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청소년 시절. 돈이면 뭐든지 부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환상에 빠져 강도라는 큰 범행을 저지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나. 그런 나를 늘 지켜보던 하늘은 절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1997년 1월에 구속되어 재판과정에서 판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피고 전종석 외 세 명 모두 사형과 무기징역을 주어야 마땅하나, 지금껏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기에 피고 전종석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만 알았고 나의 편은 아무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늘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수용생활에 임해 왔었다. 그 후 가면 갈수록 점점 더 험악해지는 내 자신을 나조차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인지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으며 늘 혼자에 익숙해져버린 내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그리워지기 시작하였다. 또 내가 죄를 저지르고 그 대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내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였고, 수감자들과 동고동락을 하며 늘 반복된 생활을 하다 보니 역시 사람은 혼자서는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 갈 수 없는, 그래서 사람을 두고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난 과거의 죄를 매일같이 반성하며 언제나 피해자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이 못난 자식을 걱정하시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죄인의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부모님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8년 이후에는 양복 기능사, 전자기기 기능사, 전자계산기 기능사, 보일러시공, 워드프로세서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며, 토익 시험에까지 응시하게 된 나는 현재 학과교육생으로서 과거에 마치지 못한 고입과정의 예비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였다. 그리고 2005년 4월 5일 전라도 광주에서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어, 그 결과 지난 시간 나의 노력이 지금의 합격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렇게 큰 영광을 누리게 된 계기에는 바로 나의 스승이 계셨기에 가능하였다.
학창 시절 언제나 공부에는 뒷전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만 좋아하던 내가 아니었던가.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시느라 늘 바쁘신 입장이심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못난 이 제자에게 편지와 책 등을 선물로까지 보내 주시며 힘들게 면회까지 와 주셨던 나의 선생님. 짧은 면회시간이 끝나자 옆에 계신 교도관님께 “선생님, 우리 종석이 좀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시며 머리를 숙이시고 되돌아 가신 선생님. 그 후 난 항상 내 자신보다 그 선생님께 보답하고자 뒤늦은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덧 이곳 생활이 8년 3개월째 접어들자 나는 모범수용자로서 6박 7일간의 귀휴를 허가 받게 되었다. 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마치 어린 소년이 된 듯한 기분이었고, 이 설레는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표현조차 할 수가 없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던가! 많이도 변해버린 나의 고향 울산. 내가 나이를 먹는 것처럼 마치 이 세상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은 듯하였고 그런 세상이 난 그리웠다.
집에 도착하여 방문을 열자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 기분. 내 자신이 잠시 멍해지는 순간, 난 아직도 내가 수용자 신분이라는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인심도 험악하고 자기 자신조차도 믿기 어려운 세상이자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그렇지만 자유가 있기에 행복한 곳이며 본인의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라는 것을 난 짧은 시간에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시간에 선생님을 찾아뵙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자 반가움의 목소리로 만남을 요청하시는 선생님. 술잔을 건네주시며 “종석아, 그동안 정말 고생이 많았다. 네가 이렇게 휴가를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모범이 되었는지 알만 하구나.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용생활 잘 마무리 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 사회에 복귀해라. 그리고 또다시 이 선생님을 찾으면 근사하게 한 턱 사마! 또 네가 명심해야 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말이다. 종석이 너 뒤에는 항상 이 선생님이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라는 말이야.”라고 말씀해 주시던 그 말씀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니 잊을 수 없다. 나의 휴가 소식에 귀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 선생님, 레지오 회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못난 제자를 위해 달려와 주신 선생님. 바쁘신 중에도 짧은 편지와 함께 선물로 보내주신 소중한 책 한 권. 이러한 선생님이 계시기에 우리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한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고향 동생의 부모님과 함께 그가 있는 대구로 면회를 가는 과정에서 그의 부모님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이 사회와 격리된 곳에서 생활을 하자, 그 후 절대 사적인 일 외에는 외출조차도 하지 않으신다는 그의 아버지 ‘안드레아’그리고 매일같이 아들의 빈 방을 들여다보신다는 그의 어머니 ‘비르짓다.’ 마치 나를 그분의 아들처럼 지난 나의 과거를 이해해 주시며 나에게서 당신의 아들을 보시는 듯하였다. 이것이 이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평생을 다 주어도 모자란다 하시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환갑이 되어도 부모에겐 어린아이로만 보이고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자식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일생을 사시는 분들이 바로 부모일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연락처가 엇갈리는 바람에 오랜 기간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던 잊지 못할 신부님과의 우연한 만남, 휴가 기간동안 반갑게 대해 주셨던 이모 그리고 수녀님, 모?천?수(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모현 호스피스에 모인 천사들)자매님, 교무님 등 여러 지인들과의 짧은 전화통화와 초등학교 시절 여러 동창들과의 짧은 통화와 만남.
늘 나의 소식을 궁금해 하던 동창들은 뜻밖의 연락에 반가워하였고,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난 더 이상 지난 나의 과거를 속일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는 비밀은 없다고 생각을 하였고, 또 거짓으로 나를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친구들은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지금 우리의 만남이 더 중요한 것이지,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가 아니겠냐, 하며 격려를 해주었다. “종석이 넌 요즘 뭐하고 지내?”라는 물음에 “으응~ 어~ 글쎄, 내 위치가 지금 너무 부끄러워 너희들에게 말을 하기가 좀 곤란하구나. 나중에 차차 말해 줄게.” “됐어. 그럼 더 이상 묻지 않을게. 이렇게 만난 게 어딘데.”라며 지난 학창 시절 어린 소년소녀의 이야기들로 자연스럽게 말을 돌려 준 친구 은미.
현재와 과거 모두를 앞당기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지만 나에겐 정말 불행 가운데 행복한 과거가 있었고, 앞으로는 더더욱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8년 3개월만의 귀휴소식을 듣고 가장 좋아 하셨던 분들은 바로 나 하나로 인해 늘 죄인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시는 나의 부모님일 것이다. 예전 같지 않으시고 많이 허약해 보이시는 부모님. 지금의 부모님들이 계시기에 나란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며 숨을 쉬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나로 인해 너무도 늙어버린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어느새 내 눈가엔 눈물이 고여 있었고, 그 눈물을 차마 부모님께 보여 드릴 수가 없었다. 휴가 소식에 그 누구보다 좋아 하시던 부모님. 휴가가 아니고 완전히 집으로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고 아쉬워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고, 그 모습이 현재 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큰 잘못을 하여도 늘 나의 편이 되어 주었던 부모님, 한평생을 다 주어도 모자란다 하시며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부모님, 한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언제나 그랬듯이 자식에게 희생과 봉사를 하시며 일생을 살아오신 부모님의 사랑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나만의 부모님, 자식을 위해 무거운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힘들게 지고 오신 부모님, 이젠 그 십자가를 제가 지겠습니다. 또한 지금껏 부모님께 받기만 하였던 사랑을 이젠 제가 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이 못난 아들 이젠 정말 새로운 모습과 변화된 모습으로 과거의 죄인이 아닌 효자 종석이로 기억될 그날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늘 나의 편이 되어 주었고, 믿어 주셨던 부모님! 그 믿음을 이젠 직접 보여 드릴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나의 동생 은경아,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뜻 깊은 시간을 허락해 주신 김영수 소장님, 조규언 보안과장님 외 여러 과장님과 귀휴 담당 계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겐 정말 뜻 깊은 시간이자 행복한 6박 7일간의 휴가였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서로간의 대인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부모 자식간의 사랑을 절실히 느끼고 돌아오게 되었으며,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이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는 말처럼 제가 살아서 숨쉬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소장님 이하 여러 직원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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