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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아침 공기가 쌀쌀하던 2월의 첫째 주일, 금호성당 신광공소(경북 영천시 대창면 신광리 819)를 찾았다. 금호성당에 속해 있지만 영천에 자리하고 있는 신광공소는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로,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마을에 자리하고 있었다.
공소의 성당은 참으로 소박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다 삐걱이는 나무 마룻바닥에 그 흔한 오르간 한 대 없다. 아직 미사시간이 남았지만 곧 있으면 모일 신자들에게 찬 기운이 그대로 전해질까 공소회장은 진작부터 나와서 난로를 켜둔다. 9시, 미사시간이 다가오자 신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매주일 주님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지만 한 달에 세 번은 이렇게 신자들끼리 공소예절로, 둘째 주에는 금호성당 주임 정인용(바르톨로메오) 신부가 와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는 곽흥수(요한)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봉헌되는 공소예절에는 사제도, 수녀도 없지만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공소예절이 끝나고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구달준(타대오) 전임 공소회장이 신광공소의 역사에 대해 들려준다. “1880년쯤 처음 생긴 우리 공소는 박해시대인 당시 포졸들을 피해 옹기골에서 옹기를 만들며 생계를 유지했다는데, 그 힘든 시간을 견디어 지금 이 자리로 옮겨온 것은 40년 정도 된 것 같다.”며 “그 당시 서정길 대주교님께서 오셔서 축성식을 해 주셨다.”면서 잠시 추억에 젖는다.(현재 성당 안 제대는 박해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한쪽으로 사람이 들어가 숨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찾아 마을을 떠나버린 탓에 이제는 매주 30~40여 명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지만 신광공소는 함께하는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금호성당 정인용 신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도와 더불어 곽흥수 공소회장의 열의와 정성도 한몫 하고 있었다. 2004년 퇴직 후 고향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곽 회장은 앞으로 공소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매일매일 공소일지를 작성하고 있으며, 본명 부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시골 마을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우리는 신앙인이므로 서로의 세례명을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다.”는 곽 회장은 신광공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꼭 상대방의 세례명을 불러야 한단다. 이 운동을 통해 그동안 ‘○○댁’이라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잊고 살았던 할머니들이 아주 좋아하시며, 서로 간의 관계 또한 더욱 돈독해짐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얼마 전부터 시작한 소공동체와 반모임이 신자들이 단합하는 계기가 되어 아주 좋다는 임영규(미카엘) 구역장은 “복음 나누기를 할 때 조용한 가운데 집중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분위기가 좋다.”면서 “아직 조금 생소해 하는 사람들도 앞으로 모두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하였다.
여느 공소들이 그러하듯 매주 신자들이 내는 봉헌금으로 살아가는 신광공소 또한 살림이 그리 넉넉치는 않다. 그런 신광공소에 작년 12월 15일에 금호성당 정인용 신부와 신자들, 신광공소 신자들의 정성을 모아 50여 명은 거뜬히 수용할 수 있는 피정의 집을 어렵게 완공하였다. 피정의 집을 통해 공소 형편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란다면서도 “그냥 와서 편히 지내다가 깨끗히 청소 해주고 전기세 정도만 봉헌하고 가면 된다.”는 신광공소 신자들의 따뜻한 마음처럼 앞으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피정문의 : 공소회장 016·515·8613 / 공소총무 (054) 338·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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