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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성당 부계공소를 찾아서
신앙의 힘으로 함께하는 부계공소


취재|박지현(프란체스카)·본지기자

코끝을 스치는 봄바람을 느낄 틈도 없이 다가온 이른 더위의 어느 주일, 경북 군위군 부계면 창평리 85번지 자리하고 있는 부계공소를 찾아갔다.

이 날은 매달 두 번 있는 미사가 봉헌되는 날, 벌써 도착한 공소회장 부부는 신자들이 도착하기 전 공소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분주하다. 잠시 틈을 내어 기자와 마주 앉은 심재우(요한) 공소회장은 “부계공소의 시작에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지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계공소에 대해서는 저보다 신희조 할머니에게 여쭤봐야 합니다. 그분이야말로 부계공소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지요.” 그때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으며 공소를 들어서는 신희조(요안나, 87세) 할머니. 할머니와 공소의 인연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이곳 부계에 선산을 마련하게 된 신희조 할머니는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딸을 수녀원에 보낼 만큼 할머니의 신앙은 깊었지만, 이곳에는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수녀님인 친구가 몇 명 있었어요. 경주와 왜관에서 정년을 맞은 수녀 친구들이 황무지 같은 부계에 전교를 하자고 했지요. 그 뜻을 모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수녀님과 이곳 부계에서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알리기 시작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주변에 절과 교회가 많았던 탓에 가톨릭을 알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요안나 할머니는 말을 잇는다. “우선 수녀님과 함께 마을에 있는 집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절과 교회에 나가지 않는 사람부터 찾아보았어요. 그렇게 힘들게 모은 이들을 중심으로 교리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지요.” 하지만 막상 교리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니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이에 할머니는 당시 살고 있던 한옥을 교리공부 할 장소로 선뜻 내어놓았다. 그날부터 할머니의 집은 부계 공소의 시작이 되었고, 할머니는 신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부계 공소를 이끌어갔다.

어렵사리 시작된 교리 수업을 통해 이듬해 공소에서의 첫 세례식이 이루어졌다. 세례식을 시작으로 차츰 신자들도 늘어가면서 부계공소는 그 존재를 알리며 서서히 자리 잡게 되었다. 새로운 첫 걸음을 시작하는 만큼 마을 전체가 신앙적으로 가장 활발하던 그때를 떠올리며 김영자(루시아) 할머니는 “왜관 수도회 수사님과 안나의 집 수녀님 다섯 분이 수시로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고, 큰 행사가 있을 때면 주교님과 신부님이 오셔서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주셨지요.”라며 잠시 추억에 젖는다.

불규칙적인 미사 봉헌에도 신자들은 신앙에 대한 믿음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1년 후, 한옥의 앞마당에 공소를 새로 짓게 되었다. 그렇게  제대로 된 공소를 마련하는 기쁨과 더불어 그때부터 군위성당에 부임하는 사제가 부계공소에서 정기적인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신희조 할머니와 신자들의 많은 추억이 담긴 그곳을 정리하고 현재의 자리에 공소를 마련한 지 10여 년째, 그동안 많은 이들이 마을을 떠나가고, 세상을 떠나가서 이제 15명 정도의 신자들이 공소를 지키고 있다.

군위성당 주임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최호철(안토니오) 신부는 이날도 어김없이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부계공소를 찾았다. 미사 시작 전에 만난 최호철 신부는 “둘째, 넷째 주일에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신자들 대부분이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하고, 교통편이 힘들어 미사 참례에 어려움이 많다.”며 “무엇보다 노후된 공소 건물의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공소 사정으로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많이 염려하였다.

공소 2층에 마련된 성당에서 소박한 미사를 봉헌하고 신자들이 공소 예절을 하는 1층 방에 함께 모여 앉았다. 일중일 동안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이 시간은 미사 참례만큼이나 그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공소회장 내외가 준비한 간단한 간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여념 없는 신자들. 그 가운데 박만선(데레사) 할머니는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니깐 너무 좋다.”면서 “하느님께 감사한다. 감사로 살아간다. 무엇보다 공소회장 부부가 너무 잘해 준다.”며 연신 고마운 마음을 나타내었다.

대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부계로 삶의 터전을 옮겨 와 공소 회장의 안주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박영숙(소화 데레사) 씨. 무엇보다 신자들이 한번 모이기 쉽지 않음에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신자들의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떨어져 있고, 걸어서는 공소에 올 수수 힘들 정도로 먼 곳에 사는 이들이 있어 주일 미사 참례에 어려움이 많다.”며 “한 달에 두 번은 공소예절로 이루어지지만 두 번은 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해 주시니 신자들이 주일 미사에는 꼭 참례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고 말한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미사 외에 모임 활동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나마 5년 전에는 박영숙 씨가 레지오 단장을 맡아서 모임을 가지며 군위성당에서 회합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몇 년간 그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그마저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그러나 신자들 간의 화합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영숙 씨는 “레지오 간부가 형성되면 언제라도 레지오 활동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신자들의 화합과 함께 박영숙 씨는 공소 신자들에게 ‘교리’ 에 대해 알려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녀는 “공소 신자들 대부분이 아주 오래 전에 세례를 받은 탓에 주일 미사에 대한 중요성이나 신자로서 꼭 지켜야 할 십계명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약해요.”라며 “신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지난 해 10월에 교리교사 교육을 받았어요. 앞으로 간단한 교리에 대해 신자들에게 꾸준히 알려줄 생각입니다.”라며 알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부계공소는 매주 신자들이 봉헌하는 만 원 남짓한 주일 헌금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앞으로 계획 중인 다양한 모임 활동과 교리 공부를 위해서는 이곳저곳 비가 새는 공소 건물을 보수해야 하지만 시작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근처에 공사 중인 터널이 완공되면 대구와 이동시간이 단축되어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러면 자연스레 신자가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그 또한 장담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기에 공소 발전을 위하여, 신자가 많이 늘어나길 열심히 기도할 뿐이지요.”라는 김영자(루시아) 할머니의 말처럼 앞으로 부계공소에 신자들이 많아져서 경제적으로, 신앙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