러 연락하는 어떤 수녀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인지, 금실로 된 매듭묵주를 하나 보내주셨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썩 잘 만든 것 같지는 않았고, 더욱이 사용하기에도 실용적이지 못해 탁자 위에 그냥 던져 놓았다.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하신 다른 수녀님께서 그걸 보시더니 반가워하시며 며칠 빌려 달라신다. 이왕 소용에 닿지도 않는 것이니 그냥 가지시라고 드렸더니, 며칠 후에 사용하기도 좋도록 개선하여 여남은 개를 더 만들어 오셨다. 매듭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 남이 만든 것을 보고 금방 따라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다.

참 신기하고도 놀라워서 어느 해 중고등학생들의 피정 프로그램으로 자기 묵주를 손수 만드는 시간을 마련하여 그 수녀님을 초대하였다. 청소년들이 자기 묵주를 직접 만들면 묵주에 대한 애착도, 더불어 기도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두어 시간 정도면 방법을 익혀 만들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렇지를 못하였다. 아이들이 애살스럽지 못한 탓이라 여기고 -나중에 직접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녀님께서 거들어 아이들이 그래도 자기가 직접 만든 묵주를 가질 수 있었다.

우연히 들른 어느 본당 사무실에 눈에 확 띄는 성모상이 놓여 있었다. 조용하고 편안하여 금방 기도하고 싶게 마음을 이끌어 주는 것 같았다. 어떤 분의 작품이냐고 사무장님께 여쭈었더니, 나도 잘 아는 분이었다.
며칠 후 그 작가께서 직접 그때 본 것과 똑같은 성모상을 모시고 방문해 주셨다. 너무도 감탄하며 사랑스럽게 바라보더라는 전언을 듣고, 고맙고 반가워서 그 성모상을 모실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며, 함께 제작한 것 중 하나를 가지고 오신 것이었다.

몇 년 후 어느 시골의 본당신부로 갔을 때 성전을 건립해야 하는 다소 의외의 상황이 생겼다. 본당 자체적으로는 더 이상 성전건립기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서, 교우들이 한마음으로 성전건립의 뜻이 있고, 시간과 정성으로 노력할 마음을 모은다면 그 방법을 제공하겠노라고 하였다. 그래서 매듭묵주 수녀님을 다시 초빙하여 교우들에게 강습하고 우여곡절 끝에 아주 예쁜 묵주를 자체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성모상을 조각하신 분의 도움으로 그 성모상을 대량 제작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성전이 완공되고 난 후, 그 성전은 성모님께서 직접 지으신 것임을 의심치 않았고, 전혀 연관성이 없는 작은 일들이 어떻게 모아져서 어떤 결실을 이루었는지를 되돌아보았을 때 그 모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절감하였다. 쉽게 생각해 버리면 모든 것이 우연인 것 같다. “우연히 한 사제가 바로 그 길을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루카 10, 31)* 그러나 작은 우연들이 큰 필연을 만드는 것이다. 새해! 작은 인연도 귀하게 사랑으로 맞으시기 바랍니다. *필자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