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0년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여름 산간학교를 잊을 수 없다. 30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이 원초적 추억은 오늘의 사제적 삶을 만들어가는 원형이 된다. 추억은 미래를 만든다. 여름 사목이야말로 추억의 메이커이며 특히 어린 시절 여름 주일학교 체험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 3박 4일 동안 산간벽지의 분교에서 이루어졌던 자연체험과 공동체 체험은 끊임없이 나에게 속삭였다. 이 기억이 오늘날 내가 폐교를 임대하여 경북 영천 오산에 자연학교(2003년 11월)를 만들게 되었고, 생태주의를 기초로 한 초중등 통합대안학교(2007년 3월)를 만들게 된 것이다. 또한 내년에는 자연중심의 도시형 대안학교도 만들 예정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오늘의 체험이 내일의 기억을 만들어 주는 것이 ‘본당의 여름나기’라고 생각한다.
불과 30년 만에 우리는 광우병과 AI, 구제역과 유전자 조작식품, 식량위기와 에너지 위기 그리고 지구온난화라는 시한폭탄 앞에 놓여있다. 30년 전 우리의 산간학교에서는 산위에서 내려오는 물로 밥을 지어 먹었다. 그 당시의 삶은 무공해, 유기적 삶이었다. 친구들 중에는 아토피로 고통 받는 아이도 없었고,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도 없었다. 게임기나 컴퓨터 그리고 휴대폰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생태 비전처럼 우리는 30년 전 여름 산간학교에서 ‘평화 생태학’을 누리고 있었다. 야한 동영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문화적 자폐증 시대에 자연의 동영상이야말로 우리의 양식이며 쉼(shabbat)이고 영적 목욕이다. 특히 본당의 여름나기 프로그램은 경쟁과 획일만을 앞세운 현 교육을 극복하고 자신이 사는 사회와 자연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평화 체험을 통해 그들이 미래의 참된 주인으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북한은 식량위기로, 미얀마는 사이클론으로, 중국은 쓰완성의 대규모 지진으로 온 지구촌이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표징 속에 개인 구원주의식 웰빙 주의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태 비전인 ‘창조주와의 평화 피조물과의 평화’를 파괴하는 여름나기는 생태 정의에 맞지 않다. 그래서 2008년 본당의 여름나기는 평화 생태학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산지여정을 통한 생산자와의 만남 그리고 산지 유기농과 강(江)의 만남 그리고 토마스 베리 신부님의 우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는 말씀대로 산지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농업과 농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를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주의 기도는 밥이 중심축에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도 하느님과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우주적인 사건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2003)에서 영성체야말로 우주적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산지는 성지이며 영성체의 모태이며 우주적이다. 또한 유기농 성지를 지키려는 농민들이야말로 지구 성인이며 생태적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나는 1990년부터 안동 생명 공동체와 더불어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만남을 가지며, 지금도 소비자는 생산자의 삶을, 생산자는 소비자의 밥상을 책임지는 연대를 다지고 있다. 1990년에 시작한 푸른 평화는 안동 생명 공동체와 연대하여 현재 도시 소비자 생활공동체가 대구·경북지역 7군데에 이르게 되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자신이 먹는 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유전자 조작식품이 어떻게 밥상까지 유통되고 둔갑되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여 사회적 책임감과 지구적 책임감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유기농 생산자들과의 만남과 체험을 통해 우리 농업이 처해 있는 현실과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조건, 대지 그리고 실제적인 삶, 우리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또한 경북 북부 지방(상주, 문경, 예천)의 낙동강의 순례를 통해 지역의 아름다움과 ‘낙동강’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한반도의 젖줄인 낙동강의 영적·사회적 환경, 미학과 생태적 환경, 문화적 환경에 대하여 자신의 언어로 기록하고 증언하여 역사의 증인이 되게 한다. 그리고 강을 통해 식수뿐만 아니라 세례수, 즉 물의 성사적·재생적 의미까지 배운다.
프로그램 전체를 주입식이 아닌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잡아간다. 3박 4일의 식사는 절대 채식(창세 1,29)을 원칙으로 하고 간식이나 과일도 유기농으로 한다. 화장지, 치약이나 세제사용도 친환경적인 생활자재를 이용한다. 地産地消, 즉 안동 생명공동체의 먹을거리 사용을 하고 food mile을 짧게 잡는다. 각 본당의 여름나기는 이러한 유기농 생활자재로 풀어가야 된다고 본다. 그 다음은 영성적 심화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희망이다. 작년에 나는 유치원 아이들의 여름 산간학교를 황매산 유기농 마을로 보냈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을 다시 자연으로 연결하였다. 종교(religion)는 그 어원처럼 다시 이어주고 연결하는 것(religare)이다. 나는 어떤 조기교육보다도 자연에 대한 조기교육이 영육간 건강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현재 경북 영천 산 자연학교 기숙사에서 초등아이들이 생활하는 이유도 바로 그러하다. 저출산이 대세인 우리 현실에서 유아들이 자연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평생 선교이며 아이들의 부모를 창조영성에 연결할 수 있는 고리이다. 자연학교는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둥지이며 하느님의 창조를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교리교육이다. 지금 세대는 자연보다 게임에 더 친숙하기에 전자파로 과부화 된 아이들의 뇌는 우리하고 다르다. 금성에서 온 양식, 화성에서 온 농사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랩에서 포장돼 나오는 양식과 유전자가 조작된 음식을 먹는 시대에 이르렀다.
산지여정이야말로 생명교육이며 자연지능을 학습할 수 있는 성지이며 살아있는 밥의 모태이다. 맨발로 땅을 밟고, 내가 마시는 식수인 낙동강을 순례하는 순간에 땅과 강이 단순히 경제적 도구가 아니라, 모든 뭇 생명의 처소이며 우리의 영혼의 피와 살임을 알게 될 것이다. 산지의 생산자는 모든 존재들의 공의회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물과 땅, 동물과 바람, 풀과 나무의 고통을 말하는 사제이며 예언자이다.
우리 아이들을 흔히 엄지족이라고 한다. 이러한 엄지족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만들기이다. 생활면에서 볼 때 아이들은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삽질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통해 대나무 식기 만들기, 자신의 옷 황토 염색해 보기, 면 생리대 만들기, 자전거 타고 가보기 등을 할 것이다.
끝으로 세상을 분자를 담은 커다란 그릇으로 본다면 자연의 신성함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1948년 몬테소리 여사가 제안한 대로 우주교육이다. 우주교육을 통해 자연의 신비를 느끼고, 자신의 마음 안에 내재된 그리고 자연의 영적인 측면을 재발견(re+spectare)하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그것이 우리가 천문대를 가며, 토마스 베리 신부님의 우주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이다. 또한 이것을 심화시키도록 130억 년의 우주 진화의 과정을 묵상하는 우주 걷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에서 하는 영적 목욕 예식, 걷기 명상, 109배 하기와 사방기도는 몸과 영혼 그리고 우주의 진화를 통합하는 멋진 레시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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