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두새벽 추위를 뚫고 도착한 영천시에서 또다시 차를 타고 20여 분을 더 달려 드디어 북안공소에 도착했다. 8시 10분, 9시 주일미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소에는 신자들이 모여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널찍했던 공소 안은 기도의 열기로 가득찼고, 너도나도 그 행렬에 동참하는 신자들로 빼꼭히 들어찼다.
영천성당(주임 : 이상락 신부)에 소속된 북안공소의 옛이름은 송포공소이다. 지리적인 요건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북안면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북안공소’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이 2004년 12월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천주교를 믿으면 배고픔을 잊을 수 있다는 찬양의 말에 몇몇 마을 청년들이 의기투합하여 당시 본당 주임사제였던 강찬형(파스칼) 신부를 찾아가 천주님을 믿겠다는 말이 계기가 되어 신앙의 싹이 움텄던 이곳. 그후 선교사가 파견되었고 신자가 늘어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신자가 120-130명을 헤아렸지만 공소를 맡아 오던 선교사가 건강악화로 떠나게 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냉담하는 신자가 점차 늘어났고 청년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떠나가면서 그 만큼 공소 신자들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은 작은 공동체가 지친 마음을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며, 일상에 파묻어둔 주님을 거듭 확인하는 장소였고, 이웃끼리 만나 서로의 생활을 나누는 모두의 보금자리였다.
최해암(북안공소 제2대 회장, 모이세) 회장은 “조상이 물려준 공소를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분위기 때문에 어르신들께서 좋아하신다.”며 공소의 신자들은 이미 신앙 안에서 모두 한가족이 된 지 오래이다. 현재 공소에 적을 둔 세대는 약 28가정. 60여 명 정도가 미사나 예절에 참례한다. 미사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2006년 5월부터 은퇴사제인 장태식(리노) 신부님이 오셔서 함께 드리고, 그럴 수 없을 때는 공소예절을 올린다. 그렇지만 판공이나 공소 행사가 있을때면 본당 주임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해오고 있다.
이곳 교우 대부분은 90세 어르신부터 40대의 신자들로 구성원의 나이 또한 다양하다. 공소의 이것 저것, 작은 일까지도 보살피는 공소의 살림꾼 배순남(율리안나, 총무) 자매는 “일이 있으면 본당에도 가지만 가급적이면 미사는 꼭 여기서 봉헌한다.”고 이야기를 꺼내자 공소회장으로 15년을 봉사한 유도식(사도요한) 형제는 “예나 지금이나 공소 신자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며 “우리는 모두 그분 안에서 하나로 맺어진 가족이기에 미사 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더 기다려진다.”고 덧붙이는 그를 향해 최해암 회장은 “미사 전 시작기도를 선창하거나 성당이나 공소에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며 누구보다도 공소 일에 열성적.”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최해암 회장은 “든든한 전 공소 회장님들이 계시고, 어르신들이 계시고 또 누구도 먼저 ‘이것해라, 저것해라.’하는 이웃없이 알아서 척척해나가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북안공소 신자들에 대해 자랑한다.
영천성당에 속한 다른 세 개 공소와 매년마다 친목회를 열어 선조들이 물려준 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공소간의 유대를 지키며 또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정을 나누는 일상에 주어진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북안공소. 공소가 있기에, 공소에 모인 - 때로 상처를 주고 받더라도 서로를 열어보인 - 이웃들이 있기에, 나를 내신 하느님, 내 고난과 함께 하시며 내 일상을 토닥이시는 하느님을 알기에 북안공소 신자들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 피정문의 : 최해암 공소 회장 011-9580-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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