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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논단 - 생명윤리법 개정에 대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개정은 명백한 개악이다!


이창영(바오로)|신부, 가톨릭신문 사장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연말이면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이는 지난 2005년 1월 1일 발효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첫 개정이다.

입법되면서부터, 아니 이미 그 이전 수년 동안의 입법 과정에서부터 수없이 많은 논란의 대상이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이 생명윤리법은 이번 개정 그전부터 사실상 ‘생명윤리법’이 아니라, ‘생명공학육성법’의 혐의가 짙었다. 그 때문에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종교계와 인간 생명의 존엄성 파괴와 여성 인권 침해에 주목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생명윤리법이라는 명칭이 부끄러울 정도로 독소 조항을 광범위하게 담고 있던 법률은 이제 개악의 과정을 통해 더욱 심화된 반생명적인 요소들을 강화한 것이다. 그 심각성에 주목한 한국 천주교회가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안명옥 주교가 발표한 “개악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며…”라는 제목의 이 성명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이번 개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는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를 더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개정 전 법률에서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던 체세포 복제 배아 연구의 허용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걸음 더 나아가 불임치료 및 희귀,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로만 제한했던 연구 범위를 일반적인 질병 치료와 줄기세포의 특성 및 분화에 관한 기초연구로 대폭 확대해 버렸다.

주교회의 성명서는 이와 관련해 매우 강경한 어조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정부와 입법기관이 인간 생명을 단순한 생물학적 재료로 전락시키려는 시도를 입법화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고 우려할 만한 사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문제는 결과적으로 난자 매매를 합법화 해버렸다는 것이다. 개정법은 난자 제공자에 대한 건강 검진, 난자 채취 빈도의 제한 등을 규정한 세 개 항을 이른바 실비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난자를 기증한 여성에게 금전적인 보상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명문화함으로써 결국 여성의 난자를 매매가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러한 실비 보상은 주교회의 성명서에서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대로 “실험 또는 연구를 위해 난자의 확보를 용이하게 하자는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며 “이제 국가가 나서서 난자 매매를 부추기는 형국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희대의 사기극으로 드러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건에서도 금전 지급이 이뤄진 100여 개의 난자 기증과 관련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실비 보상 명목의 현금 지급 역시 ‘난자 매매’이고, 이는 윤리규정을 어긴 것으로 평가하고 2년 여의 심의 끝에 연구용 난자 기증 금지를 의결한 바 있다.
비록 관계 부처는 이러한 실비 제공이 난자 매매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공허한 다짐을 하지만, 사안의 본질상 실비 보상은 결국 난자 매매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며, 결국 생명윤리를 논하기에 앞서 여성과 약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야기하고 말 것이다.

내용상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문제점에 주목하는 동시에, 생명윤리법이 개정된 그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도 우리는 깊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생명윤리법의 제정 과정에서 나타난 졸속성과 심사숙고의 결여가 이번 개정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우리는 도무지 우리 정부와 국회가 생명 수호의 가장 기본적인 의지라도 갖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해 개정된 법률안은 지난 2월 26일 법제사법위원회에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상정된 것이다. 이후 5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임시국회에서 통과됐다.
문제는 이 법률안이 보건복지부를 주무부서로 공청회와 국가생명윤리 심의위원회 등을 거쳐 내놓은 개정안과 박재완 국회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한 개정안을 하나로 졸속적으로 통합한 것이라는데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두 개정안을 하나로 묶어 위원회 별도 대안법률안으로 제안,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강조한 난자 기증 금지 조항이 빠지고, 난자 제공에 대한 실비 보상 등 세 개 항목이 추가됐다.

똑같은 현상이 이미 생명윤리법 제정 당시에도 나타난 바 있다. 2004년 법 제정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법률 안은 과학기술부 안, 보건복지부 안, 천주교 안, 정부 안 등 네 가지가 제출됐고, 국회 보건복지위는 당시에도 이 안들을 졸속적으로 통합해 본회의에 제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명윤리법은 점점 더 생명의 존엄성 수호라는 애초의 취지에서 멀어졌던 것이다.

주교회의 성명서는 개정의 졸속성을 염두에 두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고 침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률안은 아무런 토론도 없이 통과시켜 버린 국회”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 아울러 이 법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이 과연 “법안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고서 통과에 찬성했는지”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만약 국회에서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이의를 제기했다면 토론이 가능했었을 것이라는 한 교회 생명윤리 전문가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천주교 신자 국회의원들 중 단 한 사람조차도 이 극악한 법률 개악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거의 좌절감까지 느끼게 된다.

대개 인간은 역사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교훈을 얻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특히 국가의 정책과 법률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정부와 국회가 지난 수 년 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던 생명과학과 생명윤리의 체험들로부터 전혀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국가가 인간 생명의 수호에 아무런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가슴 아픈 비극이다.

이번 개악은 분명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분명 또 다른 더욱 심화된 개악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추후에는 또 어떤 반생명적인 조항을 생명윤리법에 삽입하려 시도할지 모른다. 인간 생명의 수호와 생명의 문화 건설은 단지 종교적 가르침에만 근거를 두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며, 우리 모두는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은 그것이 단지 그리스도교 교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명의 존엄과 가치의 수호는 자연법적인 소명이며, 생명권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가장 소중히 수호해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