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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연중 제18주일 : 마태 14,13-21
13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1. 피정이 필요하다.(13절)
복음의 앞부분(14,3-12)에 의하면,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13절ㄱ) 예수님 마음이 슬펐을 것이며, 동시에 당신의 본격적인 사명 준비를 위해 피정을 하시러 가셨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정신없이 바빠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나 가치마저도 상실할 정도로 지치기 쉽다. 직업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바쁜 것이 행복한 비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너무 바쁜 것은 일 중독증과 마찬가지로 고갈되기 쉬워서 위험하다. 자신을 관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회생활의 피로감을 신앙생활을 통하여 풀어 나갈 수 있어야겠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피정과 연수 등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을 정비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2. 목마른 군중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연민을 가지신다.(14절)
눈치 없는 군중은 자신의 필요밖에 모른다. 그래서 예수님의 심정이나 피로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자들이 개입할 여지도 없이 군중은 밀어 닥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신다. 그리고 특별히 그들 가운데 병자들을 고쳐주신다. 병을 몸에 지닌 채 육로로 예수님을 찾아 나선 그들의 노력을 어여삐 여기신 것이다. 어려움을 만나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면, 예수님께서는 연민으로 외면하지 못하신다.
우리 자신은 어려움 중에 예수님께 도움을 청할 줄도 알지만, 간혹 원망을 하는 수가 있다. 병중에라도 주님을 끝까지 따르는 믿음의 행동으로 자신의 필요를 채워 나가는 것은 신앙인만의 특권이다.
3. 주님의 기적에 제자들의 역할이 필요하다.(15-17절.18절)
제자들이 지치고 또한 스승님을 쉬게 하고 싶어, 사람들을 물리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외딴 곳’ 운운하며 사람들을 돌려보내 스스로 먹거리를 장만하게 하려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다.(15절) 그러나 의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신다.(16절)
<제자 역할 1 > 작은 것이라도 가진 것을 봉헌하라.(16-17절)
열두 제자들은 스승님의 말씀에 기껏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보잘 것 없는 양의 먹거리를 봉헌으로 받아들이시고(18절), 우선 군중의 질서를 잡으시어 앉게 하시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다.(19절ㄱㄴ)
<제자 역할 2 > 주님께 봉헌된 것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라.(19절ㄷ)
주님께서 주신 것을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준다. 그러자 그 결과 군중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20절ㄱ)
<제자 역할 3 > 남은 조각을 모은다.(20절ㄴ)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제자들의 작은 봉헌이 큰 나눔으로 풍성해져서 모두 배불리 먹었다. 게다가 남은 것까지 모아들이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하였다. 모아들이는 제자들이 열두 명이다. 즉 주님을 중심으로 ‘봉헌과 나눔’을 실천한 제자의 숫자만큼 풍성하고, 그만큼 남는다. ‘주님의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면서, 동시에 제자들의 ‘봉헌과 나눔의 기적’이기도 하다. 우리의 봉헌과 나눔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
8월 10일 연중 제19주일 : 마태 14,22-33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1.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휴식을 먼저 관리하신다.(14, 22)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을 배로 건너 쪽으로 보내시고, 군중을 몸소 돌려보내신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시고 안부를 전하는 자상한 목자의 모습이 느껴진다. 군중을 배불리셨으면, 그것만으로도 큰일이라 그냥 물러가셔도 좋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신다. 충만한 은혜의 효과가 200%이다.
2. 예수님께서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신다. 기도시간이다.(14, 23)
예수님께서는 피곤하실 텐데 쉬시지 않고 ‘기도’하신다. 예수님의 휴식과 홀로된 시간은 기도 시간임을 알게 된다. 진정한 신앙인은 기도가 곧 휴식이다. 주님 안에서의 안식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잠이 주는 휴식과 기도로 얻는 안식은 차원이 다르다. 둘 다 필요한 것이지만, 신앙인의 안식은 기도를 통해서 주님 안에서만 가능하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기도하러 오르셨다. 해가 지고 저녁이 지나 새벽이 되도록 혼자 거기 계셨다.
3. 주님 없이 만나는 인생의 맞바람은 너무 힘겹다.(14, 24)
주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고자 하지만, 맞바람을 만나 파도에 시달린다. 그들이 헤어진 것이 저녁 무렵이니, 이미 건너가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새벽이 되도록 여전히 물위에 떠있다. 우리 역시 자기 능력으로 힘껏 최선을 다하지만, 도무지 성취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 주님과 함께라면 건널 수 있는 호수, 주님과 함께라면 넘을 수 있는 산이다. 우리는 너무 늦게 주님을 찾는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8-30 참조) 우리의 생명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인 만큼, 우리의 고생도 주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다. 밤이 지나서 아침이 오도록 주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라면, 그 밤을 잘 지내도록 주님 안에서 머무는 신앙의 안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의 힘으로 너무 어렵게 또한 먼 길로 돌아서 목적지로 간다.
4. 우리는 주님의 현존을 너무 잘 망각한다. 위기 속에서도, 심지어 현존 앞에서도!
1)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다.’하고 소리친다.(14,26) 자기 스승을 못 알아본다. 어디에나 현존하시는 주님의 존재(14,27)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죄와 어둠 속에서도, 내 인생의 맞바람 속에서도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다만 내 육적인 눈에 안 보이거나 다르게 보이신다. 보지 않고도 주님의 현존과 보호를 믿는 신앙인이어야 할 것이다.
2) 베드로는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실제로 물위를 걷는다.(14,28-29) ‘오너라!’하신 ‘주님 말씀에 순종함’과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물위를 걸어 나아간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바라보며 겁을 먹자, 물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오직 주님 말씀(들음)과 주님 현존(바라봄)으로 주님을 향하는 것이 제자들의 위기 관리법이며, 소망의 성취 비결이다.
3) 세상의 위협을 바라보면 의심에 빠지지만,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하며 그분만을 바라보고 걸으면 세상과 자기 자신에 승리한다.(14,31-32)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 루카 1,39-56
39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1. 영적인 사람들의 유유상종!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영적으로 통하는 사람들이다. 영적 통교의 비결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자신의 신상에 일어난 낯선 일들의 원인을 주님의 뜻 안에서 찾는 사람들이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들도 영적인 친교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고 함께 나눌 이웃이 필요하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이미 소공동체적 친교를 시작하였다. 단 속지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2. 만남의 단계
<제1단계 마리아의 떠남>
마리아는 주님을 자기 몸에 모신 사람이면서도, 먼저 자기 집을 떠난다. 자신의 지위나 자리를 보전하는데 급급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위대한 일을 받아들인 엘리사벳을 찾아, 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을 떠난다. 위대한 아브라함에게도 ‘떠남’의 용기가 가득한 영성이 있었다. 게으름이나 지금의 소유에 대한 집착이나 무사안일의 태도로는 떠날 수 없다.
<제2단계 마리아의 방문>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을 먼저 찾아간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야 만남의 길이 열린다.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축하를 하려 하고, 먼저 찾아 나서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좋은 만남일수록 ‘찾아가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에 부지런함이 요청된다. 자기 안의 적극적인 동기 유발이 요청된다.
<제3단계 마리아의 인사>
마리아는 축복의 인사말을 먼저 건넨다. 주님의 어머니라고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욱 겸손하다. 먼저 건넨 축복의 말은 상대방에게 내면의 생명력(태중의 아기)과 외적인 찬양의 외침(큰 소리 찬양)이 터져 나오게 한다. 상대방을 내외적으로 기쁘게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기쁨과 성령 충만한 찬양과 칭송을 불러일으킨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이, 성령 충만의 기쁨이 만난 사람에게 선사되고, 함께 나누어지면서, 함께 성장한다.
→ 우리는 만남 안에서 무슨 말을 나누는가? 남을 칭찬하는가? 아니면 비판을 주로 하는가? 이성적으로 옳은 말이라 할지라도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부정적 정서가 지배를 하게 되어 나 자신의 내면이 황폐해진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아니다.
3. 말씀이 담긴 메시지를 잘 듣는 자에게는 성령 충만이 일어난다.
<잘 듣기 제1단계의 반응>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 그 태중의 아기가 뛰논다. 하느님께서 주신 새 생명이 생명력으로 충만하다.
<잘 듣기 제2단계의 반응>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 성령으로 충만해진다. 하느님의 열정과 능력이신 성령께서 엘리사벳 자신을 충만케 한다. 이제 성령께서 그녀를 주도하신다.
<잘 듣기 제3단계의 반응>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었을 때, 큰 소리를 내었다. 기쁨과 환희가 넘치고, 하느님 찬양으로 가득하다.
→ 인생이 참으로 행복하고 기쁜가? 주님의 말씀 안에 사는 사람들은 유유상종의 친교 안에서 주님 말씀에서 나오는 긍정의 힘으로 충만하다. 그리하여 참으로 행복하다. 어려움도 이기고, 두려움도 이긴다. 돈과 건강과 명예를 손아귀에 쥐고도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
8월 17일 연중 제20주일 : 마태 15,21-28
2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1. 예수님의 휴식도 어머니의 기도에는 양보하신다.
예수님께서 전교활동을 하시다가 이방인 지역인 티로와 시돈으로 물러가신다. 휴식과 기도의 시간이다. 그러나 이때 가나안 여인이 딸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온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의 중보기도가 있다. 아브라함, 모세의 기도는 유명하다. 그런데 낯선 지역의 이방인 어머니의 끈질긴 기도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기도의 성취를 위해서는 출신이나 자격의 문제는 부수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모성애의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의 끈질긴 기도는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복음은 말해주고 있다.
2. 성취하는 기도의 3단계
<제1단계> 고통의 현장에서 밖으로 나와, 소리 질러 주님을 부르기
가나안 부인은 마귀 들린 딸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주님을 찾아 나선다.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주님을 뒤따르며,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며, 자비를 청한다.(15,22) 그러나 주님께서는 대답을 하시지 않는다.(15,23ㄱ)
<제2단계> 갖가지 방해를 무릅쓰고 주님 앞까지 다가가서 요청하기
불편을 느낀 제자들이 나서서 예수님께 그녀를 빨리 돌려보내실 것을 종용한다.(15,23ㄴ) 예수님께서도 당신 사명의 한계를 ‘이스라엘 백성’으로 규정하시며 치유 거부의사를 밝히신다.(15,24)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주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어머니의 기도이다.(15,25)
<제3단계> 주님의 능력과 자비를 믿고, 긍정적인 자세로 끝까지 기도하기
예수님께서 더욱 충격적인 말씀으로 ‘강아지’에 빗대면서까지, 거부의사를 밝히신다.(15,26) 이 어머니는 예수님의 그 말씀도 긍정한다. 그리고 더욱 주님의 자비의 크기에 대하여 긍정하며 믿음의 말씀으로 응답한다.(15,27)
<성취 단계> 예수님께서 어머니의 믿음의 크기를 인정하고, 소원이 성취될 것임을 예고하신다. 그리고 실제로 성취되었다.(15,28)
→ 우리의 기도는 어떤 방해를 만나는가? 위의 단계를 나의 기도 안에서 적용하고 비교해 보자.
3. 조건과 한계를 뛰어넘는 어머니의 기도 : 끝까지 신뢰하는 전폭적인 믿음과 끈질긴 청원
첫째, 긍정적인 확신을 가진 사람이 성취한다. 온갖 방해와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소망이 성취되기까지 긍정의 확신과 항구한 기도는 급기야 소원성취를 이룬다. 우리에게 기도의 성취가 없다면, 가나안 여인의 기도를 본받자.
둘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것이라 여기는 동안 자기 힘으로 살게 된다. 그러나 주님의 생명을 받았고 주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임을 믿고 의탁하면, 주님의 능력으로 무장하게 된다. 신앙생활은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주님이 점점 커지는 것을 배우고 익혀나가는 것이다.
8월 24일 연중 제21주일 : 마태 16,13-20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평판을 듣고자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제자 훈련의 의미가 있다. 제자들이 세상에 파견되어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데, 대상자들의 인지도가 어떤지(선교 대상자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생각하는지) 현장 조사를 하고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받는 셈이다. 이는 제자들의 선교훈련 기초를 다지는 효과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사는지를 아는 것은 선교 이전의 준비 단계로서 반드시 요청된다.
둘째, 선교 대상자 파악의 의미가 있다. 제자들이 선교할 대상들은 어떤 형태의 사람들인지 실태 조사를 하고 그것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자들의 현장조사 내용이 곧 선교 대상자들에 대한 진단과 직결된다. 이는 긍정적 정보이거나 부정적 정보이거나 간에 선교전략을 짜는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된다.
→ 레지오마리애나 소공동체의 선교 전략을 수립할 때, 예수님 복음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는 <선교 준비 제1단계(현장 조사)>라고 볼 수 있다.
2.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물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예수님 정체성에 대한 제자들의 인식은 ‘선교의 내용’(무엇을 왜 선교할 것인지)과 직결된다. 그런데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대답을 못한다. ‘아직 견해가 없는 것’ 같다. 인식이 부족하거나 훈련과 무장이 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제자들의 예수님 정체성 인식은 선교 대상자들(누구에게 어떻게 선교할 것인지)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수님의 질문에 다만 베드로만이 정확하게 예수님의 정체성을 고백한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인간적 조직 면에서 ‘제자단의 대표로서 사도단의 신앙’을 대변한다. 동시에 ‘이 신앙고백’은 초월적 신앙의 입장에서 ‘하느님 지혜의 가르침(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드러낸다.’ 다원화된 종교문화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정확한 신앙고백을 먼저 확인하지 않으면, 쉽게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로, 혹은 복음이 아닌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넘어가는 신자들이 많은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 레지오마리애나 소공동체의 선교 전략을 수립할 때, 예수님 복음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는 <선교 준비 제2단계(선교사의 정신 무장) >로 볼 수 있다.
3. 베드로의 행복의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 베드로의 정확한 신앙고백은 살(육)과 피(혈)의 인간적 지식이나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하느님의 지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둘째, 베드로의 정확한 신앙고백은 예수님과의 직접적 대화와 인격적 친교 안에서 나온 것이고, 하느님의 절대적 차원에 근거한 것이므로 참으로 행복하다.
→ 우리의 신앙생활과 봉사는 자주 인간적 전통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방해가 되기도 한다.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태도는 하느님의 지혜(영과 말씀과 능력으로)로 무장하는 것이다.
8월 31일 연중 제22주일 : 마태 16,21-27
21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1.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고 미래를 예언하다.
먼저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벌어질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이에 즉각적으로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 예수님을 붙들고 반박하기/꾸짖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미래 예언까지 하였다.(16,22ㄴ) 예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그분의 길을 가로막고, 미래를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은 예수님 제자의 처신이 아니다.
→ 어느 누구라도 신앙 경력이 길거나 짧거나 간에, 주님의 말씀과 그분의 길과 뜻을 거스르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정상 궤도를 벗어난 것이다.
2.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고 가르치신다.
‘내게서 물러가라.’(직역 : 내 뒤로 가라. , 휘파게 오피소 무) 예수님께서 뒤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내 뒤로 가라.’ 혹은 ‘내 뒤에 서라.’하고 말씀하셨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뒤따르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말씀을 듣고 있고, 베드로 혼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 가실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장면에서 제자들의 ‘위치’는 그분의 뒤이며, ‘처신’은 말씀을 듣는 것임이 묘사된다. 베드로의 경우 위치도 처신도 틀렸으며, 입에서 나오는 말도 주 스승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에 걸림돌 역할을 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이것은 사탄의 언행이다.
→ 사목 현장에서 사목자 자신이나 봉사직에 헌신하는 신자들 모두에게 닥치는 유혹이다. 열심히 참여하려 할수록, 신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위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첫째,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선포될 때, 단순히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처신이다. 둘째, 어떤 좋은 일이라도 ‘주님의 뜻에 맞는지 기도하고 응답을 받고 난 다음에 실천하는 것’이 안전하다.
3. 예수님께서 제자의 길과 처신을 말씀하신다.
첫째,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은 부르심의 기본 조건이다. 제자의 길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부르심의 목적이며, 이것이 전제되어야 제자직의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일찍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분을 뒤따랐다.
둘째, 자신을 버리라. 자신의 존재와 소유 등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셋째,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자신의 존재와 소유를 버린 만큼, 자기에게 주어지는 (과거-현재-미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제자의 길이다. 즉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는 것이다. 이런 기본 자세를 갖추고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명에 순종하며 선택하는 것이다.
→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제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제자가 되고자 하지 않는 자에게는 무관심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지상 과제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을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이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자기 스스로 이 길을 걸어야 한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기 위하여 이 길을 소개하고 온 몸으로 보여 줌으로써 그들을 초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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