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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를 예수님께서 세우신 것은 성체를 먹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 56) 그렇다면 성체를 먹는 사람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말씀하신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자신의 말로 외쳐야 할 것이다.
또한 성체성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되고, 이를 우리는 교회라고 일컫는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처음부터 교회는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공동체이다. “교회는 성찬례를 이루고, 성찬례는 교회를 이룬다.”는 신학명제는 교회와 성찬례의 관계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밝혀준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성체조배를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더욱 그리스도가 되기 위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국화꽃은 국화꽃의 향기를 품고, 장미꽃은 장미꽃 향기를 품게 마련이듯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 2,15) 성체를 영하는 우리가 예수님이 되어야 예수님의 향기를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성체조배를 하는 것은 성체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 우리가 예수님과 더욱 일치하여 이 시대의 예수님이 되고 예수님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기념이다. 죄의 용서를 위해 하느님께 바쳐진 속죄의 제물이며 동시에 인간에게 나누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음식이다. 성체를 영하고 성체조배를 자주 가지면서도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물과 인간에게 베풀어지는 생명의 양식이 못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가짜 몸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우린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로마 12,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 5)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3-14) 우리는 성체조배를 통하여 탁월한 성체의 현존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을 더욱더 많이 닮도록 하여야 하겠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를 얼마만큼 닮느냐에 달려 있다. 이 점을 간과하고 성당에 다니니까 호박넝쿨 당기듯이 온갖 복이 줄줄 굴러 들어오더라고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바보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세상에 판치는 기복적인 청원에 매달리기 위해 성체조배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유치한 단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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