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저를 이 자리에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어릴 적 여학교를 다닐 때 천주교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때 수녀님께서 교리공부를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지금도 그 내용들이 기억납니다.
저는 결혼하여 불교 집안으로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 충북 청주에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처음으로 레지오 마리애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활동은 주로 청주 의료원 병원봉사를 했고 환자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이 돌아가시면, 그 시신을 염하는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신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얼어붙고 겸허한 마음이 들고 미래의 내가 죽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활동을 수년간 계속하면서 봉사란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대구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계신 시댁 어르신 두 분이 암에 걸리셔서 여러 해 동안 병수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성껏 수발을 하던 중에 시어머님께서 천주교를 믿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원에 계실 때 정 미카엘라 수녀님께서 오셔서 대세를 주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 대세를 받으시니까 시아버님께서도 대세를 받으셨습니다. 그 이후에 보례를 받으시고 영세를 하셨습니다. 일 년 정도 병원생활을 하시다가, 두 분 다 돌아가시고 김천 평화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렸습니다.
집안의 큰일을 다 치르고, 다시 경산성당에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계속하였는데, 냉담자 권면, 혼인 조당자 권면, 전입교우 방문, 장애자 시설 방문, 레지오 확장 등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레지오 확장은 지금까지 ‘성실하신 정녀’ ‘거룩하신 어머니’ ‘동정녀들의 모후’ ‘순결하신 모후’의 네 개 Pr.을 분단시키는데 일조하였습니다.
그 이후 4년 전에 이성억 타대오 신부님을 만나서 성령세미나를 받았는데, 그 때부터 선교열에 불타오르기 시작하여 선교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인들을 만나면 입교가 잘 이루어지고 그분들은 저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왜 이리 예비신자 입교가 잘 되는지 2년 동안은 이유를 몰랐습니다. 저에게 전교의 은사가 있는지 그런 것은 관심도 없었는데, 다만 활동대상자들이 저를 아름답고 예쁘게 보아주시고 향기가 난다고 하며 좋아들 했습니다. 지금까지 75명을 영세시켰는데, 4년 동안의 결과입니다.
3년 전의 일입니다. 어느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처음 보는 환자가족을 만났습니다. 아이가 장애자이고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는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위로를 해드리고 별다른 말은 못하고 ‘천주교를 알려 드립니다’ 책자만 드리고 왔습니다. 저는 집에서 주님께 기도를 하면서 그 집 식구들을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편 116장에 있는 ‘외교인들을 위한 기도’를 날마다 바쳤으며 생미사로 미사지향을 담아 계속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103위 순교성인들에게 제가 봉헌한 외인들의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을 주님 대전에 전달해 달라고 중재기도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9일 기도, 54일 기도를 365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쳤습니다. 그 자매를 가슴에 품고, 자나 깨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매가 미사에 처음으로 참례했을 때는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그 자매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 그 자매님은 교리반에 100% 출석하고 시험도 100점을 맞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 순간 제 가슴이 다 두근두근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그 자매님의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대세를 받고 임종 하셨습니다. 이성억 신부님께서 병원으로 연도를 와주셨습니다. 본당에서 사도예절을 하고 장지로 떠났습니다. 참으로 영혼 구원이 되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사례는 저희 집안과 이웃에 있는 자매님에 대한 선교사례이고 다음은 냉담자 사례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작년 10월 중순에 중방성당 교우로부터 한 자매님을 소개받았습니다. 이분은 10년 동안 냉담하고 계신 냉담교우인데 세례를 받고 두 달 후에 사기를 당해서 집안이 다 망하는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성당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작년 겨울에 이 자매님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이틀 후에 오셔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성당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연락이 없어서 전화를 하니까 남편이 갑자기 많이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 다음 날 전화를 하니 서울 삼성병원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혈액 암으로 판정되어 항암치료 중이라고 했습니다. 10년을 쉬고 주님의 집으로 오기가 이렇게 힘드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기도와 생미사를 봉헌하고 3개월 동안 전화로 자주 대화하고 위로를 했습니다. 병에 차도가 없고 피를 수혈하면 계속 없어진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희망을 가지라는 위로의 말과 기도로밖에 도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3개월 후에 형제님은 병원에 계시고 자매님은 잠깐 내려오셔서 본당 주임이신 정홍규 신부님으로부터 10년 만에 성사를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 친절하게 자매님을 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자매님의 남편도 경산성당에 두 번 오셨다가 다시 서울 병원으로 돌아가실 정도로 병이 조금씩 호전되고 있습니다. 냉담자들도 적절한 관심을 보이면 성당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인내를 가지고 돌보면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 조금씩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활동 중에 저에게 상당한 희생과 극심한 육체적 고통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겪고 난 후 주님께 제 원의를 겸손하게 말씀드리면 뜻이 잘 이루어졌습니다. 고통을 겸한 기도는 하느님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거든 먼저 하느님 뜻에 맞는 기도인지 생각해보고, 그 다음으로 희생 없이 그저 입으로만 드리는 기도가 아닌지 생각해 보십시오.
선교는 우리 신자들에 있어서 지상 최대의 과제입니다. 우리 모두 선교에 힘쓰도록 마음을 모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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