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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성당 구룡공소를 다녀와서
경상도 신앙전파의 산실구룡공소


취재|김명숙(사비나)·본지 편집실장

아침 해가 어렴풋이 떠오를 즈음에야 구룡산 675미터 고지에 자리한 구룡공소(청도군 운문면 정상리 83)에 도착하였다. 오전 7시 30분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려는 공소 신자들은 미리 나와서 용성성당 주임신부와 수녀 일행을 기다리고 있고, 한켠에서는 미사 시작을 알리는 종을 친다. 한적하고 평화롭기만 한 산골마을에서 처음 듣는 종소리는 도시에서 들을 수 없는 색다른 감동이다.

20명 안팎의 교우들이 참석하는 공소에서의 미사. 윗대부터 대를 이어 지켜온 공소미사에는 따로 반주가 없어도 어르신들의 낭랑한 음색이 조화를 이룬다. 미사경문에 귀 기울이며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평생 하느님을 믿고 따르며 살아온 신앙인으로서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공소 자매님들이 정성껏 차린 아침밥을 한데 모여 같이 먹는다.

이어 평신도 선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공소회장은 예비신자가 있을 때면 교리를 가르치고 공소 신자들과 함께하는 복음나누기 시간도 갖는다. 이 깊은 산골 공소에 해마다 한두 명의 영세자가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공소에서의 삶 자체가 그들의 신앙이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던 거다.

5대째 신앙을 이어온 구룡공소 이재석(비오) 회장은 “구룡공소는 청도군 운문면, 경산시 용성면, 영천시 북안면과 경계한 구룡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교우 촌으로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불릴 만큼 깊은 산골.”이라며 공소의 역사에 대해 들려준다. “1815년 을해박해가 시작되면서 청송 노래산과 진보 머루산, 영양의 곧은정과 우련밭 교우촌 등지에서 살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이곳으로 피난해 옴으로써 교우 촌이 생기고 공소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공소의 최재환(방지거) 총무는 “예전에는 우리 공소에 60~70명이 넘는 신자들이 살았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다함께 모여 아침밥을 먹고 주일마다 복음나누기를 하는 것은 참으로 자랑하고 싶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스무 남짓 가구에 이르던 구룡공소에는 현재 네 가구가 남아 있고, 인근 마을 교우들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내적으로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나 외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공소 건물들. 맨 처음 초가를 얻을 요량으로 설계된 건물이었던 곳에 보수과정에서 기와를 얹어 갈무리 한 뒤로부터 건축물에 균열이 생겼다. 기둥은 이미 뒤틀리기 시작했고 몸체는 서서히 가라앉을 태세. 오랜 세월 공소를 지켜온 이들에게는 이만저만 안타까운 일이 아닐 터, 어려운 공소 현실에 비가 새는 건물을 바라보아야 하는 교우들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무엇보다 구룡공소의 신자들은 1993년 예수 부활 대축일을 잊지 못한다. 1921년 12월 20일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 안세화(드망즈) 주교가 다녀간 지 72년 만에 8대 교구장 이문희(바울로) 대주교가 공소를 방문하여 부활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였던 것. 그리고 그때 공소와 공소 부속 건물의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건물을 복원하고 성지로 개발하도록 하였다. 그뒤 1997년 구룡공소는 새롭게 복원사업을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이전에 용평본당, 하양본당, 금호본당, 자인본당 소속을 거쳐 1995년 11월 10일 용성성당 소속이 되었다.

2008년 새해를 맞으면서 용성성당 주임 이경수(라파엘) 신부는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계획 하나를 구상 중에 있다. “올여름, 구룡공소에서 언양 살티공소에 이르는 청년 도보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 본당에 하나뿐인 유서 깊은 구룡공소를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교구 설정 100주년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청년들에게 교구 역사를 바로 알게 해주려는 뜻도 포함되어 있지요.”

한편 공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은 저렴한 비용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져 있는 데다, 단체(50~60명) 피정을 위한 공간과 10명 이내의 피정 공간 등 두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샤워시설과 음식 조리가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 공소의 총무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비를 내고 제공받을 수도 있다. 1,000여 평의 야영장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공소 뒷산을 따라 한 시간 남짓 걷는 십자가의 길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순례의 길이다.

비록 문헌에 오를 순교성인을 배출한 곳은 아니지만, 순교를 향한 선조 신앙인들의 믿음 덕분이었는지 구룡공소에는 유난히 많은 사제, 수도자들이 배출되었다. 그들의 얼이 살아 있기에 구룡공소는 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경상도 지역 신앙전파의 산실로 오래토록 우리 기억에 살아 숨 쉴 것이다.

피정문의 : 공소회장 (053) 851·1591 / 공소총무 (054) 371·3606
공소에 도움 주실 분 : 우체국 701896 - 01 - 000283 용성천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